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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박바가지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4.04.10일 09:26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집집마다 박을 심었다.

박은 무엇보다도 흰 회칠을 한 초가집에 잘 어울렸다.

순후하고 투박한 시골사람들은 제비가 돌아오고 새순이 돋는 봄이면 잊을세라 울바자밑이나 처마밑에 박씨를 뿌린다. 그러면 곧 싹이 트고, 금시 넝쿨은 새끼줄을 타고 울을 넘고 담을 넘어 추녀에 걸친 장대를 타고 잠잠한 이영으로 기여오른다. 할머니나 어머니의 무늬 없는 치마저고리 같은 하얀 박꽃은 달밤이면 다소곳이 피여난다. 푸른 덩굴이 사그라지기 시작하면 재빛 초가지붕 여기저기에 한아름의 탐스런 박들이 매달린다. 이때 사람들은 적당한 크기의 똬리를 만들어 박밑에 받쳐준다.

흥부네 박에서처럼 금은보화가 막 쏟아지지 않지만 흰 베적삼을 입은 동네 할아버지들은 옹골차게 잘 여문 박을 신나게 톱질한다. 때가 묻지 않은 하얀 속, 흰씨! 그 흰색이 좋아서인가? 머나먼 시절부터 바가지는 흰것을 사랑하는 백의민족과 애환을 함께 해왔다. 각종 생활도구로 쓰임새가 다양해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용품이였다.

지금은 쌀에 돌이 거의 없지만 이전에는 쌀에 돌이 많았다. 옛날 어머니들은 쌀을 일 때 처음에는 이남박과 바가지로 일고 그다음에는 두개의 바가지로 서로 쌀을 옮겨 담으면서 돌을 골라냈다.

마을 우물터에 가서 은색 바께쯔(양동이)로 물을 길어야만 했던 녀성들에게 바가지는 필수였다. 바가지로 물을 넘실넘실 담았고 물동이우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하루에도 몇차례식 물을 길었다. 그러면 물이 물동이에 가득 담겨있는데도 신통하게도 한방울도 넘쳐나지 않았다.

집집마다 일년 박농사중에서 특별히 크고 모양 좋은것을 골라서 복바가지로 만든다. 그리고는 그 박을 딸의 혼수감으로 사용하거나 보관했다가 아들 세간날 때 이사짐에 실어보내기도 했다. 둥그런 박의 성질을 본받아 삶이 원만하기를 지향하며 복바가지의 소원까지 기원했으리라.

김치움에서 아삭하고 시큼한 김치를 내올 때도, 식솔들의 장국을 뜰 때도 어머니는 바가지를 썼다. 쌀이 떨어져 한숨을 쉬며 쌀을 꾸러 동네를 다니던 어머니 손에는 늘 바가지가 들려있었다.

정든 고향을 떠나는 황소가 끄는 소수레 이사짐속에 바가지만은 꼭 있었다.

고향의 고개길옆 옹달샘에는 조롱박이 언제나 달랑 놓여져있었다. 바가지의 자연스러운 냄새와 갓 푼 물이 서로 어우러진 물맛은 참 향긋했다.

너나없이 배고팠던 시절, 어느 시골마을이나 설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소한 풍경들은 얼추 류사했으리라…

내가 살던 우리 동네에서는 설날이면 《바가지에 음식 돌리는》풍습이 있었다. 주로 어르신들이 있는 집이나 평소에 신세를 졌던 집, 혹은 친분이 좀 두터운 이웃들에게 색다른 음식을 한바가지 골고루 담아서 보내는데 받은 집에서도 빈 바가지로 돌려보내지 않았기에 주는만큼 되받아왔다. 바로 이 심부름은 우리 집에서는 막내인 나의 몫이였다.

가끔 한학급 녀자애네 집으로 가게 되면 혹시 마주치는게 창피스러워 은근히 누나한테 좀 시키길 바랐지만 《바가지와 녀자는 돌리면 깨진다.》는 타박만 들었다. (이건 뭔 소리람?) 나는 투덜거리며 심부름을 할수 밖에 없었다. 그해 설날, 우리 집에서는 두부를 앗았는데 어머니는 얼마전 우리 마을로 이사온 영숙이네 집으로 다녀오라고 했다.

《금방 이사 와서 마을에 아는 친척도 없겠는데…》

예쁘장하게 생긴 영숙이와 나는 한학급이였다. 나는 울며 겨자먹기로 광목올자국이 선명한 흰 두부를 담은 바가지를 들고 영숙이네 집앞에 이르렀다.

문앞에서 한참 서성거리고있는데 때마침 구정물을 버리려고 영숙이가 문을 콱 열고 나오는바람에 나는 그만 손에 든 바가지를 떨구고말았다. 바가지는 깨졌고 두부는 땅에 흩어지고말았다. 내가 어찌할바를 모르고있을 때 영숙이 어머니가 나와서 부드럽게 타일렀다.

《일없다. 집에 돌아가 잘 먹겠다고 어머니께 전해라. 다른 말은 하지 말고.》

가슴이 한줌만해서 빈손으로 돌아온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어머니의 눈치만 살폈다. 얼마 지났을가, 영숙이 어머니가 바가지를 들고 우리 집에 들어섰다.

《따끈한 두부를 맛있게 먹었스꾸마. 이 골무떡이 맛있겠는지… 이 바가지도 씁소. 우리가 철이네 바가지를 쓰겠쓰꾸마.》

우리 집 바가지와 비슷한 바가지에는 고운 무늬가 새겨진 하얀 골무떡이 오롯이 담겨있었다… 그토록 고마운 영숙이 어머니, 나는 눈물이 울컥 솟아올랐다. 오늘까지도 나는 그날 영숙이 어머니가 빚은 그 골무떡만큼 맛있는 떡을 먹어보지 못했다. 바가지로 음식을 나누고 따뜻한 마음들을 나누던 그때가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그랬다. 바가지에는 순수한 시골사람들의 질박한 생활과 무르녹은 인심, 도타운 정, 서로 믿고 돕던 따뜻함과 신뢰가 꽃처럼 피여있었다.

손끝에 물 마를 새 없는 부지런한 어머니들처럼 하루도 쉴줄 모르는 바가지는 하루 이틀, 한해 두해 지나면서 색갈이 누렇게 변하고 닳고 닳아 반지르르해지다가 금이 가고 깨진다. 그러면 어머니는 바가지를 물에 불궈놓고 굵은 이불바늘로 꿰맨다. 이렇게 어머니의 손때가 묻어있고 가족들의 삶의 애환이 깃들어있는 바가지는 집안에서 대를 이어 사용하는 대물림보배로 된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박을 단순히 식물로만 보지 않았다. 강남 갔던 제비가 갖다준 박씨를 심은 흥부와 놀부, 그러나 박을 타니 흥부네 집엔 보물바가지를, 놀부네 집엔 도깨비바가지를 주지 않았던가? 이처럼 《흥부전》에서 바가지를 신비한 존재로 다루고있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는 박 같은 알에서 나왔다 해서 박씨가 되였다던가?

우리의 조상들이 빈털터리가 되여 눈물 젖은 두만강을 건너올 때 《쪽박을 차고》건너왔다고 말하지 않는가. 조상들은 바가지를 일상용구보다 흥부가 지녔던 소망 같은것과 함께 고향 초가지붕에의 향수마저 지니지 않았을가?

우리 민족 결혼식에서 무조건 빠지지 않는것이 신랑 신부가 함께 바가지를 던지는 장면이다. 바가지가 엎어지면 아들, 우로 향하면 딸이라는 결혼풍경은 우리에게만 있는 풍속이다.

또 바가지는 타령의 타악기로도 씌였다. 《삼국유사》의 원효조에 바가지를 두드려 악기로 썼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오랜 옛날부터 사용했던것으로 보인다.《바가지타령》도 있고 시골에서 겨울이면 아낙네들은 따뜻한 정지구들에 삥― 둘러앉아 바가지를 돌려 꼭지가 가는 사람에게 노래를 시키기도 했다. 녀인들은 바가지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면서 미운 정들을 날려보내고 살아갈 용기와 힘을 다듬어낸것은 아니였을가?!

많은것을 담았고 많은것이 넘쳐났던 모나지 않은 동그란 박바가지! 모든것을 포용하는 후덕하고 포근한 어머니의 심성과 자태가 바가지에 어려있다.

언제부터인가 초가가 걷히면서 그토록 요긴하고 랑만과 정이 담긴 박바가지가 거의 사라지고있다. 그대신 앙증맞은 플라스틱 바가지가 범람하고있다. 값싸고 색상도 곱고 모양도 세련된 플라스틱 바가지지만 기분이 언짢아진다. 그때의 그 랑만, 그 바가지에서 풍겨나오던 그윽한 인심이 그래 인젠 영영 사라진단 말인가?!

부디 박바가지에 서린 민족적정서와 우리 녀성들의 대물림 사랑과 인고의 삶의 숨결 그리고《흥부의 박》같은 소망은 세월의 물살에도 영원히 씻겨내려가지 말아야겠다. 우리의 결혼식에서 바가지를 뿌리는 풍경이 영원히 없어지지 않듯이.

그것은 우리의것이니깐!

/장수철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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