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동안 연변축구와 생사고락을 함께 하면서 울고 웃던 나날들을 생동하게 담고 싶었다.특히 연변 나아가 전국적으로 소문난 열혈팬 류장춘회장을 비롯한 우리 연변축구팬들의 고달프던 나날들과 즐거웠던 그 시절들을 잊지 못해 글로 남기고 싶었다.” 24일 저녁, 연길시허헌구강병원 허헌원장은 자신의 생일날을 계기로 연길시혜영식당에서 있은“연변축구와 함께 울고 웃으며” 처녀작 기획모임에서 이렇게 자신의 동기를 소박하게 터놓았다.
주체육국 주최로 진행된 이날 모임에는 주체육국 해당사업일군,연변축구팬협회 회원,연변언론분야 스포츠기자 및 허헌원장의 친척,친우들이 참석하여 그의 처녀작 기획을 둘러싸고 허심탄회한 소감들을 서로 주고 받았다.
이제 바야흐로 고고성을 울리게 되는 그의 처녀작 “연변축구와 함께 울고 웃으며”는 생생한 응원장면사진편, 본인작품편, 언론분야 취재기사편 등 3개 부분으로 구성되였는바 그가 14년간 연변팀의 열혈팬으로 몸담그면서 체험한 기쁨과 슬픔들을 사진으로, 본인의 글로, 스포츠기자들의 기사들로 살아 숨쉬듯 생동하게 그리고 있다.
“1999년, 당시 연길축구팬협회(연변축구팬협회 전신) 비서장직을 담당하고 있던 최동섭부교수(원 연변대학 체육학원 부교수, 작년 2월 별세)의 추천으로 이 협회에 몸담그게 되였다.” 허헌원장은 지난세기 90년대부터 연변축구를 알게 되였고 그때로부터 시작하여 연변팀과 함께 울고 웃으며 때로는 격정에 넘치고 때로는 애통에 마음 쓰려 땅을 치며 통곡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자기도 몰래 즉흥적으로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갖게 되였고 또한 그런 글들을 “연변일보” 등 신문들을 통해 내보내다 보니 어느듯 책까지 펴낼수 있게 되였다고 한다.
“축구팬협회에 가입하게 되면서부터 응원에 최선을 다했다. 워낙 한다하면 제대로, 그리고 철저하게, 완벽하게 하는 성격을 고집하는 저는 축구팬협회 가입초기부터 류장춘회장을 비롯한 많은 회원들과 잘 어울렸으며 맡은바 임무를 잘 완수하군 했다. 그때문에 저는 축구팬협회의 신임을 얻게 되였고 가입 당해에 행동조를 책임진 부회장으로 추천되여 축구장의 모든 활동과 응원을 총지위하는 임무를 맡게 되였다.” 그는 그때로부터 시작하여 류장춘회장의 조수가 되여 장춘, 심양, 할빈, 등 경기구에 원정응원도 가 몸과 마음을 다 바치기도 했다.
“지금도 가장 잊혀지지 않는것은 하남 정주행 원정응원이다. 2004년 10월말, 축구팬협회에서는 30여명의 열혈팬들을 조직하여 소형뻐스로 왕복 만리길이나 되는 원정응원을 한것이 그번 응원은 일생 두고 두고 잊지 못할것다.” 그 당시 갑급진출의 생사전에 직면한 연변팀으로 놓고 말하면 고향팬들의 정주행 원정응원은 그렇게 큰 힘이 아닐수 없었고 마침내 갑급 진출을 이룩해 고향팬들과 함께 얼싸 안고 기쁨의 눈물로 흘렸었다.
“축구팬협회에 몸 담근 14년간을 돌이켜보니 감개무량하기 그지없다. 그간의 사연들은 그대로 가슴에 묻어두기엔 너무도 아쉽다. 또한 연변팀이 갑급에서 탈락해 침체에 빠진 요즘, 힘들고 어려운 연변팀에 어느 정도 위안과 힘이 되고 도움이 될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처녀작을 기획하게 되였다.” 허헌원장은 연변의 축구분야 인사들, 축구팬들, 그리고 언론분야 스포츠기자들의 사심없는 조언을 바라마지 않으면서 연변축구가 실패의 아품을 딛고 하루 빨리 재기하기를 진심으로 기대했다.
연변일보 김창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