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을 때마다 똑바로 앉아 읽으라 한마디씩 하고, 동화책을 고를 때면 유명 문학상 수상작들을 은근슬쩍 들이밀었던 건 모두 아이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행동이 아이에게 스트레스가 됐다니, 충격이다. 책 한 권 더 읽히고, 셈법을 가르치는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은 아이의 표정을 살피는 엄마의 여유다.
즐거운 아이가 공부도 하고 싶어 한다
최근 지난 1월 방송된 EBS 다큐멘터리 <공부 못하는 아이>가 엄마들 사이에 화제다. 동네 엄마들을 만나도 "그거 봤어?"라 며 입에 오르내리고, 수많은 육아 블로거들도 프로그램을 스크 랩하며 꼭 다시 볼 것을 '강추'하고 있다. 총 5부작으로 제작된 이 다큐멘터리는 '공부에 대한 불안과 공 포가 공부를 더 못하게 만드는 주원인으로 마음이 즐거워야 공 부도 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 는 사교육이나 좋은 머리가 아니라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이 기 본이라는 것. 그리고 엄마들이 아이를 위해서라고 말하며 '공 부하라'고 스트레스를 주고, 간섭하고, 확인하는 행동이 오히 려 아이의 공부를 방해하는 압박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마음 이 즐거워야 뇌가 제대로 작동하고, 다른 데 쓸 에너지를 공부 에 쏟아붓게 해 공부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란다.
이와 함께 많은 엄마들의 마음을 뜨끔하게 한 또 하나의 주제 는 아이에게 긍정적인 마음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아 이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는 부분이었다. 말로만 '믿는다'고 할 것이 아니라 좋은 성적으로, 변화된 행동으로 결과를 보여 줘야 믿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는 언젠가 잘될 거야'라며 아이 자체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믿어주면 당장은 아니더라 도, 혹은 꼭 공부 분야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자리를 잡으며 건 강하게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
행복하면 두뇌 활동이 활발해진다
실제 두뇌발달 전문가를 비롯해 심리학자, 정신과 전문의들은 마음과 학습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연세신경정신과의 손석한 원장은 "즐겁 고, 재미있고, 행복하다는 등 마음과 기분, 정서가 긍정적일 때 뇌에서는 행복감을 주고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작용을 하는 세 로토닌이며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등 신경전달물질의 분비 가 촉진되고 활성화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 때문에 정서가 안 정되고 그 결과 두뇌 활동이 활발해지죠. 자연스레 지적 호기 심이 늘고, 학습 및 기억 능력이 커진다"며 긍정적인 마음이 미 치는 학습의 효과를 설명한다.
긍정적인 마음은 뇌가 정보를 받아들여 그것을 기억력과 사고 력을 관장하는 전두엽으로 넘기는 양을 늘리기 때문에 학습에 있어 흡수력을 높인다. 또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때 즐거움 과 자신감을 준다.
새로운 학습이 좋은 정보라고 판단할 경우 더욱 활동에 집중하게 하고, 재미있고 유쾌한 정보라고 판단 했을 때 흥미를 유발하고 호기심을 늘리기 때문이다. 이와 함 께 그 정보를 이해하고, 잘 활용해 자신에게 닥치는 다양한 문 제를 해결하는 데 적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기 때문에 소 화력도 높아진다.
반대로 힘들거나 무서움을 느끼거나 짜증난 다, 싫다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는 뇌 속에서 행복 호르 몬으로 알려진 세로토닌 등의 생성이 떨어지는 상태다. 행복감 을 느끼지 못하고 집중력과 정서적 안정 능력 역시 줄어든다. 자연스레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바꿔주는 해마와 기억력과 사고력을 관장하는 전두엽 등의 뇌가 위축되고 뇌세포들을 연 결하는 시냅스의 감소를 가져온다. 이에 대해 소아과 전문의의 자 뇌발달 전문가인 김영훈 박사는 "마음의 부정성이 강화되면 전두엽으로 학습한 정보의 10%도 넘기지 않을 수 있지만 긍정 성이 강화되면 90% 이상 정보를 넘길 수 있다"라고 공부할 때 의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즐거우면 키도 크고, 운동도 잘한다
부정적이냐 긍정적이느 냐 하는 마음의 상태는 학습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마음 은 아이의 생각과 감정 상태의 총합으로, '하기 싫다, 무섭다, 피 곤하다, 짜증난다' 등 부정적인 생각이 많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 마음은 불안정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마음 상태가 나빠 지는 것으로, 이 경우 뇌로 하는 모든 기능이 저하된다.
놀라운 것은 마음의 상태가 공부할 때, 즉 논리적 추론, 이해, 암기, 판단, 주의집중 등의 인지적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정서적 영역, 행동 영역, 생리적 영역, 신체 발달 등 각종 발달 영역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는 몸 을 많이 움직이게 되고 음식 섭취가 늘어나 신체 발달에도 도움 이 된다.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에 신체 운동을 할 때도 감각체 험을 높여 놀이나 운동을 재미있게 여기고 더 높은 운동기술을 습득하려는 도전의욕이 샘솟는다.
반면 걱정을 많이 하거나 두려움에 휩싸이면 공부할 때 이해력 과 집중력이 떨어지고, 기분이 저하되고, 짜증이나 분노를 느 끼게 되며, 공격적이거나 산만해지는 등 행동 영역에 이상이 오 고, 잠을 많이 자거나 악몽을 꾸거나 식욕이 떨어지는 등 신체 생리적 기능에 이상이 온다. 정서 발달 면에서도 도파민이 부족 해 의욕이 없으며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증가로 스트 레스에 몸을 움츠러들게 해 여러 능력이 저하될 수 있다. 이런 상태는 머리와 마음의 문을 닫는다. 즉, 여러 가지 자극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욕구도 감소하기 때 문에 호기심이 없고 변화를 싫어하는 아이가 된다.
행복한 아이가 책도 잘 읽는다
'우리 애는 아직 어린데 뭘' '아이에게 공부하란 소리 한번 하지 않았어' '아직 공부시키는 학원은 한 번도 보내지 않았는데'라고 안심할 수만은 없다. 앞에서도 강조했듯이 마음의 상태와 학습 의 상관관계가 단순히 영어를 배우거나 연산을 푸는 등 학습, 소위 공부에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가 동화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릴 때, 블록이나 인형놀이를 할 때 등 다 양한 놀이와 활동을 하는 매 순간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엄마가 웃으면서 동화책을 읽어주고, 마치 놀이처럼 구 연동화를 해주면 아이는 엄마의 즐거운 표정과 몸짓에 자연스 레 즐거워지면서 흥미를 느끼고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하지 만 화가 난 모습 혹은 무서운 표정을 보면서 동화책을 보거나 그 림을 그릴 때는 활동에 집중하기 어렵다. 책의 그림이나 내용에 몰입하기보다 '엄마가 왜 그럴까? 아, 무섭다, 어떡해야 하지' 식 으로 엄마의 눈치를 살피고 두려움에 휩싸이다 보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각종 활동에서 이해와 흡수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항상 아이를 중심에 두면서 생각하고 아이는 이 말과 행동에 어떤 느낌을 가질까? 어떻게 받아들일까?'라며 아이를 중심에 둔 질문을 자주 던져보자.
편집:심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