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만 4천원.' 지난 주말 주부 김혜선(가명`32`여`대구 수성구 범어동) 씨가 첫째 딸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쓴 돈이다. 목돈을 들여 구입한 것은 가방, 신발주머니, 구두 한 켤레, 재킷, 블라우스, 치마 각 한 벌이었다. 그나마 코트(58만원)는 친척들이 미리 준비해 준 덕분에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김 씨는 "비싸게 주고 산 옷을 입힌 딸이 가장 돋보일 줄 알았는데 막상 입학식에 가니 하나같이 잘 차려입고 온 다른 아이들이 많아 딸은 보이지도 않았다"며 "'초등학교 입학하는데 이렇게 큰돈을 들여야 할까' 싶었다"고 말했다.
◆입학`신학기 부담에 가정경제 '휘청'
학부모들이 자녀의 입학`신학기 준비에 허리가 휘고 있다. 하나, 둘뿐인 자녀의 입학과 신학기를 준비하는데 지출이 많아 가계에 주름살이 지고 있는 것. 학부모 정혜윤(34`여) 씨는 "자녀라고는 아들 하나뿐인데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초등학교 입학식을 위해서는 다소 부담이 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며 "허름하게 입혀 보냈다가 새 친구를 만나는 아이가 기죽을까 봐 걱정하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
대구지역 한 백화점 아동의류 매장 점원도 "15만~18만원하는 책가방`신발주머니 세트의 경우 지난해 12월쯤부터 불티나게 팔리더니 1월쯤 모두 판매됐다"며 "가격 때문에 고민하던 손님들도 '한 번뿐인데 어쩌겠느냐, 이왕 사주기로 한 건데'하며 물건을 사간다"고 했다.
입학을 앞둔 자녀가 있는 집에는 친척들의 선물 공세도 이어진다. 지인들이 선물을 내밀 때마다 부담을 덜게 된 학부모들은 친척들의 갹출로 지출을 줄였다며 안도한다. 친척`친구 등 지인들이 입학 준비를 분담하는 셈이다.
손자`손녀들의 입학 준비를 하느라 스트레스를 받는 할아버지`할머니들도 있다. 이달 4일 손자와 외손녀가 초등학교 입학을 하는 김상규(59`여`대구 수성구 만촌동) 씨는 지난달 백화점 행사 매대에서 아동복 때문에 크게 당황을 했다. 김 씨는 행사상품이 저렴할 것이라는 생각에 손자`손녀에게 사줄 티셔츠 두 벌과 바지 두 벌을 골랐다. 합친 가격이 60만원을 훌쩍 넘었다. 매대 판매상품이라고 얕잡아 봤다가 뒤통수를 맞은 것. 여기저기 옷을 만지작대다 새 옷을 입을 기대에 부푼 손주들을 생각하며 어쩔 수 없이 네 벌의 옷을 산 김 씨는 비싼 아동복 값에 혀를 내둘렀다. 김 씨는 "예전과 달리 입학식에서 깔끔한 옷차림만으로는 좋은 첫인상을 남길 수 없게 된 것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
초교 교사 이모(31`대구 동구 신천동) 씨는 "해마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구두와 유명 브랜드에서 나온 왕자`공주풍의 옷, 성인용품보다 비싼 가방 등으로 '무장'해온 아이들로 일부 학교의 입학식장은 백화점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며 "불필요한 외모 경쟁이 길어지다 보면 일주일 이상 이 같은 광경이 연출되는 데 아이들이 쓸데없는 허영심을 갖게 될까 봐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갈수록 오르는 교육 물가
학부모들의 부담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간신히 입학식을 치른 후에도 각종 학용품과 책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형마트를 따라나선 자녀가 낡은 학용품을 바꿔달라고 떼쓰면 도리가 없다. 기능과 디자인이 거의 변하지 않았음에도 공책, 연습장, 필기구 등 학용품 구매는 새 학기, 새 기분을 위해 거쳐야 할 필수 코스다.
학년이 오를 때와 학기가 바뀔 때마다 새로 준비해야 하는 교재 값은 올해도 상승폭이 크다.
(사)한국검정교과서에 따르면 2013년 1학기 교과서 중 국어(상)의 경우 4천330~5천490원대다. 지난해 평균가격과 비교하면 13.2~43.6% 오른 셈이다. 학생들이 대부분 사용하는 한 수학 참고서 중학교(1학년 1학기) 과정도 지난해 1만1천원에서 2천원 오른 1만3천원이다. 상당수 고3 수험생이 사용하는 한 영어 문제집은 분량을 392쪽에서 220쪽으로 절반 가까이 줄이면서도 가격은 1만4천원에서 1만3천원으로 1천원만 줄였다. 1페이지당 가격은 35.7원에서 59.1원으로 65.5% 오른 것.
과목별로 한꺼번에 수십 권을 준비해야 하는 신학기가 되면 학부모들은 교과서, 참고서, 문제집 값으로만 수십만원을 써야 하는 상황이다.
학부모 박형기(48`대구 달서구 죽전동) 씨는 "사교육비를 아무리 줄여도 과목당 서너 권씩 수십 권의 교재비 지출이 계속되는 한 생활비 중 교육비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며 "급식비, 방과 후 수업비 등 매달 드는 돈만 해도 허리가 휠 지경이니 신학기 물가는 정부가 나서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지현기자 everyday@msnet.co.kr
[매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