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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서울 대림동과 재한조선족(상)

[조글로미디어] | 발행시간: 2016.02.03일 09:30

김용선 중국동포한마음협회 회장

재한조선족은 1980년대 친척방문을 시작으로 근 30년의 한국으로의 이주 력사를 거쳐왔다. 한국체류 외국인수는 2002년에 63만여명에서 2013년 11월에는 156만명을 넘어가면서 10여년 사이에 약 100만명 가까이 증가했다. 국적별로 보면 체류 외국인수의 절반을 차지한 중국인은 100만명, 이 가운데 조선족은 65만명(귀화자 포함 75만명)이 한국에 체류하고 있다. 한국인 배우자(결혼이민자)로 체류하는 사람은 15만992명, 그중 녀성이 12만9,047명에 달하며 중국 국적의 결혼이민녀성은 5만455명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한국으로의 이주는 중국 국적을 가진 이주민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이들 가운데 조선족 이주민은 그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결혼이민자, 동포1세 등 국적취득자를 포함하면 그 수자는 50만명을 훨씬 넘어선다.

중한 수교 23주년을 맞은 현재 량국 간 경제교류의 확대와 함께 상대국으로의 “이민”이 더욱 늘어나고 있다. 약 80만명의 한국인이 중국에 거주하고 있고 한국에도 약 100만명의 중국인이 생활하고 있다. 집단 거주 지역도 생겼고 북경의 왕징과 서울의 대림동이 대표적인 곳이다.


한국내 최대 중국동포타운 대림동

현재 한국사회가 조선족의 한국내 이주로 인해 적지 않은 변화를 겪고 있는것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조선족의 집거지역이라 할수 있는 동북3성 지역의 조선족사회 역시 큰 변화를 겪고 있다. 불법체류자 합법화 조치가 발표 시행된 2003년경부터 한국 서울 지역만 해도 가리봉동 연변거리와 지하철 2호선 대림역 주변, 자양동 양꼬치 거리, 신림동, 신대방동, 경기도 수원역 부근, 성남 수진동, 안산 원곡동의 다문화거리 등을 중심으로 조선족 밀집지역이 생겨났고 한국생활이 장기화되면서 그 지역들은 점차 확대되여가는 추세이다.

이곳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결혼이민자, 식당과 상점의 종업원, 건물 청소원, 가사도우미, 육아도우미, 건설 잡부, 제조업 로동자 등으로 일하고 있는 약 50여만명에 이르는 이들이 현재 한국땅에서 “중국동포” 또는 “조선족”이라 불리며 살아간다. 국경을 넘는 초국가적 이주는 사람의 몸만 이주하는것이 아니라 그 몸을 감싸고 있는 공동체의 문화가 앞으로 속할 새 문화와 전면적으로 만나고 부딪치는 력동적 신호이기에 이주민의 삶의 현실은 결코 단순하거나 간단치 않다.

2007년 방문취업제의 시행과 2008년 조선족에게도 재외동포체류자격을 부여하기 시작하면서 특히 최근 년간 자녀초청과 추첨제의 시행과 2014년 4월 1일부터 모든 조선족에게 한국 입국 비자를 부여하면서 재한 조선족사회는 엄청난 속도로 급변하고 있다.

기존 한국언론 등에 비친 가리봉 중국동포타운은 쪽방촌이라는 거주환경 때문에 1990년부터 지금까지도 대부분 홀로 사는 조선족들이 거주하고 있고 이들 상당수는 일용직으로 건설현장 등에서 근무한다. 하지만 지하철 2호선과 7호선이 있는 대림역 주변 대림1, 2, 3동은 가리봉동보다 교통이 편리하고 주거형태도 다양하여 이미 한국내 최대의 중국동포타운으로 부상하였다. 많은 조선족 단체들과 언론사들의 주무대이면서 각종 행사와 활동이 이루어지는 지역이다. 가리봉동이 50~70대 조선족 역이주 1세대들을 대표한다면 대림동은 20~40대 역이주 2세대들을 대표하는 곳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대림동 조선족 상권

서울지하철 2호선과 7호선이 만나는 대림역 8번, 12번 출구. 한국인들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한국 그 어디와도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길게 뻗은 상가에 “연변식당”, “산서(山西)반점” 등의 간판이 중국어와 함께 씌여있다.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중국인 거리”임을 실감케 한다. 중국 길림성의 조선족 집단 거주지역인 연변에 와 있는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대림동은 1, 2, 3동으로 구분되는데 이 3개 동에 조선족인구가 몇명인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다만 가장 밀집된 대림2동의 경우 약 9,300명의 중국인(80%정도는 조선족)이 거주하고 있는것으로 추산된다. 실제 거리에서 만나는 중국인은 한국인보다 더 많아 보인다. 수도권 기타 지역에 사는 중국인들이 대림동에서 모임을 갖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010년, 등록 거주인구 2만 6,339명 가운데 한국인 1만 9,081 명, 외국인 7,258 명 (약 28%). 이 가운데 중국 국적자가 7,207명(남자 3,714명, 녀자 3,493명)이다. 그런데 영등포구 다문화빌리지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현재 대림2동의 외국인 인구는 9,300여명으로서 가리봉동과 함께 이곳 외국인의 인구는 한국인 인구의 절반에 이른다. 하지만 이런 공식 통계는 실제의 모습과 차이가 있는데 그 리유는 공식적으로 등록을 하지 않고 살고 있는 외국인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지역을 지날 때 마주치게 되는 길거리의 사람들 대부분은 중국동포들이라고 할수 있을 정도로 그 비률이 매우 높다. 특히 주말이 되면 서울, 경기지역의 중국동포들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이곳으로 오기 때문에 이곳 중국동포들의 표현에 따르면 “길거리가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사람들로 꽉 차게 된다.” 특히 “대림역 12번 출구”는 중국에 있는 조선족들도 잘 알고 있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장소이다.

대림동에는 25개의 중국식품점과 40여개소의 려행사(행정사), 300여개소의 중국 음식점 및 미용실, 환전소, 노래방, 주점, 웨딩홀, 클럽, 사우나, 휴대폰매장, 부동산중개업체, 상조회사, 언론사, 당구장, PC방, 학원, 은행, 전화방, 한의원, 안마원, 직업소개소, 컴퓨터전문점, 커피숍, 건강원, 도매업체 등이 있어 큰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현재 체류자격이 안정화되고 가족단위로 거주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재한조선족들은 경제적 여유와 심리적 안정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각종 가족모임, 친척모임, 동향모임, 친구모임, 동창모임, 잔치, 단체행사 등 수많은 모임들이 교통이 편리하고 먹을거리도 많고 대형음식점들도 많은 대림동을 찾는다. 대림동에는 한국에서 가장 큰 중국동포 상가가 형성되여 있어 중국동포들에게 필요한 각종 정보와 서비스가 많기 때문에 이곳에 거주하지 않는 외부의 중국동포들도 자주 찾아온다. 특히 주말에는 우에서 언급한 각종 모임이 이곳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매우 많은 류동인구가 드나든다.

조선족 음식 뿐만 아니라 쇼웨이야붜(小魏鸭脖), 꿔쵸우미쌘(过桥米线)등 중국 각 지역 대표음식들을 다 맛볼수 있고 심지어 24시간을 영업하는 마라탕(麻辣烫) 상권도 형성돼 있다. 그중 쇼웨이야붜는 한국에 30여개 체인점을 낼 정도로 가맹점 사업에도 진출하고 있다.

기존 조선족들이 운영하는 려행사들은 대부분 려행사라기보다는 친척초청, 비자대행, 외국인등록증 대행 등 행정사에 가까운 출입국 서류대행 업무만 보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제주도 등 한국내 관광 뿐만 아니라 동남아관광, 일본관광 등 려행패키지(包办旅游) 상품을 파는 려행사들도 많이 생겨났다. 조선족들이 산업현장에서 돈만 버는것이 아니라 문화생활을 할수 있는 여유와 실력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방증이다.

대림동의 또 하나의 특징이라면 조선족들의 결혼식, 돌잔치, 칠순잔치 등 각종 잔치가 많다는것이다. 동북3성, 북경, 상해 등 중국 국내에서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 젊은이더라도 부모나 친척 대부분이 한국에 있어 결혼식을 한국에서, 대림동에서 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구멍가게들만 있던 대림동에는 근년 연변웨딩홀, 보성연웨딩홀 등 조선족들이 운영하는 여러 업체들이 생기면서 지역 웨딩홀들과 경쟁하고 있다. 조선족 젊은이들이 많아지면서 당구장, PC방, 미용실, 학원, 휴대폰매장 등 업체들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조선족들이 어디에 가나 가장 많이 운영하는 업체가 양꼬치집이다. 필자가 2009년과 2010년 두번에 걸쳐 전국 골목골목을 다니면서 중국인 상가 조사를 한 자료에 의하면 2010년 9월 당시 전국 2,000여개소의 중국인 업체 중 음식점이 70%이상을 차지하고 그중 양꼬치집이 30%이상을 차지하였다.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에 가면 그 비률이 70%이상이다. 대림동에 본점을 둔 “신강양꼬치”와 같은 경우 한국 고객들만 있는 마포역 부근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분점을 오픈하여 대박이 난 경우도 있다.

기존 짜장면을 대표로 하는 중화료리가 있었다면 현재는 양꼬치가 현대 중국 본토 외식업 중 가장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대표 음식으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가맹점사업 업체들도 양꼬치 사업에 뛰여들어 전국에 1,030여개소의 양꼬치 집이 있는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조선족 상권의 형성과 인구 류동량이 증가하면서 대림동에는 중국공상은행, 중국은행 등 중국계 은행도 입점하게 되였고 한국계 은행인 하나은행은 아예 조선족 직원들을 고용하고 간판도 중국어로 걸고 중국인 고객만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대림동출장소를 개점하기도 하였다.

이곳의 상권은 한국인들의 상가와 중국인들의 상가로 나뉘어져 있다. 중국인들의 상가를 중심으로 수년을 걸쳐 형성된 중국색채가 짙은 이 지역은 조선족들의 “제2의 고향”이라고 불릴 정도로 한국의 조선족을 리해하는데서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하지만 한국인 주민들은 같은 동네에 살아도 중국인 식당에 잘 가지 않는다. 이와 대응되게 조선족들은 자신의 중국 고향 이름을 내건 음식점을 주로 리용한다. 경로당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곳에는 한국 국적을 회복한 많은 조선족들이 거주하고 있지만 이들은 한국인 경로당에 다니지 않고 별도로 경로당을 만들어 모임을 갖고 있다.


대림동 조선족의 삶

한국에 체류하는 조선족들은 전국에 걸쳐 거주하고 있지만 주로 서울과 경기도를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서울에는 25만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는 용산구 인구와 맞먹는다. 그중에서도 영등포구, 구로구, 금천구, 관악구, 동작구 등 서울시 서남부 5개 구에 밀집하여 거주하고 있고 경기도에는 안산시 단원구, 수원시 팔달구, 성남시 수정구, 시흥시, 화성시, 고양시 일산, 군포시 산본동, 광명시, 부천시에 밀집하여 거주하고 있다. 현재 이들 밀집지역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중국동포들이 거주하는 지역은 영등포구와 구로구이며 그 가운데서도 대림2동에 가장 밀집되여있다. 중국동포타운이라고 불리는 조선족 밀집지역은 90년대 말부터 가리봉동을 중심으로 형성되였다. 대림2동의 중국동포타운은 가리봉동의 재개발과 맞물려 2004년경부터 형성되기 시작해서 현재에는 한국 내 동포타운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성장하였다.

대림2동을 비롯한 중국인이 밀집하여 거주하는 지역에 사는 사람의 대부분은 조선족이다. 대림2동에도 소수의 한족이 거주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중국인은 “조선족”임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을 비롯한 소위 “동포타운”은 주로 “중국인들이 모여 사는 곳” 혹은 “중국인의 거리”라고도 불린다.

대림동 조선족들의 주거지는 많은 경우 보증금 100만원에 월 25만 혹은 보증금 500만원에 월 15만원의 월세방이다. 대림2동의 경우 이곳의 옥탑방, 지하 및 반지하방 그리고 작은 규모의 방들은 거의 모두 중국동포들이 세를 들어 있다. 그런데 최근에 경제력을 갖춘 중국동포들이 늘어나면서 5,000만~2억원의 전세뿐만 아니라 아빠트를 사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주거 형식에서 또 하나 중요한 현상은 같은 집에 사는 한국인과 중국동포들이 서로 마주치지 않고 살아간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동포들 사이에서도 이웃을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이 많지 않다.

경제 여건에 따라 중국인 거주 지역도 변화하고 있다. 처음 한국에 온 중국인들은 비교적 집값이 저렴하고 한국사회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수 있는 가리봉동이나 대림동을 선호하고 이후 돈을 벌면 사당, 방배, 성북, 강동, 서대문, 동대문 심지어 강남 등으로 이전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한국인 사회로의 진입을 꿈꾸는것이다.

최근 한국에서 자녀를 낳거나 중국에 남아있던 자녀들이 한국에 입국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지역 한국학교에 입학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구로초등학교 올해 신입생의 경우 30%이상이 조선족 자녀이고 대림동에 있는 대동초등학교 같은 경우 올해 신입생의 70%이상이 조선족 학생이라고 한다. 어린이들이 많아지면서 재한조선족사회는 한국어가 아닌 중국어를 배우지 못하는 새로운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재한 조선족 단체 발전

2000년 이전, 대부분 조선족들이 합법적 체류자격을 취득하지 못한 시절, 재한 조선족사회에는 동포단체가 전무하다시피 하였다. 그들은 숨어 다니기에 바빴고 언제 단속되여 강제추방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고액리자를 내면서 한국입국을 위해 빌린 돈을 하루 빨리 벌어야만 했다. 당연히 여가활동도 취미활동도 없었고 단체도 있을수 없었다.

2000년 이후, 서울조선족교회를 비롯한 일부 교회에서 동포들의 권익을 위해 나섰고 그들을 중심으로 재한조선족련합회, 귀한동포련합총회 등 교회 주도의 초기 동포 단체들이 설립되였다. 그 주체는 중국동포들이였으나 주도권은 교회에서 가지고 있었다.

2003년 11월 중국동포 대학원생들로 구성된 재한조선족류학생네트워크(이하 KCN)가 설립되였다. 이는 당시 유일의 합법체류자격을 가진 동포들로 구성된 단체였다. KCN은 동포관련 세미나, 봉사활동, 나눔행사, 명절행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면서 동포들의 권익향상과 이미지 개선, 한국사회 적응력 제고를 위해 노력하였다.

2007년 방문취업제, 2008년 재외동포체류자격 부여가 시작되면서 재한중국동포사회는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체류안정은 결제활동 안정으로 이어졌고 경제적 안정은 가정안정으로, 가정안정은 전반 중국동포사회의 상대적 안정으로 이어지면서 중국동포들은 물질적 추구에서 벗어나 정신적 추구를 원했다.

수많은 동포 단체들이 생겨났고 많은 활동과 행사가 열렸다. 천지산악회, 한마음골프클럽, KCS배드민턴클럽, 재한중국동포축구련합회, 재한중국동포장기련합회, 재한중국동포배구협회 등 스포츠 동호회들과 서예협회, 문인협회, 음악동호회, 신화밴드, 영상협회 등 예술단체, 한마음봉사단, 한마음마미재능나눔단, KCN봉사단, 한나봉사단 등 봉사단체, 꽃망울회, 중덕장학회, 나뭇잎사랑나눔 등 자선단체, 대림동시내길경로당, 가산중국동포경로당, 대한아리랑경로당련합회 등 로인단체, 중성촌동향회, 오산동향회 등 고향모임, KC오피스맨클럽, 미래지향엘리트모임 등 전문직 단체, 조선족을 중심으로 된 한중무역협회와 같은 경제단체….

특히 단순 직능 단체 성격을 넘어 재한중국동포한마음협회, 재한중국동포련합총회 등 취미, 여가, 봉사, 스포츠, 교육 등 여러 기능을 수행하는 종합단체들도 설립되였다. 이들 단체들은 자체활동과 행사 외에도 체육대회, 낚시대회, 명절행사, 공동봉사활동, 정책제안 등 비교적 큰 지역행사를 주최하고 한국사회와의 중요한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재한중국동포유권자련맹 등 단체들의 련합 움직임이 보이고 있고 자체 힘으로 권익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정치활동도 펼치는 단체들이 준비 내지 설립되고 있다. 다만 다문화지원정책과 외국인근로자지원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동포사회가 국회와 지자체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 재한다문화모모단체라고 이름 지어진 중국동포 단체들이 생겨나면서 논란의 소지를 보이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최근에는 동포 엘리트 및 민족에 대한 열정으로 모인 KC동반성장기획단과 같은 싱크탱크(智库) 단체가 결성되여 전문성을 띠고 재한동포사회의 전반적인 발전 방향에 대해 기획하고 정부 지원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으며 재한동포사회에서 처음으로 전 동포를 대상으로 민주선거를 통해 창구역할과 교량역할을 하는 재한동포위원회 상임위원회가 결성되기도 하였다.


재한조선족사회의 미래

최근 한국내 조선족의 생활 중심지가 점차 확대되면서 중국동포타운에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현재 한국내 주요한 동포타운으로는 서울의 대림동, 가리봉동, 건대입구, 봉천동과 수원역, 성남 수진동, 안산의 외국인타운 등이 있다. 그가운데서 가장 최근 형성된 건대입구의 “양꼬치 거리”는 안산, 가리봉동, 대림동의 경우와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안산, 가리봉동, 대림동이 중국동포들만의 분리된 거리를 형성했다면 건대입구의 경우에는 한국인들의 소비문화의 일부가 되여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중국동포들의 사회경제적 분화와 관련이 깊다. 중국동포들가운데 학력이 높고 사회적인 성공을 이룬 사람들은 점차 안산, 가리봉동, 대림동을 떠나 중산층 한국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한국에 체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문화적으로 안산, 가리봉동, 대림동의 동포타운 문화에서 멀어지고 한국의 주류문화에 친숙해진다.

한편 중국인 관광객의 대량 입국으로 중국인 관련 관광산업이 발전하면서 많은 조선족 젊은이들이 려행사, 백화점, 골프장, 카지노, 면세점 등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신라면세점과 같은 경우 전체 판매 직원의 70%가 조선족이라고 한다. 화장품, 의류 등 한중 무역업에 종사하는 조선족들이 대폭 증가하고 있고 법률사무소, 대학교, 연구기관, 대기업 등에 취직한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재한조선족사회가 역이주 1세대의 3D업종의 이미지였다면 2세대는 한중경제문화교류에서 단순히 통역일군이 아닌 파트너 관계로 성장하면서 교량역할, 심지어 주도적 역할을 하기 시작하였다. ▣ (다음호에 계속)

<중국민족>잡지 2016년 1호/글 김용선 중국동포한마음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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