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전남도민일보]정홍순 순천희락교회 목사/시인= 시원한 냉국 한 사발 먹고 싶다. 두레박 깊은 샘물 한 바가지 송송 썰어 넣은 오이냉국이 생각난다.
뙤약볕에 벌겋게 타오른 얼굴, 베수건으로 닦으며 마루청에 걸터앉아 산마루 뻐꾸기 소리도 듣고 싶다.
이맘때 복날이 되면 여럿이 고깃국을 끓여 둘러앉아 복놀이를 즐기곤 했다.
초복이 지나고 중복이 되면 방학과 휴가가 시작한다.
한 학기 동안 학업에 열중한 학생들이 방학을 하고 직장인들은 여름휴가를 떠난다.
자연 깊숙이 들어가 지친 몸과 마음의 휴식을 가질 수 있는 여유로움을 모처럼 갖게 될 것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일상을 잠시나마 돌아보고 쉴 수 있음에 방학과 휴가는 참으로 귀중한 시간들이다.
언제부턴가 놀이에 대한 변이된 말이 회자되고 있다.
놀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특히 놀 줄 모르는 아이들이 걱정이다.
호이징가는 놀이의 형식적인 특성을 요약해 “놀이는 일상생활에서 의식적으로 벗어나려는 자유롭고 쾌활한 활동이며 동시에 놀이를 즐기는 사람이 마음과 그 주위를 전적으로 사로잡은 활동이다”고 했다.
금욕과 절제를 기반으로 한 성리학 시대인 조선시대에도 일만하면서 살지는 않았다.
옛 조상들은 신분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놀이를 만끽하며 살아왔다.
이렇듯 우리 삶에는 놀이가 있는데 기쁨, 애환, 공동체의식, 미덕이 공존한 시대에서 가상공간이 주 놀이화 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 즉 상품화된 놀이문화, 생산소비만 있고 향유가 없는 메마른 시대를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필자의 고향 태안 남면에는 세평놀이라는 것이 있었다.
관광이 흔치 않던 1970년대에 사월 초파일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몽산포구에 모여 주꾸미와 꽃게 맛을 즐기며 하루를 보냈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다고 해서 세평이란 이름도 그 때 생겨났다.
입항하는 어선의 화폭에다/흥건히 주배(酒杯) 띄우며 물씬 놀던/일몰의 풍객이다(졸시, ‘세평놀이’부분)
군내 사람들이 다 모여들었다.
해송이 가득한 섬 사이로 배를 띄워 놓고 푸르스름한 갈매기 알이 뒹구는 모래사장에서 풍성한 웃음소리와 넋두리를 풀어놓으며 양조장 막걸리를 주고받다가 즐거운 여흥으로 돌아오곤 했다.
경제발전 주역들이신 아버지시대의 모습이다.
놀이를 통한 가장 자유롭고 해방된 인간 활동이었던 것이다.
놀이는 단순히 쉰다는 휴식의 소극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재미를 동반한 적극적인 제의나 종합예술활동과도 닿아 있다.
그러므로 놀이의 건강한 기능이 필요하다. 일하지 않고 놀이에만 몰두한다면 그 기능이 발휘될 수 없다.
열심히 일하고 생업에 적극적인 사람일수록 신바람 나는 놀이를 즐길 수 있다.
이처럼 놀이가 때로는 일보다 더 생산성을 높일 수 있으며 놀이의 공감으로 누구나 평등함을 누리게 된다.
거기에는 자유와 해방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놀이에는 지배논리에서 벗어나게 하는 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한적한 곳을 찾아 조용히 자신을 바로 세워보는 퇴수(退修)야말로 얼마나 멋스런 일일까 싶다. 선생님들은 가르치던 일에서 학생들은 학습에서 직장인들은 생업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 거룩한 때마져 씻어보고 내려놓을 수 있는 단독자가 돼보는 것이다.
올 여름 방학과 휴가에는 신명나는 놀이방학과 휴가가 됐으면 싶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한다.
놀아주는 것에 시간을 던지지 말고 자신이 놀 수 있어 놀이의 빈곤에서 탈피하는 능동적인 처방을 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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