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실종아동찾기협회 사무실에서 박정문(51) 씨가 1997년 실종된 둘째 아들 박진영(당시 생후 3개월) 군의 사진이 담긴 전단지를 보여주며 실종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곽성호 기자 tray92@
회사 사표뒤 전세 빼 전단지
기관 도움 없어 홀로 수소문
남은 자녀는 아동보호시설로
가족 모두가 죄책감 시달려
우울증 앓고 심리치료 받기도
실종 후유증 2차 피해 속출
아동 실종 가정 대부분이 아이 찾기에 몰두하면서 경제적 어려움과 가족관계의 단절을 동시에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종 아동의 남은 형제·자매들은 이로 인한 2차 피해를 겪게 되는 만큼 아동 실종 가정의 붕괴와 형제·자매들의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공공 및 민간의 지원이 절실한 실정이다.
◇ 둘째 실종 후 다른 세 남매와도 떨어져 = 지난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연남동 실종아동찾기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박정문(51) 씨. 박 씨는 둘째 아들 진영 군을 잃어버린 뒤 남은 첫째 아들과 셋째 아들, 넷째 딸 등 세 남매와도 강제 격리된 채 홀로 반지하 월세방에서 살고 있다.
박 씨가 진영이를 잃어버린 것은 지난 1997년 10월 19일. 박 씨의 아내 홍모(39) 씨가 서울역 지하차도에서 화장실에 가기 위해 40대 남성에게 아이를 잠깐 맡긴 것이 화근이었다. 홍 씨가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남성은 아이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박 씨는 “내가 지방에서 일을 하느라 진영이가 태어났을 때 한 번 말고는 품에 안아본 적이 없었다”며 “그래서 더 미안하고 원통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진영이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진영이의 사진이 담긴 전단을 만들어 전국 각지에 돌렸고, 제보전화가 오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다.
이 과정에서 박 씨는 불가피하게 직장을 그만뒀고, 온 가족의 보금자리였던 집의 전세금마저 빼 진영이를 찾는 데 사용했다. 부채는 8000만 원까지 급격히 불어났고 온 가족이 길거리에 나앉아 지인의 집에 얹혀살아야 할 지경이었다. 경제적 어려움은 자연스럽게 가족간의 단절로 이어졌고, 박 씨는 진영이를 잃어버린 지 9년 만에 아내와 이혼했다.
박 씨는 이후에도 진영이를 찾아다니느라 어린 세 남매를 좁은 집에 혼자 두는 경우가 잦았다. 하지만 친척이나 공공·민간 기관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결국 2006년 어린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은 이웃 주민에 의해 아동학대(방임) 신고가 접수됐고, 법원은 박 씨가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라고 결정했다.
박 씨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 홀로 진영이를 찾고 남은 아이들까지 돌봐야 하다 보니 상황이 이렇게 돼버렸다”며 “정부든 기관이든 도움의 손길을 청할 곳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현재 박 씨는 식당 배달일을 하며 빚을 갚고 아동보호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세 남매와 함께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박 씨는 “진영이를 찾는 것을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남은 아이들마저 뿔뿔이 흩어져 사는 것이 처참해 우선 가족이 다시 모여 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네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는 작은 집 하나 구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 심리치료와 가족간 이해로 아픔 극복 = 충남 보령에 사는 김윤순(여·49) 씨도 2000년 8월 23일 딸 박윤희(당시 8세) 양을 잃어버렸다.
오빠 윤성이와 함께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던 윤희가 그날 따라 친구들과 조금만 더 놀다 가겠다며 하교를 미룬 뒤 연락이 끊긴 것이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던 터라 경찰은 보령댐의 물이 범람해 윤희가 휩쓸려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수색했지만, 윤희의 가방이나 신발, 옷가지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당시 김 씨는 임신 7개월의 만삭 상태였고, 충격을 받아 온몸이 마비되는 등 이상 증상과 함께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다. 윤성이는 한동안 자기 때문에 윤희를 잃어버렸다며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김 씨는 “윤희가 실종된 뒤에도 윤성이는 윤희와 다니던 초등학교를 그대로 다녔어야 했다”며 “‘윤성이가 동생 윤희를 잃어버렸대’라는 친구들의 말 때문에 친구들과 싸운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희 가족은 지난 15년간 가족의 노력과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실종아동전문기관’의 지원을 받아 아픔을 극복 중이다. 김 씨는 실종아동전문기관의 도움으로 2006년부터 정신과 및 심리치료를 받아왔고, 김 씨가 치료를 받으러 갈 때면 지금은 성인이 된 윤성이와 다른 동생들이 늘 동행했다. 남편 박성관(50) 씨도 아이를 잃어버린 김 씨에 대한 원망 한 번 없이 함께 실종아동 가족캠프에 참가하며 서로의 아픔을 다독이고 있다.
김 씨는 “아직 딸 윤희를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며 “여전히 우리의 첫째 딸인 윤희가 돌아왔을 때 쉴 수 있는 행복한 가정을 지키는 것도 윤희를 찾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다영 기자 dayoung817@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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