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저소득층 서민들의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내부수리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2일 한 주민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고 있다. | 김창길 기자
ㆍ서울 동자동 쪽방촌 개선사업, 이주대책 없어 주민들 노숙도
ㆍ서울시 “빈 쪽방 많았다” 해명
한국전쟁 이후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만들어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이곳에서 지냈던 일부 주민들이 서울시의 ‘이주 대책 없는 복지정책’으로 올여름을 힘겹게 보내고 있다.
4.3㎡(1.3평) 남짓한 동자동 쪽방에서 살았던 김모씨(59). 지난 6월 초 건물 관리인에게 “쪽방을 수리해야 하니 보름 안에 방을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기간이 지나 우선 쪽방을 비워주고 이사할 곳을 찾느라 냉장고를 잠시 길거리에 내놨다가 잃어버렸다. 김씨는 중고 냉장고를 구입해 인근 쪽방촌에서 지내고 있다. 최모씨는 집주인이 한 달도 채 안되는 이사기간을 주고 방을 비워달라고 요구해 6곳을 돌아다닌 끝에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8만원짜리 방을 구했지만 방이 너무 좁아 쓰던 장롱 등을 버려야 했다.
동자동 쪽방에서 12년을 거주한 이모씨(71)는 갑작스러운 집주인의 이사 요청을 받고 이웃의 도움으로 이사비용 10만원을 충당했다. 같은 건물에 살았던 또 다른 이모씨는 이주할 방을 구하지 못해 교회나 공원에서 노숙을 하다 취객에게 구타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는 사고를 당했다.
주모씨(44)는 쪽방촌을 나온 뒤 한 달 동안을 하루 1만원짜리 남대문 쪽방이나 공원에서 지내는 불편을 겪었다. 주민들은 “쪽방 수리도 좋지만 하루하루를 버티는 서민들에게 이사비용도 주지 않고 갑자기 짐을 싸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현실을 잘 모르는 시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지난 6월 쪽방촌 내부수리 사업을 시행한 곳은 동자동 35-145번지와 9-3번지 2곳. 32명이 이 사업으로 부랴부랴 짐을 꾸렸지만 돌아온 주민은 2일 현재 6명뿐이다. 서울시는 내부수리 사업 이후 입주 대상자를 공개 모집했다.
이 사업은 서울시가 ‘서울역 쪽방상담소’에 위탁해 쪽방 건물 3곳의 건물주와 5년간 임대차계약을 하고, 내부수리를 한 뒤 지금보다 낮은 가격으로 쪽방을 재임차하기 위해 추진됐다.
김창현 동자동 사랑방 대표는 “사업 취지는 공감하지만, 이사비 10만원이 없어 쩔쩔매는 주민들에 대한 배려는 없었던 것 아니냐”면서 “서울시가 쪽방 주민을 위한 사업이라면서 정작 주민 불편은 무시한 채 건물 주인과만 소통했다”고 지적했다.
서울역 쪽방상담소 측은 “건물 주인에게 해당 사업을 설명했지만 건물 주인이 건물 관리자에게, 다시 건물 관리자가 주민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소통이 안된 것 같다”면서 “수리를 시작하기 2주 전쯤 서울시와의 계약이 확정돼 상담소가 직접 주민에게 설명할 기회가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수리 후 임차료를 내린다는 계획을 주변 쪽방 건물주가 알면 반발을 살지도 몰라 사전에 주민에게 설명하지 못했다”며 “주변에 140여곳의 빈 쪽방이 있기 때문에 이주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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