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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화가 최헌기: 내가 흔들 깃발은 뭔가…

[조글로미디어] | 발행시간: 2015.03.26일 08:28
뭉개진 정체성의 붓끝

-재중작가 최헌기 회고전…경계에서 느낀 감정, 국제정세 비판적 시각 담아

-'디아스포라'의 삶과 예술 살피는 영화, 미술관서 상영도



최헌기 작가



최헌기, '자화상', 150×145cm, 1994년.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조국을 떠나온 이민자들. 디아스포라(Diaspora, 이주자)의 삶과 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문화행사들이 마련됐다. 재중작가 최헌기의 회고전과 '떠도는 몸들'이라는 작은 영화제다. 최헌기 작가(54)는 중국 문화계에 자리를 잡은 보기 드문 동포 화가로, 중국인과 한국인의 경계에서 살아온 자신의 삶을 20년 넘게 회화와 설치작품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 속에는 정체성의 문제와 예술의 가치, 국제 정세를 향한 날카로운 비판이 담겨 있다. '이산(離散)'을 주제로 한 영화 상영에는 한국계 고려인이 지닌 이주의 기억 등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자화상·광초·실험'이 빚은 디아스포라 예술= 최헌기의 작품은 '자화상', '광초', '실험'을 키워드로 갖는다. '자화상'과 관련해선 굳이 작품 속에 작가 자신의 얼굴을 투영한 흔적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최헌기의 모든 작품이 자화상으로 느껴지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번 회고전의 시작점이 되는 '자화상'이란 제목을 가진 작품만 봐도 그렇다. 모두 세 개의 화면으로 구성된 초대형 자화상인데, 흔히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작가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한국의 태극기와 중국의 오성홍기, 북한의 인공기가 일그러진 모습으로 그려져 있을 뿐이다. 여기에 얼룩진 듯 처리한 붓질은 작품을 추상화로 다가오게 한다. 더욱이 작가는 관람객들에게 이 작품에다 매직으로 사인(서명)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1994년 제작돼 그 해 중국에서 첫 전시를 가진 이 작품에는 온갖 이름들이 낙서처럼 즐비하다. 최 작가는 "북한에서도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의 사인을 받으려 했지만, 추상작품을 반사회적 예술로 치부하는 풍토로 전시가 좌절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버지의 나라는 한국이었고, 내가 살아온 곳은 중국이다. 그런데 나는 중국인과도, 한국인과도 구별된 채 살아왔다"며 "이런 환경이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예술가로서는 '부자'일 수 있다"고 했다. 작가의 부모는 전라북도 부안과 김제 출신으로 어릴 적 일제강점기 때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가 제작한 많은 작품에는 한자 서체 중 흘림체인 '초서(草書)'를 닮은 글씨들이 부유한다. 사실 실제 글자가 아닌, 작가가 그저 모양만 닮게 가공한 것이다. 작가는 이를 '광초(狂草)라 부른다. 그는 "10년 넘게 광초를 쓰고 있다. 동양예술철학 중에서도 서예를 통해 전통을 강하게 느낀다"며 "관객들이 작품을 보고 자신만의 생각을 갖게 하고 싶었다. 형태가 글씨 같아 보일 뿐 사실 아무 뜻은 없다"고 했다. 광초는 대형 캔버스 위에도, 천장 위에 매단 모빌, 조각에서도 보인다.

'6자회담'이란 작품에서는 디아스포라로서의 작가적 시각이 돋보인다. 남북한을 사이에 둔 미국·중국·러시아·일본을 상징하는 인물들 가운데 만국기로 꾸며진 미사일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6×9=96'라는 메시지가 쓰여 있다. 작가는 "6자회담이 해결책이 될 순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북핵 문제는 국제사회 모두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라며 "육 곱하기 구는 오십사지만, 사실 사회적 약속 또는 틀일 뿐 진실은 '우리가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작가의 실험과 파격은 '광초'를 비롯 작품의 재료와 형태, 방식 등까지 뻗어 나간다. 액자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천 작품과 에폭시·실리콘·아크릴·유화 등이 뒤섞인 캔버스, 눈을 감고 명상에 빠진 모나리자의 누드 흉상 등이 있다. '붉은 태양'이란 초대형 설치작업에서는 조각상으로 빚은 마르크스, 레닌, 마오쩌둥과 같은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허공에 손짓하며 무수한 이야기를 내뱉고 있다. 광초로 표현된 이들의 언설은 명품으로 치장된 거짓 태양을 감싸듯 맴돈다. 양립할 수 없는 가치들이 공존하는 현재를 상기시키고자 작가가 고안한 장치다.

최 작가는 중국 길림성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백두산 밀림에서 양봉을 했다. 작가는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중국 옌볜대학교 미술학과, 베이징 중앙미술학원에서 수학했다. 지난해에는 한국 홍익대학교 미대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동안 중국국립미술관, 광주비에날레 등에서 전시를 가진바 있다. 현재 베이징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향후 강원도 동해 망상해수욕장 인근에 화가촌을 만들 계획이다. 전시는 오는 5월 31일까지.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 전관. 02-737-8643.




최헌기, '설국', 2015년.




최헌기, '붉은 태양', 2013년.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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