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혹스런 색갈이 번개치는 세상
흐려지는 눈길이 주야의 흑백마저 엇갈릴 때는
공방 어두운 고적속에서 조용히 마음의 등불을 켠다
삼가 질퍽한 음욕의 함정에 빠지지 않음은
하얗게 타는 순일의 섬광이 불의의 욕념을 소진했음이요
덧없는 은원의 속념에 홀려들지 아니한것은
흐린듯 밝은 인의의 반디불로 천고의 의리를 지켜왔음에라
때로 분명치 못한 시비의 교전에서
명확한 지향이 흔들리지 아니한 불의의 견정은
랭철한 신념의 불빛이 백일과 더불어 항상 밝아있었음이다
소중히 간직한 마음의 등불이 항상 켜져있을 때
나의 생명은 비로소 먼 하늘의 별처럼 반짝이였다
미처 몰랐어요
동녘의 어둠속에서 일어나
뜨거운 정열로 종일 대지를 보듬어주고나서
서녘의 지친 노을을 타고
다시 어둠속으로 들어가는 해의 고달픈 하루를
서늘한 그늘아래 있을 때는 미처 몰랐어요
하찮은 풀대마저 하늘을 바라보듯이
우로 오르며 높이와 첨단을 다투는 세상에서
오로지 낮은 아래로만 흐르며
틈새에 스며들고 빈 공간에 은닉하는 물의 어진 품성을
마음이 젖어있을 때는 미처 몰랐어요
먼지같은 흙을 모아 부단히 두터워지고
주먹같은 돌덩이를 쌓아 무한히 굳어지어서
준험한 산맥을 품어도 부담스럽지 않고
무상한 하해를 담아도 무너 안 지는 땅의 무애한 덕량을
그의 품에 안겨있을 때는 미처 몰랐어요
누구도 상상치 못했던것을 구상해내고
불가능한것 없이 모든것을 해내는 영재들앞에서
그들의 날카로운 예지와 무겁한 담량을 우러러볼 때
사람의 어진 마음은 하늘보다 높고 땅보다 넓다는것을
별로 하는 일 없을 때는 미처 몰랐어요
추색 일별
한세상 맵짠 바람을 비벼대던 초목들이
늦가을의 풍전에 진정이 고스란히 발로되면
류달리 진성이 묻어나는 신기한 모경에 눈길이 쏠린다
삭풍이 겹겹이 둘러싼 허울을 벗기면
얼럭덜럭한 욕념에 우불구불하게 굽은 가지들이
시기와 질투에 날카로와진 가시나무 아카시아 말고
얄팍한 잎새로 단조로운 산들을 빨갛게 물들이며
날이 차거울수록 더욱 아름답게 단장해주는
먼산의 단풍나무가 산객들의 눈길을 끈다
사나운 소슬바람에 허리 굽히지 않고
저무는 노을에 미련이 짙어가는 풀대가 적지 않지만은
해빛의 분초를 아끼는 오곡밭에 끼여들어
멋없이 그늘을 드리우고도 잘난척하는 싱거운 쑥대 말고
떨기떨기 가느다란 허리를 기대고 서서
바람에 시달리는 둔덕 쓰다듬는 하이얀 억새
늙을수록 찬연한 그들의 풍채 길손들의 가슴을 울린다
/(단동)허형행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