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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위성TV로 만나보는 다큐걸작 《한락연》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2.02.15일 20:19
-중국조선족 첫 공산당원, 미술가 한락연의 발자취 찾아 서북만리

력사학자와 미술전문가들이 다큐멘터리 《한락연》을 담론하고있다.

연변위성TV 두만강프로제작부에서는 최근 4부작 다큐멘터리《한락연》을 방송하면서 시청자들로부터 한결같은 절찬을 받아안았다.《연변TV력사상의 획기적인 장거로서 새로운 력사적 한페이지를 열어놓았다. 이 프로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연변위성TV에 새로운 기대와 희망들 가지게 한다.》

《65년전 중화민족의 해방사업을 위하여 서북기련산 어디선가에서 이름없이 희생된 중국조선족의 첫 공산당원, 미술가였던 한락연을 진실하고 생동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앞에 부각하여 그 공적을 기릴수 있도록 한 연변위성TV 두만강프로그램 스탭진의 로고에 박수를 보내고싶다.》

《력사적 기록에도 확연치 않고 세인들의 기억속에서도 잊혀져간 그 이름 〈한락연》을 《고향의 아들》,《민족의 자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북만리를 찾아나선 방송인들의 사명감과 그 거동을 본받아 마땅하다.》

지도부의 결책은 프로제작의 든든한 뒤심

연변위성TV는 지난해로 창사 5주년을 맞는 특별한 한해였다. 연변위성TV 지도부에서는 특별한 프로제작으로 뜻깊은 한해를 장식하고저 프로의 활성화를 제창하고 제작의 자주권을 부여하였으며 좋은 프로에 대한 대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이런 결책에 힘입어 편집기자들의 창발성이 충분히 발휘되기 시작하였다. 두만강프로에서는 지난한해 중국공산당창건 90돐이라는 이 력사적인 기념에 립각하여 《한락연, 본명 한광우, 1898년 12월 8일 룡정촌 출생, 중국조선족의 첫 공산당원이며 혁명가, 미술가》라는 자료적 단서를 잡고 그의 발자취를 따라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로 기획하였다.

지도부에서는 두만강프로그램 제작팀의 구상과 구성의 정확성과 가능성을 판단하고 《창사력사상 가장 큰 자금으로, 인재가 결핍한 조건하에서 사회인재활용을 도입하고 프로제작의 자주성을 존중하는 방책》으로 이 특별기획프로그램의 촬영제작을 확실하게 밀어주었다.

고향에 올수 없던《고향의 아들》을 찾아서

두만강프로그램 제작팀은 65년전 서북기련산 어디선가에서 자취를 감춘 《고향의 아들》 한락연을 찾아서 6개월간 9개 성 32개 사적지를 답사하였다. 지난해 6월초, 두만강프로그램 제작팀이 한락연의 족적을 찾아 떠난 첫 행선지는 북경 중국미술관이였다. 그때 그들이 손에 든 자료라야 고작 사진 6장에 한락연에 대한 추모의 글 몇편 그것이 전부였다.

우선 중국미술관에서 한락연미술전시장을 찾은 그들은 《한락연이 누군지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의 작품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마음을 평화롭게 만드는 매력》을 발견하며 《그 매력이 곧 한락연 작품의 개성이고 한락연의 인품》인것을 확인하면서 한락연의 삶의 궤적을 따라 그의 작품에 반영된 내용을 주선으로 취재길에 올랐다.

취재팀은 상해로 향발한다. 상해는 한락연이 어린시절 룡정《3.13운동》의 맨앞장에서 활약하다 일제의 추적을 피해 10월혁명이 승리한 러씨아 울라지보스또크를 거쳐 독립운동가들이 운집한 상해로 오며 상해미술전과학교에서 화가가 되려던 꿈의 첫발자국을 내디딘 곳이다.

또한 1923년 신문화운동의 온상이였던 상해미술전문학교에서 한락연이 중국공산당에 가입함으로써 중국조선족의 첫 공산당원으로, 중국미술계의 첫 공산당원으로 사책에 기록된 곳이다. 상해에서 취재팀은 한락연의 자취를 찾아보고저 벽돌 한장, 나무 하나도 유심히 살피면서 사적지를 찾아 동분서주하였다.

그리고 한락연이 1924년 상해미술전문학교를 졸업하면서 공산당조직의 임무를 맡고 봉천(심양), 할빈, 치치할 등지로 이동하며 동북당조직건설의 개척사업을 벌이던 그 행적을 좇아 취재팀은 또 북상하였다. 그 길에서 취재팀은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고향땅을 밟을수 없었던 한락연의 절절한 고향사랑을 그려냈다.

서북 기련산기슭에 묻힌 무주고혼을 따라

한락연의 발자취를 따라 서북으로 향한 취재팀은 가는 곳마다에서 그의 령혼과 함께 함을 느꼈다.

1929년 한락연은 대외선전과 국제합작의 새로운 임무를 맡고 동북을 떠나 프랑스로 류학을 갔다가 1937년 무한에 도착한다. 《동북항일구국총회》에 참가하여 화필을 무기로 수많은 항일포스터를 그리면서 항일구국에 전념하였던 한락연에 대한 기록이나 기억을 찾아 취재팀은 무한, 중경 등지에서 당년의 옛 루각이며 잡지표지 하나 무심히 지나치지 않았고 길거리 로인들에게도 무수히 다가가 문의하면서 그의 령혼이 어린 흔적을 화면에 담았다.

이어 1940년 한락연이 특무의 밀고로 《국민당특종구류소》에 3년간이나 감금되여있었던 서안, 1943년초《서북지역을 떠나지 못하며 산수화만 그리고 로동대중과 민속화를 그리지 못한다》는 조건으로 가석방되여 서북지역에 연금된채 가족과 함께 정착했던 란주, 특무들의 엄밀한 감시를 피해가며 민속도와 인민대중의 생활상을 그린 그의 작품속 력사현장, 라마교 라브렁사원이며 청해성 타얼사원, 다민족이 어우러져 평화롭게 공존해가는 신강우루무치의 현실을 렌즈에 담으면서 고인의 념원을 읽어내기도 하였다.

1945년 10월 한락연이 돈황막고굴 벽화를 모사했던 돈황에서 취재팀은 사막 한가운데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한다. 낮동안은 발이 델지경으로 따가운 모래땅이 해가 지면서 뼈속까지 시려들고 한기속에 추워 잠도 이룰수 없는 사막기후를 체험하면서 그들은 당년 그림도구며 생활도구들을 무겁게 짊어지고 서북지역 일망무제한 사막을 두발로 횡단했을 한락연을 그려보았다.

키즐석굴은 남강요충지로서 인도불교예술이 동쪽으로 이동한 첫 문호이다.한락연은 당년 키즐석굴 발굴과정을 10번동굴에다 적어놓음으로써 이는 중화문화유산임을 명확히하였다. 후세인들은 한락연의 필치가 남아있는 10번동굴에 한락연의 사진과 그가 모사한 벽화사진을 진렬해놓고 한락연의 공적을 기리고있다.

그들은 한락연이 서북에서 발자국을 찍었던 곳 하미,만리장성서쪽 기점 가욕관, 신강 길목 성성협,《화주》 투루판의 고창고성(고대서역 교통중추였고 정치, 경제문화의 중심지), 아스타나고분 등지를 답사하며 드디여 서북기행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지인 쿠처에 당도한다.

쿠처에는 키즐석굴이 있다. 3세기에 건설된 신강 커즈석굴사에는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진 경과가 있고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벽화가 보존되여있다. 1946년 5월과 1947년 6월, 한락연은 당조직의 지시에 따라 철저히 화가로 변신하고 키즐석굴에 대한 발굴, 정리를 시작했고 벽화를 모사하여 개인그림전시회를 가지면서 중화서북문화를 국민당장령들과 인민대중들에게 널리 알리였다. 그는 그림을 매개로 국민당장령들과 깊은 우정을 맺으면서 신강의 평화적해방에 감정적기초를 닦아놓았던것이다.

결국 한락연은 1947년 7월 30일, 신강일보사 대강당에서 키즐석굴 벽화 모사화를 위주로한 그림전시를 마치고 키즐석굴 탐색작업에 함께 했던 일군들과 함께 란주로 돌아가는 길에 하미비행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는 필경 국민당에 의해 피살된것이다. 취재팀은 하미비행장의 녹쓴 쇠고리 하나에서도 눈길을 떼지 못하고 그 의문의 죽음을 확인아라도 할듯 굳어서 있었다. 그들은 기승부리며 휘몰아치는 모래바람속에서 한락연의 억울한 죽음의 울분을 듣는듯싶었다.

10년전에만 손을 댔어도…

1947년 한락연은 키즐석굴에서 색채가 선명하고 스찔도 참신한 완벽하게 보관된 벽화를 발견하고 그 벽화 전체를 모사하였다. 그의 빛나는 성과들은 69번동굴에 있었는데 취재팀이 마주한 69번 석굴은 개봉되지 않았고 자물쇠가 잠가져있었다. 취재팀의 진지한 촐영자세에 감동된 연구소일군들은 만리밖에서 온 연변취재팀에게 특혜를 베풀어 한시간만에 녹쓴 열쇠를 열고 촬열을 하도록 허락하였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살아온 한락연, 전기적색채가 다분한 한락연의 자취를 찾아 취재팀은 신주대륙을 횡단하면서 드디여 《걸출한 중국조선족의 정치활동가, 조선족의 첫 공산당원, 동북지역 첫 미술전문학교 설립자, 키즐석굴을 탐색정리한 첫 중국인, 촬영가, 천부적 화가 - 중국의 피카소》라는 한락연의 진실된 이미지를 생동한 형상으로 관중들앞에 부각해내였다.

또 가족에 대한 심입되는 취재로 한락연의 유작 165점의 내용과 돈황벽화모사화와 키즐천불동 벽화모사화는 유족에 의해 전부 나라에 기증되고 135점이 중국미술관 영구보존품으로 소장된 내막들을 밝히게 된다. 류옥하녀사는 남편 한락연은 철저한 혁명가였고 그의 예술성과는 중국미술사와 중화민족문화에 대한 거대한 공헌임을 잘 알고있기에 그의 유작들을 나라에 기증하고 그의 족적을 기록하려 애썼던것이다.

그런 노력으로 한락연 탄생 90돐에 즈음하여 1988년 국가민족사무위원회 문화선전사와 연변조선족자치주는 련합으로 북경민족문화궁에서 《한락연유작전시회》를 열게 되고 잇달아 국내외적으로 그의 혁명정신과 예술성과를 기리는 행사들이 이어졌다.

그의 고향 룡정에서도 한락연연구단체를 설립하고 한락연공원을 조성하였으며 그의 위혼과 위업을 후세에 전해가고있다. 이에 동조하여 연변위성TV 두만강프로그램에서는 그의 족적을 따라 서북만리행을 하면서 락천적인 웃음으로 오늘의 강산을 바라보고있는 《고향의 아들》, 《중화의 아들》한락연을 우리들 안방에 모셔와 우리들과 마주앉아 친절하게 이야기를 나누게 하였다.

드디여 키즐석굴촬영을 마친 취재팀은 경건한 마음으로 합동기념을 남겼다.

이 프로의 제작에 참여하였던 한 연구학자는《기존의 많은 다큐들과 달리 한락연다큐는 정형된 틀에서 벗어나 작가적 주장과 견해를 주입하여 력사적 장면을 현실화하였으며 복잡한 인물성격을 다각도로 진실하게 보여준 면에서 가히 긍정할만하다.》고 소감을 피력하였다.

이 프로그램제작의 총기획을 맡은 최선화프로듀서는 《한락연의 생전모습을 본 견증인이 한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몇편의 추모의 글에 의해 한 인물형상을 부각해낸다는것은 실로 난감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두발로 현지답사를 하면서 나름의 견해와 해석을 가했을뿐이다. 마무리를 하고보니 10년전에만 손을 댔어도 한락연의 생전모습을 뵌이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욱 생동하고 더욱 풍부한 형상을 그려낼수 있지 않았을가 하는 유감만 가슴에 남는다.》고 진심을 터놓는다.

그는 앞으로 우리 후대들은 자기들 조상을 제때에 찾아보면서 잊혀져가는 그 위업들을 부상시킴에 있어서 또다른 형식과 해석으로 더 좋은 프로그램들을 제작해가길 바란다고 후대들에게 기대를 걸었다. 이 프로그램촬영제작에 동참하였던 나젊은 스탭들인 강용,조성학은 《한락연》을 촬영제작하는 동안 아무리 힘들어도 고생스럽다는 말이 입밖으로 나가질 않았다고 한다. 《위인의 형상은 무궁한 힘을 안겨주었고 이 프로그램제작에 참여한것을 너무나 큰 영광으로 간주한다》며 《앞으로 더 어렵고 힘든 길일지라도 우리 민족 위인을 발굴하는 프로그램제작이라면 언제든지 달려갈것》이라 의지를 표하였다.

편집/기자: [ 김영화 김청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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