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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 "스모그" 관련 기록 및 대처 "비법"

[연변일보] | 발행시간: 2015.04.22일 09:09



"고대로 돌아갔으면…" 스모그의 고통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늘 한탄한다. 고대에는 현대공업도, 자동차 배기가스도 없고 환경오염도 지금처럼 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럼 고대에는 "스모그"가 없었을가?

고대에도 "스모그"는 있었다

"시경(詩經)"에는 이미 흙비 매(霾)에 관한 기록이 있었다. "매"자는 갑골문 복사(卜辭)에 나타났는데 이는 이미 오래전 인류생활에 흙비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고대 흙비는 주로 바람이 불어 안개비와 먼지가 날리면서 공기가 혼탁해지고 누렇고 어두운 현상이 일어나는 을 일컫는다.

"진서, 천문지 중(晉書•天文志中)"에서는 흙비에 대해 "먼지가 비내리듯 내려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천지사방이 어두워지고 10일이나 5일이상, 혹은 한달, 한시 옷에 비가 젖지 않아도 흙이 묻어있는데 이를 매(霾)라고 한다"고 명확하게 해석했다.

단, 고대의 흙비는 지금의 스모그와 달리 물리함량에 큰 차이가 있다. 과거의 흙비는 공기중에 떠도는 흙먼지로 구성되였지만 현재 스모그에는 대량의 공업배출 과립형 오염물이 들어있다. 이를테면 유산염, 질산염, 유기화합물 등이다.

고대에는 "스모그"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력사자료에서는 "스모그"에 관한 기록을 찾아볼수 있다. "한서(漢書)"의 "오행지 하(五行志下)"에서는 "어둡고 누렇고 탁하다", "어둡고 미세하며 적색을 띤다"고 했고 "익봉전(翼奉傳)"에서는 "날씨가 탁해지고 해가 가리워졌다"고 했다. 이때는 "스모그"를 하나의 현상으로 표현했다.

이외에 직접 "흙비 매(霾)" 혹은 "흙비"와 관련된 기타 글자와 조합해서 기록한 경우도 있다.

원나라 지원6년 "안개가 대도를 덮었다"

원나라 수도 대도(大都)는 지금의 북경을 말한다. 중국 북방에 위치한 북경은 기후가 건조하고 겨울철이 길며 북으로 사막지대와 200여킬로메터 떨어져 있어 "스모그 날씨"가 쉽게 나타났다. "원사(元史)"에는 "원 천력(天歷)2년(1329년) 3월, 그 전해 겨울 눈이 내리지 않아 봄에 강수가 적고 날씨가 매우 건조해 흙비현상이 나타났다. 하늘은 어둡고 해가 보이지 않았으며 행인들은 얼굴을 가린채 거닐었다."고 기록했다. "지원(至元)6년(1340년) 정월 안개가 대도를 덮어 며칠간 해빛이 보이지 않고 성문은 바람먼지에 가려졌다." "바람과 흙비가 수일간 도성을 휘감으니 황제는 천신의 노여움을 샀다고 여겨 예부관원들에게 향을 피우고 하늘에 제를 지내 신령에게 빌도록 명령했다."

이상의 기록을 보면 원나라 사적에 기록된 이 두차례 대도 "스모그 재해"는 지속시간이 길고 가시도가 낮았음을 알 수 있다.

명나라 홍치10년 "흙먼지가 쌓여 행인이 잘 보이지 않았다"

명나라 때부터 "스모그 재해"에 관한 기록이 점차 많아졌다.

"명헌종실록(明憲宗實錄)"의 기록을 보면 성화(成化)4년(1468년) "봄에서 여름으로 갈무렵 날씨가 추워지고 바람먼지가 빈번했다…. 근 1,2일간 누런 안개가 해를 덮어 밤낮 별과 해가 보이지 않았다", "명 성화17년 (1481년) 4월 련일 광풍이 몰아치고 흙먼지가 하늘을 덮었다.", "성화 21년(1485년) 정월 정말, 경성에 아침부터 연무가 해를 덮었다가 점심이 되여서야 흩어졌다.", "3일후 연무가 또 일어나 5일 내내 흩어지지 않으니 조운이 지연되고 경성창고에 제때에 식량을 저장할수 없어 위급함을 알렸다." 홍치(弘治)10년(1497년) 예부관원은 "지난해 겨울 경성은 오래기간 따뜻하고 눈이 내리지 않아… 올 봄 광풍과 흙먼지가 일었다." "서직문 밖에 흙먼지가 쌓여 행인도 알아보기 힘들다. 관군들은 반쯤 성문을 닫아 흙먼지를 막았다"고 아룄다, "만력11년(1583년) 정월 경성에 바람먼지가 일었다. 윤2월 바람먼지가 일자 4월 대학사 장사유(张四维) 등은 '바람먼지가 일어 황사가 하늘을 덮었다. 5일간 서산의 흔적도 보이지 않고 일부 굶주린 백성들은 입성해 동냥했다. 사원의 심성이 착한 사람들이 베풀어 주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명나라때 북경 "스모그 날씨" 관련 기록은 10여차례에 달한다.

청나라 가경15년 "안개, 먼지로 뒤덮인 경도"

청나라 때도 "스모그 재해"가 여러차례 나타났다. 강희 60년 (1721년) "금일 합격자명단을 붙이는데 누런 안개가 사방에 흩어지고 흙먼지가 해를 막았다." 가경15년(1810년) "섣달이 지난후 경성에 가끔 밤새동안 연무가 꼈다. 완평(宛平), 대흥(大興)현에서 모두 보고를 올렸다.", "경도(瓊島,지금의 북해)에 연무가 짙게 드리워 참모습이 잘 보이지 않고 매산(煤山)은 흙먼지에 가리웠으며 궁인들은 궁전에 숨어 지내면서 가끔 넌지시 바라보았다.", 함풍6년(1856년) "겨울에 접어들면서 눈이 적게 내리고 흙비가 많았다. 흙비와 바람 먼지가 경성을 휘감았는데 특히 창평(昌平), 완평(宛平)이 가장 엄중했다." 등등 "스모그" 관련 기록을 찾아볼수 있다. 몇년 간격으로 "스모그 재해"가 경성을 엄습했는데 특히 봄철과 겨울철에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고대 "스모그" 현상이 나타난 원인

원나라 전의 력사자료에 기록이 많지 않았던 "스모그"가 명, 청 시기에 빈번히 경성에 나타났다. 그 원인에 대해 기상학자는 세가지로 분석했다.

첫째는 원나라 전에 북경 지역 관련 기상자료는 극히 적었고 특히 "원시 기상자료"의 기록과 정리가 부족했는데 명, 청시기에 와서야 점차 관련 자료들이 많아졌다. 둘째는 북경의 지리적 요소와 관련된다. 북경은 세면이 산으로 둘러쌓였고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가면서 "북경만"을 형성해 점차 광활한 평원지대로 되였다. 이런 지리적 요소로 기온 역전층이 형성돼 바람이 적고 기상조건이 온정하다. 아울러 이곳에 안개, 바람먼지가 제일 쉽게 집결된다. 셋째는 원나라 이전 북경 지역에는 대규모의 도시가 형성되지 않았고 인구가 희소해 "스모그 날씨"가 빈번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명나라 이후 도시규모가 확장되면서 건물이 끊임없이 세워져 공기유동속도가 내려가면서 "스모그 날씨" 발생률이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고대 "스모그" 대처 "비법"

고대 사람들은 심한 "스모그"에 어떻게 대처했을가? 고대 사람들은 이런 자연재해를 과학적으로 해석할수 없었기에 "하늘신령에게 도움을 청하는" 방법으로 극복하려 했다.

황제가 스스로를 꾸짖는 말인 죄기조(罪己詔)를 내리는것이 "스모그 대처"법의 하나였다.

중국에는 "천인감응(天人感应)"설이 있다. 한나라 동중서(董仲舒)가 이 리론에 대해 해석한 설중에 "재이견고(災異譴告)"설이 있다. 이는 국가 정사와 재이(災異, 자연재해, 특이한 자연현상)를 완전히 결합시켜 "황제가 나라를 다스리는데 과오가 있으면 하늘이 재해의 방식으로 꾸짖고 자책하지 않으면 특이한 자연현상으로 경고하며 여전히 개선되지 않으면 다치고 실패하는 지경에 이르게 한다"는것이다. 즉 황제가 나라를 다스리는데 과오가 있어 재이가 발생한다고 여겨 재이가 발생하면 황제가 죄기조를 내려 반성하고 하늘의 용서를 비는것이다.

"한서(漢書)"에는 "성제 건시원년(기원전32년) 4월 신축밤, 서북에는 불빛이 비추는듯했다. 임인 아침 큰 바람이 서북에서 불어오고 운무가 드리워 적황색을 띠며 천하를 뒤엎어 종일 누런 먼지가 내렸다."고 기록했다. 한무제는 이런 정형을 보고 죄기조를 내려 "짐은 선제들의 과업을 받들어 도를 깊게 닦지 못하고 사리분별이 명확하지 못하니 음양이 교차되고 암흑과 적황기운이 천하를 뒤엎었다. 모두 짐의 잘못이다."고 했다. 후날 누런 흙비가 흩어지게 된것은 황제가 내린 죄기조때문은 아니지만 천하 백성들은 황제의 성은을 망극해했다. 따라서 "스모그"에 대처했다기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다스렸다고 하는것이 더 바람직하겠다.

두번째 "스모그 대처"법은 똑똑한 인재를 천거하고, 간사하고 부패한 무리를 파면시키는것이다. 이는 황제가 죄기조를 내리고 반성하는 연장선으로 볼수 있다.

아울러 똑똑하고 정직한 사람은 등용하고 무능하고 부패한 관리들은 파면하며 죄를 범한 관리들은 처벌하고 지어 만천하에 공개해 하늘의 경고에 답하는것이다. 이로써 하늘을 감동시켜 용서를 비는것이다.

"후한서 랑의전(後漢書•郎顗傳)"의 기록을 보면 한순제(漢順帝) 양가(陽嘉)2년(133년) 정월에 접어들면서 뿌연 흙비가 자주 나타나 천지가 흐리고 해와 달이 보이지 않아 세인들이 근심에 싸여있었다. 그러자 명사 랑의(郎顗)는 황제에게 황경(黃瓊)과 리고(李固)를 천거했다. 리유인 즉 "연무가 해를 덮고, 천지가 혼탁한" 것은 황제가 현명한 인재를 등용하지 않아 하늘이 노했다고 여겼기때문이다. 사실 이 방법은 스모그 대처에 큰 의미가 없지만 현명한 인재를 등용하는것은 나라를 다스리는데 유리하고 백성들의 복지에도 리로와 화가 오히려 복이 되였다고 할수 있다.

"스모그 대처"법 세번째는 문무관원들이 수일간 재계하고 모든 사람들이 도살을 금하는것이다. 또한 향을 피워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스모그"가 사라지게 신령들에게 비는것이다.

"건륭 23년(1758년) 정월 한차례 대규모 "스모그"가 발생해 련일 흩어지지 않고 가시도가 극히 낮았다. 안전문제를 고려해 조운을 정지하니 식량이 경성에 운반되지 않아 대형 창고마다 위급함을 알렸다. 더우기 관원들의 록봉발급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자 건륭황제는 관원을 파견해 천단에서 제를 지내는외에 직접 왕공대신을 거느리고 자금성 태화전(太和殿)에서 향을 피워 제를 지냈다. 광서(光绪)연간 경성에 또 한차례 엄중한 "스모그 재해"가 며칠동안 지속되자 자희태후는 자금성에서 "하늘에 제를 지내 '스모그'를 퇴치하게 했다." 한편 민간에서도 이를 본따 스모그가 일어날 때면 룡왕묘에 가서 향을 피우고 제사를 지내면서 빌었다. 물론 이런 방법은 효과가 없었다.

네번째 "스모그 대처"법은 생산할 때 일정하게 대처하는 방법이다. 이를테면 강희(康熙)54년(1715년) 초봄에 "스모그 재해"가 발생하자 황제는 경성 부근의 농민들에게 "잡초를 듬성듬성 뽑아 바람먼지를 예방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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