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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민족간부 최채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3.05.16일 07:40
대형계렬기획보도 《중국조선족 백년백인》 (17)

최채

《민족을 생각하지 않는 민족간부는 자격이 없다.》 중국공산당의 우수한 민족간부이며 조선족의 자랑스러운 아들, 영원한 민족간부 최채의 불후의 명언이다.

최채는 1914년 11월 23일 조선 황해도 신천군의 독립운동가 최중호와 어머니 류중현 녀사의 장남으로 태여났다. 최채의 원명은 최윤상이다.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되후 1920년 7살 되던 해에 최채는 김구를 따라 독립운동에 참가한 아버지의 옷자락을 잡고 중국의 상해로 이주, 상해에서 조선아동들에게 민족주의사상교육을 실시하던 인성학교에 입학하였다. 1927년 그는 상해 혜중중학에 입학하고 학교의 아동단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1931년에 부친 최중호의 병이 위중하게 되자 학업을 중단하고 잡역에 종사하였으며 이듬해인 1932년에 중국신민주주의청년단, 반제동맹에 참가하여 본격적인 반일독립운동에 뛰여들었다.

1931년 《9. 18》사변이 일어나자 최채는 상해한인청년동맹의 일원으로 항일구국운동에 참가했으며 그해 11월 상해한인반제동맹에 가입했다. 1932년 상해에서 《1.28》사변이 일어나자 상해말에 익숙한 그는 일제를 반대하기 위한 모금 선전활동에서 한몫을 톡톡히 담당했다. 일제가 상해와 남경을 점령한후 최채는 부평초마냥 무한과 장사로 떠다니는 신세가 되고말았다. 그후 1940년 3월 중경에 가서 아버지 최중호와 친분이 있는 독립운동가 김원봉을 찾아가 거기서 조선의용대에 참가하고 의용대 총부 선전조 간사로 활동하였다. 후에는 또 부대를 따라 태항산으로 진군, 팔로군의 통일적인 지휘하에 일제와 싸웠다.

1942년 최채는 황하를 건너 연안으로 가는 길에 무정과 정일선을 만났다. 무정은 하룡장군의 부대에서 조선족간부를 수요하니 거기서 활동하라고 하였다. 이렇게 되여 결국에 그는 연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팔로군 제120사 정치부 적공부에서 전선을 지원하는 적후사업을 시작하게 되였다. 그는 적공부에서 사업하면서 화북조선독립동맹 진수분맹을 조직하였고 적공부의 파견을 받고 태원시교 유격구에서 태원시내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에 대한 사상사업을 시작하였다. 1945년 8월 최채는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1946년 5월까지 화북조선독립동맹 진서북분맹 주임을 맡으면서 국민당점령구에서 지하공작을 했다. 장기간 적후에서 지하공작을 했던 원인으로 1945년 일본제국주의가 투항한후에도 최채는 줄곧 조선의용군과 행동을 같이 하지 못했다.

1946년 5월 최채는 상급의 지시에 따라 태원시에서 지하공작을 접고 동북으로 파견돼 동북민주련군 할빈위수사령부 독립 8퇀 교도대대 교도원을 맡았다. 1947년 12월말, 그는 사업의 수요로 부대에서 지방정부로 옮겨 길림성인민정부 민족청 편역과 과장을 담임했다. 림춘추가 민족청을 조직하면서 조선족간부가 급히 필요했던것이다.

이때 전국적으로 아직 전쟁이 한창이였고 후방인 연변에는 해야 할 일이 태산같았다. 최채는 또 조직의 지시에 따라 연변일보사 사장과 연변인민방송국 국장을 겸해서 맡았으며 1948년 11월 림춘추가 연변전원공서 전원으로 옮겨가면서 중공연변지구위원회 선전부장으로 임명되였다.

1952년 2월 최채는 중앙민족사무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였고 7월에 중앙인민정부에서 연변의 민족구역자치를 비준하면서 그는 연변조선족자치구 주비위원회 비서장으로 임명되였다. 9월 3일, 연변조선민족자치구인민정부 (후에 연변조선족자치주인민정부로 개칭)가 창립되면서 최채는 제1임 자치구인민정부 부주석으로 당선되였으며 정법, 민정, 문화교육 등 사업을 주관했다.

1952년 9월 3일 연변조선족자치구 제1임 부주석으로 당선된 최채(오른쪽).

1954년 12월, 최채는 중공연변지위 부서기로 임명되였고 1956년 12월에는 중공연변주위 제3서기로 임명됐다.

1958년 5월, 최채는 10년동안 몸을 담갔던 연변을 떠나 길림성민족사무위원회 주임으로 취직했다. 최채는 사업을 함에 있어서 아주 엄격했다. 그의 노력하에 길림성 민족경제와 민족문화교육 등 각항 민족사업은 기꺼운 성과를 거두었다. 최채가 민족사업을 주관하는 동안 길림성민족간부학교, 길림성민족가무단, 길림인민방송국 조선말방송프로가 섰으며 1958년부터 그는 전문가와 학자들을 조직하여 길림성내 조선족과 몽골족의 력사와 현황에 대해 조사하고 《중국조선족략사》, 《연변조선족자치주 개황》, 《장백조선족자치현 개황》, 《전고기몽골족자치현 개황》 등을 편찬하였다.

1960년부터 1961년 사이 최채는 길림성민족사무위원회의 10여명 간부를 이끌고 장백조선족자지현에 내려가 1년 반 동안 깊이 있는 조사연구를 진행해 존재하는 문제를 성당위, 성정부에 반영해 고도로 되는 중시를 불러일으켰다. 성당위와 성정부에서는 여러 부문의 령도들을 조직해 장백현에 내려가 현지사무를 보았으며 생산과 생활에 장기적으로 존재하던 문제와 곤난을 해결했다.

몽골족들을 도와 목축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1960년부터 1962년까지 최채는 성민족사무위원회 조사연구조의 간부들을 배치하여 전고르로스몽골족자치현, 진뢰현, 조안현 몽골족들이 집거한 향, 진, 촌, 툰에 내려가 목축업생산정황을 조사연구하고 실제곤난을 해결해준 한편 선진경험을 보급했다.

《문화대혁명》기간에 최채는 장춘감옥에서 갖은 박해와 멸시를 당했으며 1972년에 석방되자 구태현 음마하라는 농촌으로 《정배》를 내려갔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당중앙 11기 3중전회 이후 최채는 다시 길림성당위 통전부 부부장 겸 성민족사무위원회 주임을 맡으면서 길림성정협 부주석으로 임명되였다. 1981년에는 길림성인대 상무위원회 부주임으로 선출되였다.

1985년 최채는 파란만장한 혁명사업의 제1선에서 물러났다. 비록 공직서류에는 1940년에 혁명사업에 참가한것으로 기록되여있지만 사실은 그보다 썩 전으로 거슬러 1932년에 이미 혁명에 참가했다. 그러나 그는 이를 구태여 따지지 않았다. 평생을 민족혁명가, 민족간부로 살아온 최채는 인생의 황혼에 비록 몸은 사업터를 떠났지만 마음만은 잠시도 민족사업을 떠나본적이 없었다.

2006년 8월 5일, 한생을 혁명과 당의 민족사업에 바쳐온 최채는 장춘에서 병환으로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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