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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지는 꽃앞에서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4.02.13일 09:43
봄과 여름의 화려한 꽃과는 달리 서늘한 가을에 지는 꽃을 마주하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허전해진다.

가을꽃이 지면 우리 삶에서 또 한해가 흘러가기때문인지 자꾸 울고싶다. 꽃이 필 때는 눈으로 보고 꽃이 질 때는 마음으로 느낀다고 곱고 촉촉하던 꽃술이 누렇게 말라 엉켜붙은것을 보노라면 꽃들의 유한한 생애가 가슴을 깊이 파고든다.

나의 음식점은 진거리중심에서도 제일 번화한 상업거리에 자리잡고있어 온종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리는 차량들과 장사군들의 사구려소리가 행인들의 조잡한 흐름과 음성에 뒤섞여 문만 열면 벌둥지가 터진듯이 떠들썩하다. 다행히 뒤문을 나서면 곧바로 시장입구와 잇대인 대통로가 바라보이는데 인행도의 한 귀퉁이에 누군가 심어놓은 코스모스, 국화가 피여있어 계절병을 앓는 나에게 위안이 된다. 그리고 하루에도 손님들의 까다로운 식성을 맞추느라 엎디면 코가 닿는 시장인데도 종주먹을 쥐고 엎어질듯 수십번씩 달음박질하는 나의 피로를 말끔히 가셔주기도 한다. 때로는 좀 천천히 뛰여다니라면서 그 연한 꽃잎새로 앞치마깃을 살짝 건드리는것 같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꽃이 피는건 힘들어도 지는건 잠간이더군》 라고 한 어느 시인의 말처럼 며칠전만 해도 천상의 한쪼각을 떼여놓은듯 맑고 환한 가을볕에서 비단실을 보풀린것 같은 꽃잎들을 하느작거리며 행인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던 꽃들이 풀 먹인 옥수수 수염처럼 뭉쳐져있는것이 아닌가! 그 강한 해빛과 비바람속에서도 고운 선을 고이 지키며 그 여린 이파리로 삶의 리유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속삭이던 청순한 꽃들이 봄볕보다 더욱 화사한 해살아래 지다니! 난 무릎을 꺾고 스러지는 꽃이파리들을 애모쁜 심정으로 쓰다듬었다. 순간 그 꽃속에 눈물이 꽃술처럼 말라붙은 찬우와 애화의 동글납작한 애처로운 얼굴이 번갈아 떠오르며 나를 괴롭혔다.

꽃이 진 자리, 래년이면 또다시 약속처럼 꽃이 필것이지만 꽃보다도 더 어여쁘고 귀여운 찬우와 애화의 앞날은 찬서리에 떨어지는 꽃잎과 다를바 없지 않는가⁈

며칠전이다. 음식점의 단골인 찬우 아빠와 애화 아빠가 출국한다면서 날 찾아왔다.《음식점을 경영하니 아는 사람들이 많을텐데 애들을 맡길 집을 물색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적임자를 찾지 못하면 수소문해서 애를 키우려는 집에 의탁해도 된다는 말도 서슴없이 덧붙였다.

이제 겨우 다섯살인 찬우와 애화의 꽃잎같이 야드르르한 얼굴에는 눈물, 코물이 한데 엉켜붙어 마치 풀을 먹인 옥수수 수염처럼 뭉쳐있는 늦가을의 지는 꽃과 흡사했다.

총명하고 귀엽고 불쌍한 찬우와 애화를 바라보노라니 세살난 딸애와 한돐이 지난 아들을 둔 옆집에서《마라탕(麻辣烫)》음식점을 경영하고있는 20대의 한족 젊은이가 문득 떠오른다.

금년에 겨우 스물여섯살인 한족 젊은이는 어려서 엄마가 툭 털면 먼지밖에 없는 시골아빠와 리혼하고 떠나갔지만 품팔이를 하면서도 두 자식을 끝까지 지켜준 아버지가 있었기에 직업학교를 졸업하고 어깨너머로 배운 재간으로 진거리의 중심에 작은 규모의 《마라탕》음식점을 경영하고있다. 십여년래 일년에 네번씩 주인이 바뀌면서 본전마저 말아먹은 가게로 소문난 《불길》한 집터에서 기발한 아이디어와 경영노하우로 짧디짧은 3년사이에 손바닥만한 가게(53평방)에서 리윤을 올려 자가용과 살림집을 마련하였다. 아들딸을 낳고 우로는 부친을 모시고 아래로는 녀동생까지 거느리고 부럼 없는 나날을 보내고있다. 남들은 큰돈을 바라보지만 그는 달랑 6원짜리 《마라탕》 한그릇으로 돈낟가리를 쌓고있다.

《마라탕》 한그릇, 십원짜리 지페로 밥 한끼 해결하기 어려운 오늘의 시점에서 달랑 6원으로 뚝딱 한끼를 해결할수 있는 경영노하우로 부자가 된 애숭이 한족젊은이에게 머리가 수그려진다. 외국에 가서 부부가 십여년을 뼈빠지게 벌어도 애 하나를 키우기 힘들어하는 우리 일부 조선족가정에 비하면 이 얼마나 훌륭한가. 날에 날마다 조선족인구가 줄어듬에 따라 즐비한 상업거리가게들을 쥐 소금 녹이듯 야금야금 차지하던데로부터 거의다 차지한 한족들의 가게들, 뭉치돈을 벌려는 허황한 꿈으로 조선족들은 오늘도 래일도 하나둘 떠나가고 그 빈자리는 거의다 령역을 넓혀가는 끈질긴 한족들이 차지하고있다. 어쩐지 부럽기만 하다. 한족들은 남새를 팔든, 아이스크림을 팔든 빈둥거리며 노는 사람들이 없다. 집을 비우고 가게를 비우고 하나둘 떠나는것은 대부분 우리 조선족들이다.

조선족인구가 제일 많고 농부산물집산지로 소문난 시장을 둔 진거리, 지금은 길에서 주고받는 말들도 거의다 타민족언어이다. 그 누군가의 예언처럼 건물은 높아지고 집은 커졌지만 대신 조선족은 더 적어졌다…

현재 중국에서 1위를 기록하는 삼성전자 스마트폰이 《만리장성》을 넘었듯이 한족들은 출국하는 조선족농가의 땅을 한뙈기 두뙈기 사들이던데로부터 이제 대거 사들이고있다. 출국열에 들뜬 일부 조선족들은 아직 한창 씨붙임하는 새파란 봄이 완연한데도 7월말부터 입국이 가능한 출국비자에만 딱 들어붙어 낯 간지러운줄도 모르고 얼싸 좋다고 큰일이나 벌이듯 일찌감치 타민족들에게 밭을 임대하고 그 임대비로 애들을 동네집에 팽개치고 려관에 주숙하면서 종일 노래방이며 마작판, 유흥업소를 휘젓고 다닌다…

오늘따라 새삼스레 지는 꽃을 보며 나는 진한 애정을 더 느끼게 된다. 생명체로서의 그의 고유한 령역은 지는 꽃잎과 함께 다시는 돌이킬수 없다. 하물며 한창 부모의 사랑을 받아야 할 미래의 꽃송이―천진란만한 우리 아이들이 부모의 외면과 버림을 받는다면…

발밑에서 이리저리 나뒹구는 락엽처럼 사라져가는 꽃잎을 바라보며 안타까이 수십번 물었지만 꽃들이 떨어진 빈자리에는 처량한 가을바람만이 스쳐지났다.


/안수복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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