박근혜 발언에 혼란스런 대기업 총수들
● 긴장감 돈 전경련 회장단과 대화
● 박근혜 “대기업 변해야”… 총수들 “일자리 창출, 동반성장”
#1. 2007년 12월 28일. 대통령 당선인으론 처음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한 줄로 늘어선 대기업 총수들에게 말했다. “이렇게 서 있는 거 보기 싫으니 (내 곁으로)이리로 다들 오세요.” 편안히 한데 어울리자는 표현이었다.
#2. 5년이 흐른 26일 서울 여의도 KT빌딩 14층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의장 입구. 정몽구(74)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을 비롯한 주요 그룹 회장 17명이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서 있었다. 박 당선인이 도착하자 차례로 악수를 나눴다. “(당선을)축하드립니다”라는 의례적인 인사 정도를 빼면 회장들은 별 말이 없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박 당선인이 “저만 웃는 것 같네요”라고 할 정도였다. 한 재계 인사는 “경제민주화 분위기 때문인지 처음에 어색함과 긴장감만 감돌았다”고 전했다.
이날 간담회는 허창수 회장의 인사말로 시작됐다. 허 회장은 “기업들은 해외에서 더 많은 돈을 벌어오고 투자를 늘려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며 “과거의 잘못된 관행은 과감히 극복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경제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다음엔 박 당선인이 인사말을 했다. “우리 대기업들은 국민기업 성격이 크다”라든가 “대기업도 변화해 달라” “한창 일할 나이에 퇴출시키는 행태는 자제해 달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분위기는 더 굳어졌다. 박 당선인은 이어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달라”고 했다. 다음과 같은 요지의 얘기가 이어졌다.
▶정몽구 회장=새 정부와 협력해 미래를 위해 투자하고 새로운 일자리 창출 노력을 하겠다. 협력업체와의 동반성장을 구현하고 사회적 공헌에 박차를 가하겠다.
▶최태원 SK 회장=경제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면서 새로운 투자 방법이 필요하다는 자각을 했다. 사회적 기업 활성화에 힘쓰는 것 같은, 서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투자 활성화 조치가 필요하다.
▶신동빈 롯데 회장=대형마트 월 1회 강제 휴업으로 농어민과 중소기업 피해가 예상된다. 상생 기회를 찾을 수 있는 다른 방안을 모색하는 게 좋겠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기존 순환출자는 역기능도 있지만 순기능도 있다. 다시 한번 점검해 달라.
▶강덕수 STX 회장=한국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분야 중 일시적인 자금 경색으로 인해 경영 어려움을 겪는 쪽에 금융 지원을 해주는 시스템을 구축했으면 한다.
회장들의 발언이 끝나자 박 당선인은 “기업을 지원하는 건 국가의 당연한 책무다. 일시적인 어려움이 있는 기업의 경우 대기업이라도 국가가 지원해 어려운 순간을 벗어나 경쟁력을 되찾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팽팽하던 분위기는 여기서 좀 누그러졌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박 당선인은 또 “새 정부는 기업들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겠다”며 “무엇보다 소통이 중요하니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달라”고 했다.
익명을 원한 전경련 관계자는 “당선인이 강·온 발언을 모두 하는 바람에 회장단이 혼란스러웠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날 전경련에 앞서 박 당선인을 맞은 중소기업중앙회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당선인이 경제계에서 중기중앙회를 제일 먼저 방문한 건 중기중앙회 설립 50년 만에 처음인 것 같다”며 “그만큼 중기소상공인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 아니겠나.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