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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착한 참치캔’이 없다

[기타] | 발행시간: 2013.06.09일 10:45

[한겨레] 그린피스, 동원·오뚜기·사조 캔 브랜드 평가해보니

‘그린 등급’ 없어…집어장치 없이 잡은 참치와 구분 않고 판매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슈퍼마켓 체인 세인스버리 누리집(sainsburys.co.uk)에 들어가보았다. 참치 통조림을 구경하다보니, 파란색 ‘MSC’ 마크가 붙은 제품들이 눈에 띈다. 국제 비영리 단체인 해양보존협회(MSC·Marine Stewardship Council)가 인증한 ‘착한 참치캔’이다. 1997년 무분별한 어획으로 인한 수산자원 감소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설립된 MSC는 지속 가능한 어업으로 잡은 수산물 인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참치도 해당 어종 가운데 하나다. 고급 참치 어종인 참다랑어·눈다랑어는 횟감으로 소비되고, 가다랑어·날개다랑어 등은 통조림으로 만들어진다.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참치는 대부분 통조림으로 만들어진다. 세인스버리는 2년 전부터 소규모 어업 방식인 ‘채낚기’(낚싯대 등으로 한 마리씩 잡는 것)로 잡은 가다랑어를 공급받아 참치 통조림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이런 제품은 기존 싹쓸이 조업으로 잡은 참치를 원료로 한 통조림과는 구분된다. 친환경·윤리적 방식으로 공급된 ‘지속 가능한 참치’(Sustainable Tuna)를 먹자는 움직임이다. 세인스버리의 라이벌 업체인 테스코나 미국 월마트에서도 이런 착한 참치캔을 살 수 있다.

동원, 지난해 이어 올해도 최하위 등급

‘착한 참치캔’이 한국에는 없다. 그린피스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동원F&B·사조산업·오뚜기 등 한국의 3대 참치 통조림 브랜드를 평가한 결과다. 신라교역에서 원료를 제공받는 오뚜기를 제외하고 동원과 사조는 원양업체도 운영하고 있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는 3대 브랜드에 대해 △지속 가능한 조업 정책 이행 및 수산자원 보유국과의 공정한 무역 여부 △환경파괴 및 불법어업, 해양보존구역 지지 여부 △제품에 어업 방식 등 정보 표기 △어획부터 통조림 제조까지 이력 추적 △어획량 감축 노력 등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한 뒤 지속가능성 순위를 매겼다고 밝혔다.

<한겨레21>이 입수한 그린피스의 ‘한국에는 없는 착한 참치-2013 참치캔 지속가능성 순위 보고서’를 보면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하는 ‘그린(Green) 등급’을 받은 업체는 한 군데도 없다. 특히 시장점유율 1위 업체 동원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최하위인 ‘레드(Red) 등급’을 받았다. 동원산업 누리집에는 ‘세계 수산자원의 지속 개발을 위한 정책’이 게재돼 있다. 그러나 이런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은 보이지 않는다. 어획량 감축이 권장되는 상황에서 신규 참치 어선을 증대하고 멸종 위기인 남방참다랑어와 눈다랑어를 다량으로 잡고 있었다. 한국 기업 중 지속가능성 순위 1위 브랜드는 오뚜기였으나 2위 사조와 점수 차이가 거의 없었다. 오뚜기에 참치를 공급하는 신라교역의 경우, 그린피스 설문에 적극적으로 응한 편이었고 어획 능력이 작다는 점이 긍정적 평가 요인이었다.

동원·사조·신라교역 모두 참치를 잡기 위해 해양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치는 집어장치(FADs)를 사용한다. 그린피스는 집어장치 사용을 중단하고 채낚기 같은 소규모 조업 방식을 확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선망어업(거대한 그물로 물고기떼를 둘러싸는 방식)에서 집어장치는 망망대해에 띄워놓는 부유성 물체다. 물고기들은 이를 피난처로 착각해 그 주위로 모여든다. 작은 물고기가 많아지면, 이들을 먹는 물고기가 모여들고, 또 더 큰 물고기가 모여들어 생태계 먹이사슬이 조성된다. 어선은 집어장치 주변에 거대한 그물을 두르고 퍼올리는데, 그 과정에서 가다랑어뿐 아니라 멸종 위기에 처한 눈다랑어 새끼나 상어·가오리·고래·바다거북 등도 한꺼번에 잡힌다. 이렇게 잡힌 바다 생물 가운데 ‘돈’이 되지 않는 생명체는 다시 버려진다. 집어장치를 사용했을 때, 참치 이외의 종이 잡힐 확률은 그렇지 않을 때보다 3배 이상 높다고 평가된다. 그린피스는 이렇게 참치를 잡다 버려지는 생물의 양이 해마다 20만t에 이른다고 보고 있다. 참치 통조림 10억 개를 채울 수 있는 양이다. 이렇게 사용된 수만 개의 집어장치는 사용 뒤 그대로 방치돼 바다 위 쓰레기가 되기도 한다.

착한 참치, 가난한 나라 어부 몫 높이게 돼

이번 보고서를 작성한 그린피스 한국사무소의 한정희 해양캠페이너(활동가)는 “지난해 설문조사에조차 응하지 않던 동원이 설문에 응했고 사조가 향후 5년 내에 집어장치 사용 제한을 고려하겠다고 하는 등 작은 진전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큰 변화는 없었다”고 평가했다.

우리가 먹는 참치 대부분은 머나먼 태평양 바다에서 온다. 전세계인이 먹는 참치의 60%가량은 중서부 태평양 지역에서 잡힌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지난해 발간한 ‘세계 어업 및 바다양식 보고서’는 “조업 관리를 강화하지 않으면 참치 자원은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2004년 중서부 태평양 공해(특정 국가의 영유권이나 배타권이 인정되지 않는 바다)상의 조업 활동을 관리하는 국제기구인 중서부태평양수산위원회(WCPFC)가 설립됐다. 이 협의체는 한국·일본·미국 등 조업국들과 미크로네시아 연방국 등 연안국으로 구성돼 있다.

‘착한 참치캔’에는 커피나 초콜릿 상품을 구매할 때 익숙하게 접하는 공정무역의 의미가 포함돼 있다. 태평양의 수많은 섬나라 주민들에게 참치는 중요한 식량이자 생계 수단이다. 그동안 각 조업국의 어선들은 가난한 나라로부터 헐값에 참치를 사갔다. 그린피스 자료에 따르면, 원양어선 수익 가운데 태평양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비율은 6%에 불과하다. 비단 태평양에서만 일어나는 문제는 아니다. 수산물 자원이 풍부한 시에라리온·기니 등 서아프리카 국가 연안에서 2010∼2012년 한국 원양업체 30여 개 선박이 불법행위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소비자가 ‘착한 참치캔’에 눈을 돌리면 ‘친환경적 조업 확산’이라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인도양에 위치한 몰디브가 수출하는 모든 가다랑어는 주민들이 채낚기로 잡은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일본에서 윤리적으로 잡은 참치의 수요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영국 세인스버리도 자체 상표를 달고 파는 참치 통조림의 원료 절반 이상은 몰디브에서 공급받는다. 채낚기 조업은 참치만 살리는 일이 아니었다. 그린피스의 자료를 보면, 채낚기 어선은 선망 어선보다 약 10배의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영국에서 채낚기로 잡은 참치를 원료로 한 통조림 가격이 기존 제품보다 5%가량 비싸다. 공정무역으로 유통된 커피나 초콜릿이 비싼 것과 비슷한 논리다.

“공급·제조 동일해 제품 개발 더 쉬울 텐데…”

한국 원양업체들은 중국·대만과의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집어장치를 포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수산자원 보존을 위한 ‘지속 가능한 어업’을 확산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중서부태평양수산위는 지난해 말 공해상 집어장치 사용 금지 기간을 종전 3개월에서 4개월로 늘렸다. 한국 업체들은 중서부태평양수산위의 규제를 따르고 있으므로, 이미 일정 기간 집어장치 없이 잡은 참치(패드프리·FAD-Free)로 통조림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집어장치 사용 제품과 비사용 제품을 따로 구분해서 팔지는 않는다. 윤리적인 참치캔을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상황이다. 한정희 캠페이너는 “소비자가 ‘패드프리’ 제품을 찾지 않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나서 표기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게 업체들의 입장”이라며 “국외 통조림 브랜드는 원료 공급업체와 따로 협의해 ‘착한 참치캔’을 만들고 있지만, 우리는 제조·공급 업체가 한 회사라 의지만 있으면 더 쉽게 제품 개발이 가능할 텐데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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