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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희의 뮤직칼럼] 사춘기를 벗어난 소년, 임재범

[기타] | 발행시간: 2013.12.11일 10:27

보컬이었던 김종서가 그룹(시나위)에서 탈퇴하고, 기타리스트 신대철은 이미 잡혀있던 공연을 위해 대기실에 혼자 앉아 기타 톤을 점검하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와 신대철의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랫소리에 흠칫 놀란 신대철은 연주를 계속했고, 노래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낯선 이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었다.

“누구시죠?”

“나야. 임재범.”

사실 신대철과 임재범은 같은 서울고등학교 출신이다. 두 사람은 천재적인 기타리스트와 보컬로 학교 내에서 유명했지만, 정작 학교에서 마주친 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풍문으로만 들었던 서로의 존재를 공연장 대기실에서 마주하게 된 것이다.

가수 임재범의 어린 시절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MBC 간판 아나운서였던 임택근이 그의 친부이며, 배우 손지창이 이복동생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고아원에서 자란 그는 나중에 할머니의 손에 맡겨지게 됐고 가족의 따뜻함을 모르는 외로운 아이로 성장했다.

뭔가 항상 불안해하고 가끔은 괴팍한 성향도 내비쳤다. 갑자기 화가 나거나 마음이 뒤틀리는 일이 생기면 곧장 ‘야수’로 변해버리기 일쑤였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큰 얼굴, 체격 때문에 ‘곰탱이’라는 별명이 있었을 정도로 여리고 순한 심성을 가진 아이였다. 어렸을 땐 피부가 하얗고 이름에 ‘범’자가 들어간 탓에 ‘백호’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학창시절에는 평범하지 않은 가정 문제로 인해 점점 삐뚤어져 나갔다. 외로움의 시간을 음악으로 달래기 시작했다. 뭔가 하나에 꽂히면 끝까지 파헤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도 그 때 생긴 것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에 뭔가에 꽂혀야 힘든 일들을 잠시 잊을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스무 살을 갓 넘긴 임재범이 신대철의 대기실에 불쑥 나타난 건 하나의 ‘사건’이었다. 음악에 대한 목마른 열정을 더 이상 숨기고 살 수 없었던 임재범이 제발로 신대철을 찾아갔기 때문이다. 그렇게 김종서의 빈자리를 보컬 임재범이 메운 채 1986년 시나위 1집 ‘Heavy Metal Sinawe’가 발매됐고, 당시 임재범이 부른 타이틀곡 ‘크게 라디오를 켜고’는 록 마니아들과 평단을 사로잡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인기를 뒤로 한 채 임재범은 영국에 있던 김도균의 엽서 한 통을 받고 비행기에 올랐다. 본격적으로 록음악을 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영국에서의 생활은 형편 없었다. 돈이 없어 제대로 먹지 못해 한 달 만에 체중이 15kg나 빠졌다. 하지만 극도의 긴장감 속에 강행한 현지 공연은 매번 좋은 반응을 얻었고, 아티스트로서의 자신감도 생겨났다.

다시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는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목숨처럼 사랑하고 갈망했던 록을 포기한 채 발라드 음악으로 ‘솔로 데뷔’를 하게 된 것. 임재범은 큰 혼란에 빠졌다.

당시 록 뮤지션들은 그룹사운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했고, 예나 지금이나 대중과는 거리가 있었다. 많은 고민 끝에 임재범은 ‘이 밤이 지나면’이란 곡으로 솔로 데뷔를 하기에 이른다. 로커의 상징과도 같았던 긴 머리를 자르고 샤프한 남자가수의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인기는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하지만 임재범의 가슴 한 구석에는 좌절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록음악을 하는 동료들은 임재범에게 비난의 화살을 쏴댔고, 한 열성팬은 임재범 1집 음반을 박살낸 채 사진을 찍어 임재범에게 보내기도 했다.

당시 60만장이라는 어마어마한 음반 판매고를 올렸지만, 임재범에게는 인기가 오히려 ‘가시방석’ 같았다.
결국 괴로움을 참을 수 없었던 임재범은 강원도 오대산에 갔다. 그곳에 거주 중이던 한 지인이 집을 내주어 1년 동안 혼자 칩거에 들어간 것.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에서 벗어나 음악적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후 임재범은 산이며 바다를 떠돌다 돌아오고, 또 떠났다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로커로서의 자존심을 접지 못해 방황하던 때, 뮤지컬 배우였던 미모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약속했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결혼 3일 전, 제주도 약천사 혜인스님에게 사미계를 받고 갑자기 중이 되기로 결심한 것. 복잡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힘들어하는 그에게 혜인스님이 머리를 깎겠느냐고 물었고, 임재범은 바로 그러겠다고 대답을 한 것이다.

그에게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결혼이 그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두려워서였을까. 아니면 새로 태어난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을까. 자료화면에 등장하는 삭발한 임재범의 결혼식 장면은 오래도록 인상에 남았다.

결혼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사랑하는 아내가 갑상선암을 시작으로 위암, 간암, 자궁암까지 전이가 돼 수술마저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우울증과 조울증에 시달리며 가정에 무관심했던 임재범은 아내의 투병에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혹시나 방황하고 속 썩이는 자신 때문에 아내가 아픈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고 한다.

임재범은 그러는 동안 OST에 간간이 참여한 것 외에는 수입이 별로 없었다. 밤 9시가 되면 전깃불을 끄고, 물 아끼느라 씻는 것도 자제했다고 한다. 록 스피릿이 생활까지 담보해주는 건 아니었다.

아내의 암 선고 앞에서 자존심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임재범은 스스로 가수들의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인 MBC ‘일밤-나는 가수다’에 출연하기로 결심했다. 결과는 또 다시 폭발적이었다. 이 프로그램 하나로 임재범은 ‘제2의 전성기’를 누리게 됐다.

그동안 그 에너지를 어떻게 감추고 살았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무대 위에서 절규하는 듯 노래하는 그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가슴을 후벼 팠다. 마치 그가 살아온 이야기가 고스란히 마이크를 통해 세상에 뿜어져 나오는 느낌마저 들었다. 아내를 위한, 가족을 위한 마음이 대중에게 전달되고 인정 받으면서 임재범은 비로소 활짝 웃을 수 있게 됐다. 아내의 건강 역시 좋아졌다고 한다.

이제는 소주 한 잔 기울일 동갑친구 하나 없는 것이 아쉽다고 말하는 임재범. 아무리 헛소리를 지껄여도 자신을 향해 “정신 차려”라고 조언해주는 친구가 없었다는 그의 말이 뼛속까지 깊이 들어차 있는 외로움의 무게를 느끼게 해준다. 그 외로움을 견뎌내려고 음악, 종교, 책, 심지어는 외계의 본질까지 파고들었던 그다.

사람들은 그를 폭행이나 구설수, 혹은 ‘기인’으로 기억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는 스스로에게 충실한 가수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인기, 명예, 돈, 권력을 원하지만 일부러 ‘아닌 척’하며 살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세월에 좀 더 솔직해지기로 했다는 그의 미소에서 이제야 사춘기를 벗어난 소년의 모습이 떠올랐다. 무작정 방황하고 집을 떠나는 것만이 만사 해결책은 아니다. 노래하고 싶을 때 노래하고, 사랑하고 싶을 때 실컷 사랑할 수 있는 것만큼 큰 용기는 없다. 임재범은 그래서 현재진행형의 가수다.

가수 겸 칼럼니스트

사진=한윤종 기자 hyj0709@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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