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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교황을 바라보는 이유… 가난한 삶으로, 가난한 자의 벗 되어, 가난을 만든 세상을 꾸짖다

[기타] | 발행시간: 2014.01.17일 21:20

교황의 권고문 ‘복음의 기쁨’ 표지

ㆍ권위 내려놓은 소박한 이름·옷차림과 자본주의의 불평등 구조 비판하는 말과 행동까지

교황 프란치스코는 2013년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이 될 만큼 한국 사회는 물론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교황이 타임에 올해의 인물에 선정된 것은 1994년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그 이유는 신자유주의로 인해 세계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교황 프란치스코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를 요구하고, 교회가 세상 속으로 깊이 다가가서 치유할 사명이 있음을 알려주었다는 점, 교황이 말만 하지 않고 스스로 소박하고 가난한 삶을 일상 속에서 선택하고 있다는 점, 우리 시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낙태한 이들이나 동성애자 등 성소수자들에게도 자비를 역설한 점, 타종교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점 등에서 세계인들의 공감을 얻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며, 이 체제의 희생자인 가난한 이들의 비참을 보면서, 첫 순방지였던 이탈리아의 람페두사에서 “누가 이들을 위해 울어줄 것인가”라고 호소하는 등 선의를 가진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러한 신선한 매력은 ‘교황’(Papa)이라는 다소 권위적인 명칭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3월13일 교황으로 선출되었을 때 ‘프란치스코’라는 교황명을 선택하면서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프란치스코는 266대 교황인데, 아직까지 ‘프란치스코’를 선택한 교황은 없었다. 교황은 세계 가톨릭교회의 수장이며 주교단 단장으로 교회권력의 정점에 있는 직책이지만,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는 권력과 인연이 멀다. 그는 작은형제회의 창립자였지만 평생 사제서품을 받지 않고 평수사로 살았다. 그리고 프란치스코의 키워드는 ‘가난’과 ‘평화’다. 청빈하게 살며, 모든 피조물들과 대화를 나누고,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몸을 던졌다.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뿐 아니라, 그는 십자군전쟁 당시에 무슬림 진영에 단신으로 넘어가 술탄을 만나 우정을 나누었다. 자못 호전적인 유럽문명 안에서 그리스도교의 ‘절대적 평화주의’는 그에게서 시작되었다. 이 영향은 지난 1년 동안 교황 프란치스코가 행한 발언 곳곳에 스며 있다.

■ 1%의 관대함이 아니라 ‘99%의 목자’ 실천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은 교황 프란치스코만의 호소가 아니다. 성탄과 연말이 되면 구세군에서 자선냄비를 운영하고, 방송국에서도 불우이웃돕기를 한다. 불교에서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라고 해서, 진리를 깨닫고 중생들을 위해 보시를 하라고 호소한다. 가톨릭교회에서도 지난 교황들은 여러 가지 메시지와 담화문, 회칙, 훈령 등을 통해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표명해 왔다. 그러나 정작 그 말을 하는 교회는 실제적인 가난을 살아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동안 착한 부자들이 갖는 ‘관대함’ 정도를 교황들이 보여주었던 셈이다.

교황이 안락한 바티칸 교황궁에 머물면서, 장엄한 예식과 온갖 시중을 받으면서 생각하는 ‘가난한 사람들’이란 추상적인 모습을 띠기 쉽다. 상상 속의 가난한 이들에게 얼마나 마음을 쏟을 수 있겠는가? 유럽 출신의 지난 교황들이 해방신학에 대한 편견을 지녔던 것도 ‘세상의 비참’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철도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교황 프란치스코는 소작농의 아들이었던 교황 요한 23세와 벽돌공의 아들이었던 교황 요한 바오로 1세처럼 몸소 가난을 경험했으며, 가난한 이들의 참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중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1세는 단 33일밖에 교황직을 수행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이지만, 새로운 관례를 만든 분이다. 1978년 8월26일 교황이 된 요한 바오로 1세는 대관식에 앞서 몇 가지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교황은 스스로 ‘짐(朕)’이라고 부르던 관례를 깨고 ‘나’라고 지칭한 최초의 교황이었다. 봉건시대의 유물인 권위적인 호칭을 버린 것이다. 또한 장엄한 대관식을 간단한 ‘교황 즉위 미사’로 바꾸었다. 그리고 교황 대관식 때 머리에 쓰던 삼층관(Papal Tiara)도 “‘종들의 종’이 머리에 쓰기에 너무 무겁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한걸음 더 나갔다. 교황 선출 직후에 성베드로 성전 발코니에 처음 인사하러 나가면서도 장엄한 홍포를 두르지 않고 흰색 수단(cassock)만 입고 관중들 앞에 나섰다. 교황 즉위미사에서도 자신을 ‘교황’이라 부르지 않고 줄곧 ‘로마의 주교’라고 겸손하게 소개했다. 자신은 로마교구, 즉 라틴교회의 수장이지 전 세계 교회의 수장이 아니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렸다. 이는 역사적으로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로 나뉘어 갈등이 많았는데, 자신을 서방교회의 총대주교로 소개한 셈이다. 이날 교황은 “가장 가난한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 로마 주교의 소명”이라면서 사람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 특히 가난한 이들의 목자로 살아갈 것을 약속했다.

교황은 1992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보좌주교로 임명됐을 때부터 사용하던 철제 십자가를 걸치고, 교황권의 상징인 ‘어부의 반지’도 도금한 것이다. 물론 보석으로 장식된 삼층관도 쓰지 않았다. 그리고 교황의 붉은 신발 대신 자신이 콘클라베 참석차 아르헨티나를 떠날 때 친구가 선물한 검정색 구두를 계속 신고 있다. 그는 바티칸궁이 아니라 게스트하우스인 성 마르타의 집에 살며 다른 주교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리무진 대신 30년 된 르노차를 타고 다니며 “신부와 수녀들이 자동차 전시관에서 기웃거리는 광경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그런 관심을 굶주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쏟아야 한다”고 탄식했다.

■ 경제권력 비판으로 공산주의자 비난 받기도

그러나 교황 프란치스코가 개인적 차원에서 소박한 삶을 선택한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사회적 입장이다. 교황은 지난해 11월26일 자신의 첫 번째 사도적 권고문인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을 발표하면서 분명한 교회개혁 의지를 보였을 뿐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강력히 비판하기도 했다. 마치 해방신학의 대부인 브라질의 돔 헬더 카마라 대주교가 “내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을 때 그들은 나를 성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들이 왜 가난한지 묻자, 그들은 나를 공산주의자라고 불렀다”고 한 말처럼, 교황 프란치스코에게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런 발언은 주로 미국에서 나왔는데, 교황이 적시한 ‘금융자본주의’의 산실인 월가 부자들의 견해다. 미국 언론인 러시 림바우가 “교황의 주장은 완전한 공산주의”라고 비판하자, 교황은 이탈리아 일간지 ‘라 스탬파’와 가진 인터뷰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잘못된 것”이지만 “난 내 인생에서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만나왔다. 그들은 좋은 사람들이고, 그 만남이 불편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자신의 발언은 대부분 사회교리에서 역대 교황이 다룬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교황은 ‘복음의 기쁨’에서 “하느님은 모든 형태의 노예적 삶에서 해방되기를 원하신다”며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고, 평화를 촉진하는 것이야말로 선교적 교회가 되기 위한 구성적 요소”라고 강조했다. 또한 배제와 불평등의 사회를 비판하며 “오늘날은 경쟁과 적자생존의 법칙에 지배되고 있으며, 힘 있는 사람이 힘 없는 사람을 착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자본주의를 ‘새로운 우상’으로 지목하며, 국가도 통제할 수 없는 경제권력은 ‘새로운 독재’라고 비판했다. 자유시장을 비판하는 교황의 태도에 그들은 당연히 불편했을 것이다.

교황은 해방신학자들이 줄곧 말해왔던 것처럼 “부자와 자본가들에게 저당 잡힌 교회를 다시 가난한 이들에게 돌려주려는 원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교회는 이제 야전병원처럼 교회 밖으로 나가서 세상의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하고, 삶의 현장에서 그들과 연대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교회는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가난해질 용의가 있어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지난 12일 새 추기경을 선임하면서, 자신이 임명한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루드비히 뮐러 대주교를 추기경으로 지명했다. 뮐러 대주교는 2004년 해방신학자인 구티에레스와 함께 <가난한 이들의 편에 서서 : 해방신학>이라는 책을 출간한 바 있으며, 해방신학의 복권을 강력히 옹호해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아직 명시적으로 해방신학을 지지한 적은 없지만, 가난한 자에 대한 착취를 비난해왔고 가톨릭교회가 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촉구해왔다는 점에서 해방신학의 견해에 접근해 있다. 또한 교황은 1980년 엘살바도르에서 군부독재의 폭정을 비판하다가 암살당한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의 시성 절차를 진행시키고 있다. 해방신학은 그동안 가난한 이들 가운데서 교회가 새롭게 태어난다고 주장해 왔으며,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교황 프란치스코의 사목적 태도에 닿아 있다. 이제 가톨릭교회는 새 교황을 통하여 군주가 아닌 ‘맨발의 그리스도’를 다시 되찾고 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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