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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홍군31]금사강 교평도와의 인연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6.10.28일 12:48
특별기고-겨레홍군 장정 발자취 따라(31)

◇ 리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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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여름방학, 운남의 곤명과 대리-려강-샹그릴라(大理-丽江-香格里拉)등지 가족유람을 마친후 나는 가족과 헤여져 홀몸으로 사천, 귀주 홍군장정 답사길에 나섰다. 그날은 8월 13일, 오후 5시에 운남땅 샹그릴라를 떠나 뻐스는 이튿날 8월 14일 이른새벽 5시에 481키로메터밖 사천땅 판즈화(攀枝花)시에 이르렀다. 려강과 샹그릴라의 변계지대 산기슭을 흐르는 금사강에 이어 판즈화시에서 두번째로 대하는 금사강에 끌리여 낮 내내 판즈화시를 흐르는 10여리 구간 금사강을 오르내리다가 오후 4시에야 사천 회리(会理)행 뻐스에 올랐다.

판즈화시와 회리현성 사이는 110키로메터, 장정길 중앙홍군이 경유한 회리(会理)현성에서 하루밤 쉬고 이튿날 오전 회리 통안진(通安镇)행 뻐스를 잡아탔다. 회리현성과 통안진 사이는 멀지 않은 54키로메터다. 쉽게만 본 54키로메터를 뻐스는 3시간 나마 달린다. 통안진에 이르니 통안진에서 27키로메터밖 금사강 교평도(皎平渡)를 달리는 뻐스가 없다. 대기중인 여러 오토바이들이 너도나도 나서지만 구릉길, 산간길을 념려해 오토바이들을 사절했다. 한 오토바이수가 한 구간을 달리며 나를 어느 소형뻐스까지 안내한데서 쉽게 소형뻐스 한대를 잡을수 있었다.

1935년 5월초 양림, 무정 소속 중앙홍군이 도하한 천험 금사강. 사진속 다리 바로 왼쪽 우가 당년 중앙홍군이 금사강을 도하한 교평도 나루터이다.

소형뻐스 운전기사는 참 맘씨 좋은 40대였다. 필자가 통안진에서 교평도로 가야겠지만 통안진은 당년 장정길에서 홍군이 싸운 전적지여서 먼저 잘 보아야겠다고 하니 그는 진내에서는 전체 모습을 볼수 없다면서 저 앞 둔덕길에 가면 환히 보인다고 한다. 운전기사의 뜻을 따랐다. 운전기사는 한참을 달리다가 소형뻐스를 세워주었다. 통안진 전체가 환히 보이는 언덕길이다. 필자는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몇장 남기며 한참이나 통안진과 그 주변 일대를 눈에 익히였다. 통안진은 장정길에서 간부퇀 참모장 양림이 직접 지휘한 한차례 멋진 공격전이 있은 곳이다.

금사강가 북안 바위동굴쪽에서 보는 금사강을 가로지른 다리. 금사강 북안은 사천땅이고 금사강 남안은 운남땅이다.

오늘의 통안진은 사천성 량산이족자치주 회리현의 한개 진으로 나타난다. 아쉬운대로 통안진 앞 언덕길을 지나 한식경 달리다가 소형뻐스는 또 멈추어선다. 운전기사는 잘 보라면서 이제 가보면 알겠지만 저 아래 산과 산 사이로 금사강이 흐르고, 금사강 교평도에서 통안진으로 향하자면 꼭 거쳐야 하는 산언덕구간이라고 동을 단다. 소형뻐스에서 내려 주위를 일별하니 산언덕 구간 남쪽지대는 아아한 산들로 이루어진 산간지대이고 북쪽지대는 산과 구릉으로 되여있다. 금사강쪽에서 뻗어오던 큰 골안은 여기에서 뚝 끊어지며 좌우로, 더우기 좌로 깊고 좁은 골 지대를 이루며 북 어디론가 멀리멀리 뻗어간다.

산언덕 구간에서 보는 큰 골안 오른쪽은 경사도 급한 높은 산비탈을 이루며 뻗어내리고 왼쪽은 흔히 가파른 산비탈과 현애절벽을 이룬다. 당년 양림이 직접 지휘한 간부퇀 제3영 2개 련은 이곳 왼쪽 구간 험한 비탈을 톺아오르며 적들과 조우전을 벌리였었다. 이 조우전을 사자산전투라고 한다. 운전기사는 하늘을 치박을듯 솟아오른 왼쪽 저 아래쪽 두개의 바위봉우리를 가리키며 당지 사람들은 원래 사자산으로 불리우던 저 바위산을 홍군산이라고 부른다고 알려준다.

금사강가 북안의 골안어구에서 보는 사자산. 천험 금사강을 선참 도하하며 홍군의 개척로를 열어제낀 양림은 다시 명령을 받고 간부퇀 제3영 2개 련을 지휘하여 사자산전투를 벌리면서 중앙홍군의 사천땅 진군로를 열어제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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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뻐스는 왼쪽 험준한 산발을 따라 다시 달린다. 산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츠란 높이의 굽이길인데 운전기사는 자유자재로 차를 몰아간다. 그러던 운전기사는 한 구간에 이르러 소형뻐스를 세우더니 길가 언덕에 올라보라고 한다. 그의 말대로 길가 언덕에 오르니 와~ 금사강 교평도 아래우 구간 금사강이 발아래 펼쳐진다. 그런 금사강물이 은띠처럼 아아한 산과 산 사이를 소리치며 흘러내린다. 금사강 남쪽 산 주봉들엔 흰구름이 감돌아 그야말로 가관이다.

(1935년 5월 3일의 금사강 강행도하는 양림이 선참 간부퇀 선견영 전위련을 지휘하여 이뤄낸 기적이지!)

내가 금사강과 금사강 량안과 양림에 도취되여 있을 때 운전기사는 곁으로 다가와 저 산아래 마을 금사강을 지른 다리가 교평도대교이고 교평도대교 웃구간이 교평도나루터로서 당년 홍군이 도하한 자리라고 알린다. 다음 금사강을 거슬러 오르다가 금사강이 오른쪽으로 굽이를 타는 저쪽 높은 산마루가 무얼로 보이는가고 묻는다. 아무리 보아도 뭔지를 모르겠다. 운전기사는 저 높은 산마루가 최근년간에 발견된, 하늘을 향해 누운 “모택동머리상”이라고 하면서 당지 뉴스매체들이 한때 선전에 열을 올리여 당지사람들은 대개 알고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고 보니 비슷해 보인다. 보면 볼수록 “모택동머리상”으로 안겨진다. “홍군장정 회리를 지나다”의 저자 소지붕(肖志鹏)은 “모공산”(毛公山)이라고 하면서 회리 인민들이 모택동을 그리며 발견한것이라고 설명한다.

멀리에서 보는, 당지 사람들이 누운 “모택동머리상”이라는 모공산.

운전기사는 모택동의 머리상 발견은 기적이라면서 대자연에 어떻게 모주석의 머리상이 있을수 있는가고 한다. 이는 모주석은 하늘이 내린 위인이기에 홍군을 이끌어 금사강을 강행도하한 모주석을 잊지 못하는 금사강 량안 인민들의 마음을 표달하고있다고 흥미진진해 이야기를 이어간다. 당지 백성들 가운데 모택동의 위신은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보십시오. 모택동머리상이 나타난것이 그저 일입니까? 아니지요. 저 두 바위봉우리를 홍군산이라고 하는것이 그저 일입니까? 아니지요. 모주석은 진짜 하늘이 내린 위인입니다!”

소형뻐스 운전기사의 모택동 운운에 필자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감사한 일은 또 뒤에 있었다.

소형뻐스는 다시 버럭으로 이루어진 산비탈 급한 갈지자 길을 돌아 달리다가 산아래 교평도대교가에서 멈추어섰다. 높다란 교평도대교우에서 쏴~쏴 소리지르며 흘러내리는 금사강물을 내려다 보노라니 그때 그 마음을 형언키 어렵다. 그럴 때 운전기사는 다시 나에게로 다가와 자기가 한 곳을 안내하겠다고 한다. 무엇이냐고 하니 금사강 북안 모주석 등 어른님들이 머무른 동굴이란다.

그를 따라 교평도대교 다리밑 유람길에 들어서니 당지 사람들이 한창 유람길을 수선하고있었다. 그런 유람길이 금사강 북안 따라 금사강을 거스르며 한참 나아갔다. 앞은 부스럭돌들이 다시 바위로 응고된 부스럭바위 구간인데 깊이가 몇메터 됨직한 동굴들이 몇개가 보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주은래, 주덕, 류백승 등 지도자들과 홍군총부 류숙지라고 밝힌 세멘트 소개글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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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쪽 아래구간 동굴은 몇십메터로 길게 뻗어가다가 끝나더니 제일 안쪽 구간에 길게 뻗은 동굴과 함께 동굴구멍이 셋이 보이였다. 그중 안쪽 세번째 동굴앞에 다가서니 “홍군장정도강시 모택동동지가 류숙한 산굴”이라는 세멘트 소개글이 반가이 맞아준다. 동굴은 몇메터 깊이를 이루는데 자연모습 그대로이고 꾸며놓은 그 무엇이 없다. 있다면 바닥 한곳과 천정을 이룬 부스럭돌들 틈마다 담배꽁다리가 가득하거나 틈사이마다 박히여있는것. 이는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모주석어른이 담배를 무척 즐겼기에 이 동굴을 찾는이들이 권연에 불을 붙여 틈서리에 끼워놓으며 모주석을 그린다고 한다.

그리곤 담배 한가치를 꺼내 불을 붙여 바위틈에 끼워놓더니 오신 기념으로 그래보라고 권고한다. 나에게 담배가 없으니 운전기사는 자기 담배 한가치와 라이터를 건네준다. 우리 둘이 바위천정에 끼운 담배는 천천히 타며 몰몰 담배연기를 피여올린다. 우리는 담배 두가치가 다 탈 때까지 지켜보았다. 감수가 별스럽다. 금사강 북안의 동굴을 찾는 남자들은 이런 방식으로 모택동을 그리며 추모하고있었다.

중앙홍군이 금사강을 도하할 때 모택동이 머무른 금사강 북안의 바위동굴

이곳 바위동굴들은 정말이지 당년 홍군장정과 관계되는 중요한 자리였으니 1935년 5월초 중앙홍군의 세상으로 이름이 높다. 중앙홍군의 3만여명 대오는 양림 등 간부퇀 전위련이 선참 열어놓은 뒤를 이어 5월 3일부터 9일까지 밤낮 7주야 7개의 나루배로 금사강을 강행도하했으니 그 기간 모택동 등 중앙군위 지도자들과 홍군총부가 바위동굴들에 류숙을 정하고있었다. 모택동, 주은래, 주덕, 류백승 등은 이곳 바위동굴에서 중앙홍군의 금사강 도하를 지휘하고 통안주로 출격한 간부퇀을 걱정하면서 만약 양림이 지휘하는 간부퇀이 적들을 막아내지 못하면 홀로 싸워야 하는 간부퇀과 그 후과는 자못 엄중하다며 손에 땀을 쥐였다.

그이들은 간부퇀은 모두 간부들이고 홍군의 골간력량들이기에 간부퇀의 상망을 걱정하는것이였다. 주은래는 몇번이나 전보로 먼저 간부퇀과 련계하면서 군위총부의 경위영을 간부퇀에서 직접 지휘하도록 하고 총부엔 1개 통신련밖에 남기지 않았다. 류백승은 간부퇀 송임궁정위가 소속부대를 지휘하여 신속히 통안주로 달려가 싸우는 간부퇀 주력부대에 힘을 실어주도록 하였다. 그리곤 류백승은 금사강가에서 안경을 끼고 우산대를 지팽이로 하면서 때때로 도강기률을 선포하고 명령을 하달하고 도강을 지휘하였었다.

운전기사의 안내로 금사강 북안 바위동굴 답사를 순조로이 끝내였다. 교평도대교로 돌아와 소형뻐스를 떠나보낸후 필자는 금사강 남안인 운남쪽 주민구역에서 한 호텔를 잡았다. 점심식사는 오후 1시에 대충 에때우고 교평도대교우를 여러번 걸어보다가 금사강 남안의 운남쪽 홍군장정도강기념관과 홍군도강기념비를 찾아보았다, 단층으로 된 그닥 크지 않은 홍군장정도강기념관은 잠겨져 있어 참관할수 없었으나 선 자세로 오른손에 노대를 부여잡고 높이 추켜든 홍군전사의 형상으로 된 홍군도강기념비는 필자를 당년 중앙홍군의 금사강 강행도하로 끌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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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군도강기념비 가까이에 곱게곱게 피여난 연분홍 삼각매화(三角梅)는 필자를 중앙홍군의 금사강 천험 돌파에서 쉬이 헤여나오지 못하게 하였다. 삼각매화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면 진짜 내 고향 연변의 연분홍 진달래를 방불케 한다. 이 나라 남방 어디에서나 춘하추동 사계절 모두 볼수 있는 삼각매화는 중국사람들에게 열정적이고 견인분발하고 두려움 모르는 정신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 삼각매화가 지금 우리 북방으로 말하면 한겨울인 1월에 한창 피여나는 복건 하문이나 해남 해구, 삼아도 아닌 8월의 금사강가에 화알짝 피여 북방의 나그네를 반가이 맞아준다. 홍군 양림으로 변하여 만리밖에서 찾아온 겨레를 포옹하여준다. 그래, 진짜 양림으로 다가온다. 그러는 삼각매화에 취하면서 금사강 교평도대교를 배경으로 디지털카메라에 담아보았다.

홍군장정도강기념관과 홍군도강기념비에 이어 금사강 북안의 사천쪽 대안 따라 산중턱까지 걸어보면서 통안진으로 이어가는 큰 골안 어구까지 부지런히 돌아보았다. 날씨가 너무도 무더워 큰 골물이 금사강에 흘러드는 금사강 구간, 급물살 이루는 교평도대교 바로 아래구간 강가에서 목욕도 하며 수석탐석도 하며 신선한 금사강가에서 땀을 들이였다. 그러다가 금사강만의 특이한 무늬수석 한점을 주어들고 좋아서 어쩔줄 몰랐다.

사자산전투후 양림은 계속 소속 부대를 지휘하여 통안진전투를 벌리면서 련속 중앙홍군의 진격로를 연다. 사진은 당년 통안진전투가 벌어진 통안진 전경.(이상 사진 모두 2010년 8월 15일 현지촬영)

금사강 남안 류숙지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필자는 주인집 아낙네 모녀간과 한담을 하다가 주인집 상점에 걸린 로인배사공 사진에 주의를 돌리였다. 사진속 주인공은 리정방(李正芳), 뭔가 짚이는데가 있어 리정방이면 당년 홍군의 도강을 도와나선 리정방이 아니냐고 하니 어떻게 아느냐며 반색한다. 나의 말을 듣더니 그 머나먼 곳에서 찾아왔다며 주인아낙네인 반가영(潘加英)은, 리정방이면 자기의 시아버지이고 남편인 리귀재(李贵才)는 올해 54살, 자기는 남편과 자치동갑인 53살이라고 한다. 1935년 홍군 도강시 시아버지 리정방은 20살의 젊은이고 같이 나선 시아버지의 둘째삼촌 리유재는 30여살이요, 시아버지 사망은 66살때인 1979년이라는 반가영이다. 그는 또 시집은 따이족이고 자기는 한족이라고 소개한다. 남편이랑은 외지에 가있고 자기들 모녀간이 식당도 하고 상점도 하면서 생활은 불편함이 없단다.

이튿날 아침 7시, 나는 교평도 류숙뻐스인 운남 록권(禄劝)행 뻐스로 금사강 교평도를 떠났다. 교평도에서 록권현성까지의 거리는 150키로메터, 록권현성에서 곤명까지의 거리는 72키로메터다. 교평도 출발을 앞두고 신기한 일을 목격하였으니 필자의 흥분은 절정에 달하였다. 청청하던 날씨가 어제 오후 4시 직전부터 흐리며 한때 소낙비를 퍼부어 내내 흐린 날씨더니 이튿날 8월 16일 아침도 여전하다. 뻐스 출발을 몇분 앞둔 찰나 금사강 상류쪽 모택동머리상을 이루는 산마루가 검은 구름이 금시 엷은 구름으로 바뀌며 모택동머리상 부분 전체에 붉은 아침노을이 비끼며 환한 모습을 드러낸다. 금빛을 뿌리는것만 같다. 그것도 몇분 정도의 잠간뿐이다.

필자는 그 광경을 지체없이 디지털카메라에 담아두었다. 그러면서도 신기한 기분이 전신을 감돈다. 해뜰녘이겠지만 얼마전까지도 흐리던 하늘이 잠간 엷어지며 어둑어둑 상태의 모택동머리상을 아침노을이 비낀 환한 모습으로 안겨주니 마치 금사강을 떠나는 필자에게 모택동의 위인임을 다시다시 환기시키는상싶었다. 이윽고 뻐스가 떠나도 나는 쉽게 그 기분속에서 헤여나질 못했다. 금사강과의 인연, 간부퇀과의 인연, 양림과의 인연이 아닐수가 없다.

2016년 10월 17일 재정리

편집/기자: [ 김정함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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