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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전환기속 성내 조선족지역사회 탐방 (료양편)

[기타] | 발행시간: 2015.07.31일 14:29

태자하에 민족의 정기 흐른다

료양시는 동북지역에서 최초의 도시로 2,400년의 력사를 갖는 문화도시이다. 비록 료양조선족은 심양이나 무순 등 지역에 인구수도 적고 발전력사가 짧지만 료양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는 크다. 료양조선족은 료양에서 가장 먼저 수전을 개발하고 벼생산을 크게 발전시켰으며 동시에 료양의 농업경제 및 찬음서비스 발전에 일조하였다.

매년 신록이 짙어지는 6월이면 료양지역 여러 곳에 흩어져사는 조선족들은 태자하공원에 모여 우리 민족의 흥겨운 전통민속놀이와 신명나는 가무한마당을 펼치면서 민족의 전통문화를 활짝 꽃피워나가고있다.

료양지역 수전농사의 "일등공신"

중국조선족이 조선반도에서 이주하여 동북지역에 발을 붙이고 뿌리를 내릴수 있은데는 수전농사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있다. 어찌보면 입쌀은 끼니를 잇는 필수 곡물이였을뿐만 아나라 조선족의 수호신이였고 중국에 거주할수 있는 영구한 거주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여러 력사자료를 살펴보면 동북지역에서 수전농사는 모두 조선족에 의해 시작되였고 점차 보급되여왔다.

료양조선족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2005년 료양시민위에서 발간한 "료양시소수민족지"에 의하면 1907년(광서 33년)에 신(신)씨 성을 가진 사람이 조선인으로는 료양에 맨먼저 정착하였고 그 뒤로 조금씩 모여들었지만 광복후 15가구에 57명만 남았다. 각 시기 전국인구보편조사기록을 보면 료양시에 조선족이 가장 많았을 때는 8,000명에 달하였는데 정부에서 수전개발을 권장하면서 동북지역에서 많은 조선족이 료양에 와 정착한것으로 알려졌다.

료양시는 수전농사를 전폭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하여 1953년에 수전개발지휘부판공실을 설치하고 태자하구 광휘촌의 조선족농민 리제룡(료양에서 첫 호조조를 꾸리고 수전을 개발하고 벼재배기술을 전파함)을 지휘부생산위원으로 임명하였는데 이때로부터 료양지역에서 벼농사가 신속하게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료양지역의 월등한 벼농사조건으로 하여 성내의 심양, 안산, 무순외 길림, 흑룡강에서 많은 조선족이 료양으로 들어와 수전을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태자하구의 광휘촌, 동광촌, 조광촌, 료양현의 홍광촌, 조양촌, 등탑현의 신광촌 등 조선족집단부락이 선후로 생겨났다. 조선족의 신근한 노력으로 많은 황무지가 옥답으로 개간되여 당시 전시적으로 만여무에 달하는 수전을 확보하였다 한다.

지난 세기 6,70년대 조광촌의 "조광쌀"은 성내에서도 이름났는데 그때가 료양조선족 수전농사가 전성기에 들어선 징표이기도 하다. 료양시조선족촌벼재배생산통계표를 보면 1953년에 수전면적이 1,922무, 1978년에 6,129무, 1988년에 5,709무이며 조선족촌가운데 조광촌이 2,088무로 가장 많았다. 이는 농업이 료양조선족경제의 주요산업임과 동시에 료양조선족은 대면적의 수전을 개발하여 료양의 농촌경제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음을 설명해준다.

그러나 30여년간의 개혁개방속에서 조선족은 "천하지대본"인 벼농사를 너무 쉽게 버렸는데 조선족촌들에서 벼농사를 짓는 조선족은 찾아보기 극히 드물다.

현재 료양조선족인구는 약 5,000명으로 주로 료양시 도심구역과 조광촌 등 6개 조선족촌에 살고있는것으로 집계되고있지만 실지인구수는 2,000여명에 불과하고 조선족촌도 이름뿐이지 실지 거주하는 조선족인구는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일례로 료양지역 최대 조선족촌임을 자랑하는 료양시 태자하구의 조광촌은 240가구에 호적인구가 945명이지만 실지 거주자수는 300명에 불과하다.



조선족농촌의 서광

취재팀은 뜻밖에도 료양에서 만무농장을 경영하는 김철남씨(47)를 만났다. "농장주"와 다름없는 그는 료양뿐만 아니라 우리 성에서도 가장 많은 수전을 경영 관리하고있었다.

대하남진신광농기계전업합작사 리사장외 등탑시 대하남진 신광촌 당지부서기 겸 촌민위주임을 맡고있었고 또 등탑시정협위원으로 활약하고있었다. 작달막한 키에 다부진 몸매를 가진 그는 말수가 적지만 촌민들을 이끌고 실제행동으로 조선족촌의 아름다운 미래를 그려나가는 리더였다. 길림성태생으로 1996년에 이 곳으로 이사온 그는 한국행도 포기하고 아예 신광촌에 뿌리박고 조선족농촌을 지키는 파수병이 되였다. 처음 김철남부부가 30무의 땅으로부터 시작한 수전농사는 현재 직접 도급경영하고있는 수전만 2,000무에 달하고있고 대신 관리하고있는 수전면적이 8,000무에 이르고있다 한다. 2008년, 김철남씨는 마을에 남아있는 6가구와 함께 료양시에서 처음으로 등탑시대하남진신광농기계전업합작사를 설립하였다. 합작사는 파지(粑地)에서 이앙, 수확뿐만 아니라 보관, 건조, 가공에 이르기까지 모두 기계화작업을 실현하였는데 현재 각종 농기계가 60여대로 그 자산규모는 600만원에 달하고있다. 합작사는 신광촌의 지주산업으로 되여 촌민들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소득증대에 기여하고있다.

료양시위상무위원이며 상무부시장인 황지봉(黄之峰)은 올해 료양시민족사업회의및민족단결진보표창회의에서 "등탑시 대하남진 신광촌은 료양시의 소수민족특색촌건설시점으로 되여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뒀으며 집체경제실력이 현저하게 강화되고 마을면모가 일신되였다."고 높이 평가하였다. 합작사는 2012년에 전국농기계중점시점사, 2013년에 료녕성농기계중점전업합작사로 되였으며 신광촌은 지난해 료녕성민족단결진보모범집체로 되였다.

101국도에서 잘 닦여진 포장도로를 따라 3킬로메터 달리노라면 "세외도원"(世外桃源)과 같은 조선족마을이 나타난다. 100여가구가 모여사는 오붓한 마을로, 집집마다 한옥식 지붕을 씌운데다 예술품위가 있는 담장을 둘렀으며 골목길 량켠으로 태양에너지가로등이 설치되여있어 조선족특색촌의 정결함과 소담하고 아늑한 거주환경에서 민족의 숨결을 그대로 느낄수 있었다. 소개에 의하면 신광촌은 모두 조선족세대로 호적수가 131가구에 393명이며 2014년에 사회총생산액 1,000여만원을 실현하였다.

신광촌외 태자하구의 조광촌도 최근년에는 민족특색을 살려 민속촌건설에 박차를 가하고있다. 심대고속도로 료양어구에서 내려 시내로 향하는 번영로를 따라 얼마 안가 오른쪽으로 굽이돌면 푸른색 바탕에 빨간 글자로 큼직하게 쓴 "조광촌" 세글자의 궁형대문이 안겨온다. 1958년에 세워진 조광촌은 태자하구 기가진에 속하는데 과거에는 벼농사 위주였지만 현재는 로무송출이 주요 경제수입원이였다. 90년대만 해도 좋은 지리적위치로 하여 식당이 25개로 심양, 무순 등지에서도 소문을 듣고 찾아왔지만 현재는 대부분이 불경기로 문을 닫았고 5개(그중 조선족식당 3개)만 남았다. "마을에 인구는 줄어들고 소득은 한정적인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많은 궁리를 하고있습니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촌서기사업을 하고있다는 리동화씨(59, 료양시인대대표)가 지난해 4월, 료녕성의 아름다운 마을 건설 시범촌 자격을 따내 정부자금을 쟁취하여 이미 320평방메터의 촌로인협회 활동실 신축, 하수도 수선, 촌정부청사 인테리어를 마무리하였다고 소개했다. 그는 올해 2만평방메터의 마을내 포장도로를 깔고 또 시내와 가까운 지리적우세를 리용하여 촌입구에 1만평방메터의 민속관광장소와 한국미식소상품거리 조성도 추진중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조광촌에서는 기후조건에 맞는 입쌀 새품종을 재배해 래년부터 기계화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계획이다.



료양지역 유일 조선족학교

"학교는 문화교육의 진지로서 꼭 지켜야 한다. 조선족학교가 없어지면 료양조선족이 살아가는 기반이 무너지는것과 같다." 료양시조선족련의회 로순걸리사장(68)의 의미심장한 말이다. 1980년전만 해도 료양지역에 조선족중학교 1개와 소학교 6개가 있었지만 21세기초반에 들어서면서 료양시조선족학교 하나만 남았다. 그러나 이 학교도 료양조선족인구의 감소와 학생래원이 줄어들면서 학생수가 120여명으로 학교운영에서 많은 어려움이 뒤따르고있다.

료양지역에 첫 조선족소학교가 개설되기는 1961년이지만 그전인 1952년에 료양대림자소학교에 부설 조선족소학반이 처음으로 꾸려져 1965년까지 조선족소학교가 3개, 민족반이 6개에 이르렀다. 그러다 1978~1982년 시민위와 시교육국에서 여러차 조선족교육사업회를 소집하고 "조선족이 살고있는 곳에서는 조선족대중이 학교를 꾸릴것을 원한다면 학생수에 근거해 조선족소학교나 한족소학교 부설민족반을 꾸릴수 있다."고 하여 그뒤로 조선족마을마다 소학교가 세워져 조선족소학교가 6개에 달하였다.

현재 남아있는 료양시조선족학교는 1979년 9월에 설립된 료양시조선족중학교로 당시 시교육국 직속 전일제9년1관제기숙사학교로 운영되였으며 2001년에 들어서서 시정부의 지시로 6개 조선족소학교가 모두 료양시조선족중학교와 통합되였다. 2012년 9월 학교에 유아부가 개설(대외로 료양시조선족유치원)되면서 학교는 조선족 유아교육에서 소학, 중학에 이르는 전반 교육을 통솔하는 료양시의 유일 조선족학교로 되였다.

그러나 최초에는 교육경비가 턱없이 부족한 것은 물론 한족서기를 포함해 학교내 한족교직원이 30%가 넘는데다 조선족교사가 들어오기 힘들었으며 학교의 음용수질이 차하고 겨울난방이 해결되지 않아 한족학교로 전학하는 학생이 늘어났다. 설상가상으로 보안인원문제가 불거져 학생들이 식당에서 밥을 제대로 먹을수 없어 정상수업을 보장하기 힘든 등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학교령도와 학부모들이 여러차 교육주관부문과 공안사법부문에 이 상황을 반영했어도 좀처럼 해결되지 않자 료양시조선족련의회를 비롯 조선족인대대표와 정협위원들이 시위 시정부의 주요령도에게 반영하였다. 당시 료양시시장이였던 왕정보(王正谱, 현임 시위서기)는 상황을 보고받은 이튿날로 주관교육 부시장에게 지시하여 교육국, 공안국, 법원, 재정국 등 주요 관계자들이 모여서 해결하도록 하였다. 이 일이 있은 뒤로 왕정보시장은 정부관계자들과 함께 학교를 몸소 시찰하였으며 "앞으로 무슨 일이 있으면 직접 나를 찾으라"고 "특별지시"를 내렸다.

"그 뒤론 교육국이나 재정국에서 거의 안되다는 말을 하지 않아요. 실제상황에 맞고 합리하다고 하면 정부에서 모두 푸른등을 켜줍니다." 료양시조선족학교 김성철교장의 말이다. 그는 지난 2010년에 교장으로 취임하였는데 왕시장의 "특별지시"로 그동안 쌓였던 난제들이 해결되였고 특히 최근 5년간 정부에서는 학교의 교육시설건설에 1,000여만원이 자금을 투자하여 현재 학교는 일류시설의 학교로 되였다고 자랑했다.

또한 조선족교사를 초빙하기 힘든 문제에 대해 시정부에서는 "조선족으로 본과대졸생이면 정부에서 수요하는 특별인재로 명액의 제한을 받지 않고 직접 영입할수 있다"고 지시하여 학교에서는 선후 11명의 조선족대졸생을 교사로 받아들였을뿐만아니라 한족서기는 물론 부분 한족교사를 내보낼수 있었다.

학교는 현재 학생수가 120여명(그중 한족학생이 30명, 한국류학생이 2명), 교직원수가 55명이며 모두 12개 반급(그중 유치원이 3개 반, 소학부 6개 반, 중학부 3개 반)인데 정부의 편향정책을 향수하여 학생이 적든많든 반급별 5명의 교사편제외 매년 20여만원에서 30만원의 경비를 조달받고있다. 김성철교장은 "이렇게 정부의 지지와 관심이 큰데는 조선족련의회를 비롯한 조선족사회 각계 유지들의 노력과 갈라놓을수 없다"며 "그만하면 경비도 충족하고 교사편제도 넉넉하지만 갈수록 학생수가 줄어들어 큰 고민이다"고 안타까움을 호소하였다.

2014년에 료양시조선족학교에서 졸업한 초중생이 5명, 유치원에서 소학교로 진학한 학생이 12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2011년 이 학교에서 졸업하고 안산시조선족중학교로 진학한 한 학생은 2014년대학입시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북경대학 법률학부에 진학, 10여년래 료양조선족사회의 첫 북경대학 대학생으로 되였다.



권리는 스스로 쟁취해야

"본민족의 정치적지위가 향상되여야만 본민족의 합법적권익이 보호받을수 있다. 우리 민족의 리익과 의견을 대변하는 인대대표와 정협위원이 없다면 민족의 리익, 민족의 평등, 민족의 권리는 보장되기 어렵다. 민족의 정당한 권리를 가져다주길 기다릴것이 아니라 주동적으로 쟁취해야 한다." 료양취재에서 우리는 료양시조선족련의회가 이 몇 년간 조선족 인대대표와 정협위원 정액을 늘리기 위한 끈질긴 노력과 조선족사회의 여러가지 애로사항을 해결하여 조선족사회의 구심점역할을 해온데 대해 큰 감동을 받았다.

2003년 료양시에는 조선족 인대대표 1명과 정협위원 2명뿐이였다. 이런 실정에 비추어 련의회는 2007년과 2012년의 "량회"기간에 맞춰 협회명의로 도합 137부의 추천편지를 시위와 시정부 관련부문에 보냈다. 이러한 노력으로 2008년에는 인대대표가 3명, 정협위원이 6명으로 늘었으며 2013년에는 인대대표가 4명, 정협위원이 8명, 거기에 각 현구 인대대표와 정협위원은 15명이나 되였다. 이러한 수자는 심양을 포함한 성내 다른 도시보다 퍽 많은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료양시에는 조선족간부(과급)가 도합 20명, 그중 부처급간부 이상이 4명(2명이 퇴직)이다. 민족을 대변할수 있는 사람이 늘면서 정부의 공식석상에 조선족을 위한 발언권이 커졌으며 정부에서도 조선족사회의 애로사항에 귀를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해결해주었다.

련의회는 수년간 골치아팠던 조선족학교의 어려운 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신광촌, 조양촌 등 조선족촌의 마을건설에서 부딪치는 일련의 문제 해결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특히 광휘촌의 "성중촌"개조에서 촌을 아예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려고 하여 촌민들은 구정부와 심한 갈등을 빚었다. 련의회에서 이 소식을 듣고 시위서기에게 상황을 즉시적으로 반영한데서 원만하게 해결할수 있었다. 지금 태자하구 철서가두 광휘촌 촌민들은 촌을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 신축한 "광휘신촌" 아빠트에 입주하여 도시인 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고있다. 광휘촌개조는 료양시새농촌건설의 전형으로 되기도 하였다.

련의회에서는 또 매년 양력설과 음력설기간에 상무리사와 조선족 인대대표, 정협위원, 그리고 기업가들로 위문단을 무어 6개 조선족촌의 빈곤세대를 방문하고 입쌀과 생필품을 전달해주면서 민족의 정을 나누고 응집력을 키우고있다.

련의회에서는 또 료양조선족의 문화생활을 보장하고저 료양시정부에 제안하여 "료양시조선족활동쎈터" 건립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있는것으로 알려졌다.

료양시조선족련의회는 지난 1990년 5월 5일에 설립되여 초기 최윤홍리사장에서 로순걸리사장을거쳐오면서 매년 6월 료양시조선족봄날민속놀이, 4년에 한번씩 료양시조선족전민운동회(8회) 등 전시적인 조선족행사를 조직해오고있다.

지난 2003년 제3기 리사회부터 현재까지(5기 리사회) 리사장을 맡고있는 로순걸씨(1992년부터 료양시시정시설관리처 부처장직을 맡고있다가 2008년에 퇴직)는 왕성한 정력으로 모든 협회의 일을 헌신적으로 이끌어오고있는데 이번 무더운 삼복철 취재에도 시종 동행해주었다.



이번 취재에서 우리는 비록 조선족인구수가 적지만 강한 민족의 응집력과 호소력으로 태자하에서 민족의 전통문화를 꽃피워나가고있는 료양조선족사회를 기껍게 보면서 다시한번 민간단체의 힘을 실감했다.

한편 신광촌과 조광촌의 민족특색촌건설에서 조선족농촌의 아름다운 미래를 그려본다.

기자 오지훈 최동승

출처:료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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