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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도에 뿌리내려 반세기 곱게 핀 연변의 진달래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2.03.09일 09:19
ㅡ전 해남성제3인민병원 호리부주임 진순옥의 이야기

진순옥녀사와 그가 37년동안 근무했던 병원.


해남도에서도 제일 남쪽에 위치한 삼아시(三亚)에서 장장 37년동안이나 당지의 의료위생사업에 평생을 이바지한 74세의 조선족할머니 한분이 있다. 고향 연변을 떠난지 50년도 넘게 조선족들이 단 한명도 없는 환경에서 지내왔건만 할머니는 한번도 자신이 조선족이라는것을 잊은적이 없었으며 백의민족의 이름을 빛내기 위해 모든 일에서 앞장서왔다. 이분이 바로 고향이 연변 화룡시 토산향 오명촌이며 해남성농간삼아병원(해남성제3인민병원)에서 37년동안 호리부주임 등 간호사업에 종사하다가 퇴직해 삼아에서 만년을 보내고있는 진순옥녀사다.

올 겨울에 삼아에 와서 료양하는 동안 나는 우연하게 진순옥녀사를 알게 됐다. 50년동안이나 외딴 곳에서 생활했지만 그는 우리말을 전혀 막힘없이 류창하게 했다. 나는 진순옥일가와 한자리에 앉아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를 가졌다.


진순옥은 화룡현 토산향 오명촌에서 8남매중 맏이로 태여났다. 토산자 화신소학교를 졸업하고 1955년에 화룡중학교(초중)를 졸업하였다. 학생시절 그는 학습성적이 우수했을뿐만아니라 춤이면 춤, 온동이면 운동, 길림성중학생체육대회에까지 참가해 주변에서는 그를 "팔방미인"이라고 불렀다.

1956년 9월 진순옥은 간호원모집시험에 합격해 목단강농간국(农垦局)제2종업원병원에 취직했다. 후에 이 병원의 일부가 내몽골로 전이하고 남은 부분이 목단강농간국850농장병원으로 되였다.


조선족 사명감 안고 해남에서 37년간 의료사업 헌신

1962년 5월 중앙 농간부의 지시에 따라 목단강농간국850농장병원 전체가 해남도 최남단인 삼아로 전이하게 되였다. 당시 병원의 일체 설비와 인원이 전이되는 가운데 진순옥은 100여명 의무일군가운데 유일한 조선족으로 대오에 포함되였다.

집을 떠나는 날 진순옥의 아버지는 그렇게 먼 곳을 가면서 부친의 동의도 없이 저절로 결정했다며 짐을 밖에다 뿌리치며 노여워했다. 얼마나 딸을 보내기 아쉬웠으면 그랬으랴! 그때만 해도 해남도는 아득한 남녘땅이였다.

몇주야를 기차를 타고 달리고 달려서 광주에 도착, 거기서 또 36시간이나 배를 타서야 드디여 해구에 도착했다. 해구에 이르자마자 진순옥은 리질에 걸려 드러누웠다. 병원에서 대충 치료를 받고 또 출발, 12시간동안 목탄뻐스를 타고 삼아까지 가는 길에 뻐스가 올리막을 오르지 못하면 길손들은 내려서 한참이나 걸어야 했다. 저녁에 삼아에 도착하여 하루밤 묵고 이튿날 또 나루배에 앉아 강을 건너 드디여 최종목적지인 월천촌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기나긴 로정이 12일이나 걸렸다.

《새 병원으로 쓸 건물은 당학교 교사로 쓰던 단층 기와집이였어요. 주위는 마을과 바다였고 전기도 없어 저녁이면 석유등불을 비추며 주사를 놓았지요.》 진순옥녀사는 당년의 어려웠던 여건을 이렇게 회억했다.

삼아의 무더운 여름은 진순옥으로 말하면 너무나 참기 어려운 고역이였다. 거기에 수토가 맞지 않아 처음 몇년간은 배탈도 자주 생겨 고생했다. 24세의 꽃나이에 진순옥은 부모생각, 고향생각, 동포생각에 뒤엉켜 남모르게 눈물을 몇번이나 흘렸는지 모른다. 그래서 초기에 연변으로 가겠다고 단위에 신청한 일도 있었다. 그후 그는 차츰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곳에서 조선족은 배겨내지 못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어요. 비록 조선족은 나 혼자지만 민족을 위해 빛나게 일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지요.》

마음을 다져먹은 진순옥은 매일 환자들을 웃음으로 대하고 일에 열정을 쏟아 부었다. 의사와 간호원들이 함께 본 병원 라틴어시험에서 1등을, 호사기술시험에서도 1등을 따냈다.


명절 때 병원에서 조직하는 문예행사에도 그녀는 학생시절의 실력을 발휘하여 어머니가 만들어준 한복을 입고 조선족춤을 멋지게 춰 소문났다. 60년대 중앙과 외국지도자들이 삼아에 오면 진순옥은 병원무용팀을 무어 자기가 안무한 무용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리고 해남의료계통 운동대회에서도 그녀는 여러차나 100메터, 150메터 달리기종목 1등을 따내 사람들은 《저 조선족처녀는 정말 재간둥이다.》 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진순옥은 광주의학원을 졸업하고 병원에 배치되여 온 한족청년 로천우(卢天佑)와 3년동안 사랑을 속삭이다가 1967년에 결혼하고 단란한 가정을 이뤘다.

결혼후에도 진순옥은 사업에 꾸준히 몰두하였다. 1982년 100여명이 참가한 간호사시험에서 44세의 나이로 1등을 따내 또 한번 소문났다. 진순옥은 선후로 병원의 모범간호장, 우수당원. 해남농간총국 로력모범, 선진사업자로 당선되였다. 10여년동안 간호장직을 맡아하다가 후에는 300여명의 간호원과 30여명의 호사장을 관리하는 병원 호리부주임으로 되였다.

꿈에도 그리는 고향과 민족


진순옥은 고향 연변과 천리만리 떨어져 살았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오히려 해를 갈수록 더 짙어만 갔다. 조선족에 대한 그리운 마음 역시 한시도 변함없었다. 1950년대에 진순옥은 삼아에서 우연히 조선족 한분을 만나게 됐다. 해방전 16살에 한국으로부터 일본, 상해를 거쳐 배를 타고 삼아에 정착하고 해방후에는 삼아발전공장의 전공(电工)으로 있던 김태일이 조선족간호사 한분이 병원에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김태일은 너무도 반가와 안해(한족)와 어린 자식 2남 3녀를 이끌고 나루배를 타고 강을 건너 일부러 진순옥을 만나러 찾아왔다. 그때로부터 진순옥은 자기 어머니와 년세가 비슷한 김태일을 부친처럼 대했고 자기를 누나, 언니라고 따르는 그의 자식들을 친동생처럼 데리고 다니며 영화구경도 같이 했다. 김태일이 한국 친척을 찾으며 편지거래를 할 때 진순옥은 조선글로 편지를 써주기도 했다. 1992년 김태일이 세상을 떴을 때도 그녀는 고인의 장례에 참가해 명복을 빌었다.

1970년대 연변농학원, 사평농학원의 육종대원들이 삼아에 와 몇년 있는 기간에 병보러 병원에 온 룡정육종대의 조선족들을 알게 되였다. 《만리타향에서 고향의 동포를 만난 그때 그 심정 얼마나 기뻤던지 몰라요. 가끔 모여서 춤도 추고 노래도 함께 부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요. 그들이 고향에 돌아갈 때 나루터까지 바래다주며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진순옥과 삼아에 월동하러 온 조선족들(오른쪽 저자).


1994년에 진순옥은 37년의 재직생활을 마무리하고 정년퇴직하였다. 퇴직후 진옥순의 생활은 여전히 다채로웠다. 삼아시를 대표하여 해남성로년운동회에 3차례나 참가하였으며 삼아시로간부문예대에 참가하여 순회연출, 병원무도장, 광장무도장에서 로년보건무, 사교무를 보급하며 유쾌한 나날을 보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조선족, 한국인들이 삼아에 오기 시작했다. 2005년 겨울 할빈, 연길에서 과동하려고 삼아에 온 조선족 30여명이 련환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에 첫번째로 요청된 분이 진순옥이다. 수십년간 고향을 떠나서 떳떳이 살아온 삼아의 조선족원로 진순옥녀사의 발언을 듣고 모임에 참가한 조선족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지난 50년동안 진순옥은 고향에 8번 다녀왔다. 매번 고향으로 갔을 때마다 그녀는 고향에 하루라도 더 머물고 싶었다. 한번은 남편을 먼저 보내놓고 자기는 석달이나 더 머물러있기도 했다. 《참으로 고향이란 뭔지, 동포란 뭔지.》 진순옥녀사는 어릴적 고향모습이 지금도 가끔 꿈속에 나타난다면서 애석한 그리움을 보였다.

민족단결의 화목한 부부 단란한 가정

진순옥의 남편 로천우(오른쪽)는 삼아에서 이름난 의사다.

진순옥의 아들 로충과 로가는 딸의 호구를 모두 조선족으로 등록했다.

50년전 혈혈단신이였던 진순옥은 삼아에서 지금 8명 식구가 단란히 모여 사는 대가정을 이루었다. 남편 로천우는 조선족안해를 얻은것을 자랑하며 연변 처가집에도 네번이나 동부인해 다녀왔다. 로천우는 삼아에서 이름난 의사이며 또 과외로 음악을 즐긴다. 조선족노래책을 보면 가사를 몰라도 악보를 보고 음정과 박자가 틀림없이 술술 곡을 넘긴다. 연변에 가서 일부러 고급좌석표를 사서 부인과 함께 연변가무단공연을 관람하기도 했다. 그는 홀로 외로워하는 안해에게 뜻밖의 기쁨을 안기려고 안해를 몰리고 연변에 조동신청서를 세번이나 보내기도 했다. 그중 두번은 연변에서 받기로 동의했지만 삼아병원에서 극구 만류하는 바람에 차마 그만둘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맏아들 로충(卢忠)과 둘째아들 로가(卢珂)가 소학교에 입학할 때 이들 부부는 민족을 조선족으로 신청했다. 진순옥의 남편 로천우는 《조선족으로 해야지. 대대로 내려가며 그렇게 해야지.》 라고 말했다. 현재 진순옥과 로천우의 두 아들도 다 커서 장가가 딸 하나씩 두고있는데 손녀들도 호구에 모두 조선족으로 등록되여 있다.

로충과 로가는 조선족은 문명하고 지식수준이 높으며 례절이 밝은 우수한 민족이라고 자랑하며 밖에서 TV에 조선족프로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집에 계시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꼭 보시라고 한다.

야자수 우거진 해남도에 곱게 핀 연변의 진달래ㅡ진순옥녀사는 오늘도 자신이 조선족의 일원임을 항시 마음속깊이 명기하고있다. 연변의 한떨기 진달래가 반세기를 뿌리내려 이제는 떨기떨기 진달래를 자랑하고있다. 진순옥녀사가 부디 만년에 건강장수하시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윤수범

편집/기자: [ 리철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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