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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왕의 바위에 출가한 황제의 이야기(제26편)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6.11.03일 11:00
베이징 김호림 특별기고

  (흑룡강신문=하얼빈)명산 오대산(五臺山)은 워낙 용왕 보다 먼저 신선이 살던 곳이었다. 《선경(仙經)》에 따르면 "선계(仙界)라고 이름을 했고 늘 자색(紫色)의 기운이 있었으며 선인(仙人)이 살고 있었다." 지명 역시 오대산이 아니라 자부산(紫府山)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자부산은 또 선인뿐만 아니라 보살도 살던 고장이라고 했다. 이 일대에 왔던 천축(天竺)의 고승들은 예전에 문수(文殊)보살이 강설(講說)을 하던 도장이라고 주장했다. 동한(東漢) 영평(永平) 11년(A.D.68)에 생긴 일이었다.

돈황 막고굴 61번 동굴의 벽화 일부

  

  문수는 범문(梵文)으로 'Manjusri'의 음역을 줄인 말이며 지혜의 상징이다. 전설에 의하면 '오대(五臺)'는 오방(五方) 여래(如來)의 좌석이라고 한다. 오대산에는 다섯 정수리가 있으며 문수보살이 정수리에 오계(五髻)를 틀고 있는 것을 상징한다. 곧바로 이 상좌(上座) 보살의 지혜의 원만함을 나타내는 것.

  정말로 오대산은 문수보살과 특수한 인연을 맺은 불교명산이 아닐지 한다.

  옛날부터 오대산에서 수련하고 있던 도사(道士)들은 이에 도리머리를 저었다. 그들은 승려들이 이곳에 사찰을 세우고 문수보살을 공봉 하는 것을 동의하지 않았다.

오대산의 이름은 이 사찰에서 시작된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주장이지요. 아전인수(我田引水)를 하는 억지가 벌어지는 겁니다."

  결국 한(漢)나라 명제(明帝)는 낙양(洛陽)의 백마사에서 제단을 세우고 도사와 승려에게 경합을 벌였다고 한다.

  그때 도사들은 제안하길, 도교와 불교의 성물을 제단에 쌓아놓고 불을 질러 타지 않는 쪽이 승리하는 것으로 하자고 한다. 도교는 성스러움이 있고 또 도사들은 신통함이 있어서 그들을 믿은 것이었다. 황제가 이에 윤허하자 백마사의 남문 앞에 도교의 단에는 신상과 경전을 올리고 불교 단에는 경전과 사리(舍利)를 진열했으며 미구에 불길을 지폈다. 도교는 북두칠성에 제사하는 의식을 거행했으나 불길을 막을 수 없어서 경전이 검게 탔다. 불교 단에는 사리가 방광(放光)을 하면서 불기운을 누르므로 경전에 변색이 될 뿐 타지 않았다고 한다.

청량석 바위를 떠메고 있는 스님.

  

  천 년 전 대륙 종교계에서 일어났다고 하는 이 사건은 많은 문헌에 기재되어 있다. 과연 이 이야기를 어느 정도 믿어야 할까… 아무튼 오대산의 대회진(臺懷鎭) 일대에서 불교사원은 이 무렵부터 일떠서고 있었다. 사원은 나중에 대회진을 중심으로 360여 채나 되었으며 오늘도 128채의 크고 작은 사찰이 잔존하고 있다.

  오대산의 사찰은 '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紅衛兵)의 파괴에 의해 적지 않게 파괴되었다. 이런 극좌적인 홍위병은 거개 외지인들이었다고 손(孫)씨가 말하고 있었다. 손씨는 일행의 안내를 맡은 오대산의 현지인이다.  

  "그때 우리 농민들은 사찰에 감히 손을 대지 못했어요. 불교를 신앙하거나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아서 경외심을 갖고 있었거든요."

  사찰이 오대산에서 다시 흥성한 것은 약 20년 전의 일이다. 손씨가 운영하는 여관도 그 무렵인 1992년부터 개장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성수기인 여름 한철이 되면 방 16개가 모두 만원이라고 했다. 그는 또 택시와 사찰 안내를 겸하고 있었다. 다른 동네에서는 식당업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대회진은 평지가 거의 없는 산간마을이었다. 날씨가 산밖에 비해 너무 차서 주로 감자를 재배하고 있었다. 한때는 일부 사람들이 살림살이를 걷어치우고 산 밖의 오대현 현성으로 이주했다. 옛날 산속의 기후는 이 보다 더 열악했다고 한다. 겨울이면 바람과 눈이 불어치고 여름이면 더위와 비를 이겨내기 힘들었다. 그래서 약초꾼이나 사냥꾼은 혹간 산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신선이나 야인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때에 비하면 오대산은 날씨든 생활이든 모두 문수보살님의 도움으로 아주 좋아졌다고 손씨가 거듭 말했다.

  "문수보살님을 알려면 먼저 청량사(淸凉寺)를 만나야 하지요." 손씨는 우리 일행을 먼저 청량사로 안내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들어보니 오대산의 지명도 기실 이 청량사에서 생겼다고 한다. 청량산은 오대현 현성에서 대회진으로 들어오는 산의 어구에 위치하고 있었다.

청량사 사찰의 유일한 유물은 이 동굴식 승방이다.

  오대산의 원명은 '청량산'이며 훗날 다섯 채의 산봉우리를 '오대(五臺)'라고 해서 '오대산'이라고 이름을 불렀다고 '청량산지(淸凉山志)'가 기재하고 있다. 북위(北魏) 시기의 '수경주(水經注)'는 "오대산은 그 산에 오대가 우뚝 서있으며 이로 하여 '오대'라고 불린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곳에서 설법하던 문수보살이 도탄에 헤매는 백성들을 구원했다고 손씨가 얘기했다. 항간에서 널리 전한다고 하는 이야기였다.

  그때 문수보살은 신통력으로 동해에 가서 용왕의 청량석을 갖고 왔다고 한다. 이 바위를 산골짜기에 놓아두자 산의 기후가 청량하게 되었으며 '청량한 불국'으로 되었다. 이로부터 산골짜기를 '청량곡'이라고 명명했으며 또 사원을 '청량사'라고 작명했다는 것이다.

  청량석은 원래 용왕이 잠깐 휴식을 취하던 바위였다. 용왕은 보배의 바위가 육지의 산에 옮겨가자 크게 화를 냈다. 그는 뒤를 쫓아가서 입으로 불을 내뿜고 발톱으로 몇 번이고 갈퀴어 다녔다. 다섯 산봉우리는 꼭대기가 꺾어지고 바람처럼 날아갔다. 손씨는 지금도 산에 돌들이 널려 있으며 용왕이 돌을 뒤엎었다는 의미의 '용번석(龍飜石)'이라고 부른다고 말한다. 산의 이름은 이때부터 오대산이라고 불렀다는 것.

  '청량석'과 '용번석'은 전설과 함께 오대산에서 천년 동안 전하고 있었다.

  "바위가 산골짜기에 놓은 후 물이 감미롭고 풀과 나무가 무성했다고 하는데요."

  손씨가 말하는 아름다운 전설은 옛날 동네방네 전하고 있었다. 일찍 수(隋)나라 문제(文帝)는 이 이야기를 들은 후 오대산의 다섯 봉우리에 각기 한 채의 사원을 설립, 문수보살을 공봉 할 칙지를 내렸다고 한다. 이 때문에 오대산도 또 일명 청량산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오대산은 곧 청량산을 말하듯 청량산은 대뜸 청량사를 떠올리게 된다.

  청량사는 오대산 산문 밖에 있어서 2차 등록 수속을 해야 했다. 번거로움을 겪어야 했지만 그렇다고 다들 유명한 청량사의 수고를 마다하려 않고 있었다.

  한국 승려도 이곳에 자주 다녀가고 있다고 청량사의 심도(心道) 스님이 말했다. 스님은 무슨 인연인지 한국말과 글을 일부 독학하고 있었다. "청량사의 상징은 청량석이지요, 20억 년 전에 형성되었는데 27톤이나 된다고 해요."

  스님은 갑자기 어린이처럼 장난기를 발동, 청량석에 허리를 들이밀어 어깨로 떠메고 있었다. 거석의 바위는 심도 스님의 허리에 의해 마치 꽃잎처럼 흔들거리고 있었다.

  전하는데 의하면 문수보살이 청량석에서 설법을 했으며 이 때문에 '만수상(曼殊床)'이라고 한단다. 만수는 산스크리트어로 천상에 핀다는 꽃 이름을 말한다. 명(明)나라의 지리학자 서하객(徐霞客)도 청량석을 기술하고 있다. 청(淸)나라 초, 청량사의 '찬불시(贊佛詩)'의 기록에 따르면 순치(順治) 황제가 이 청량석에서 출가했다고 전한다.

  그러고 보면 청량사는 일찍 남북조(南北朝) 시기에 설립된 오랜 사원으로 마멸할 수 없는 천년의 기억을 억년 바위에 기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청량산에 처음으로 나타나는 반도의 승려는 신라의 자장(慈藏, 590~658) 법사라고 '삼국유사(三國遺事)'가 기록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자장 법사는 선덕왕(善德王) 5년(636) 당나라 청량산에 들어가서 성인을 만났다고 한다.

  자장은 속성이 김씨이며 출가 전에는 진골(眞骨)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문수보살의 진신을 보려고 당나라의 오대산에 갔다. 그는 문수보살 석상(石像)에서 기도, 명상을 하다가 범어(梵語)의 시 구절을 들었으며 부처의 가사와 사리 등을 얻었다고 한다. 자장 법사는 선덕왕 12년(643)에 자장 법사가 당나라에서 불법을 배우고 신라에 돌아갔다고 전하고 있다.

  잠깐, 자장 법사가 들렸던 청량산은 오대산의 이름과 동일하지만 오대산의 일부인 청량산도 동일한 의미일 수 있다.

  어찌되었거나 문수보살이 강설하던 청량사는 더는 그제 날의 이야기로 사라졌다. 옛 사찰은 동굴의 승방 밖에 남아있지 않으며, 기타의 전각은 '문화대혁명' 시기에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청량사는 창건 설화가 아닐지라도 소설처럼 신비하다. 그러나 옛 사찰은 파괴가 아니더라도 소실, 변동되어 옛 모습을 더는 찾을 수 없다.

  신라의 고승 혜초(慧超, 704~787)는 780년 즈음 오대산에 들어가 건원보리사(乾元菩提寺)라는 절에 입적했다는 기록이 있다. 혜초가 집필한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은 프랑스에 약탈되어 파리국립도서관에 보존되어 있다. 그러나 건원보리사가 도대체 어느 사찰인지는 아직도 모르고 있다.

  정말이지 오대산의 많은 유적과 경관은 구름처럼 흘러갈듯 한다. 옛날 반도의 승려는 물론 일본, 스리랑카의 승려들도 순례 구법을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오대산의 영적(靈迹)을 상당 수 잃고 있었다.

  심도 스님은 옛 흔적을 읽지 못해 유감스러워 하는 우리 일행을 위안했다. "정성을 드리면 신령한 자취를 언제인가는 꼭 찾을 수 있어요."

  사실상 오대산의 대불(大佛)은 천년 만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손씨가 차를 달린 것은 대회진 중심 근처의 영봉사(靈峰寺)였다. 이 사찰은 일찍 당나라 때 설립되었지만 몰락하여 1975년 전부 철거했으며 옛 사찰을 다시 세웠다고 한다.

  영봉사의 배불대(拜佛臺)에 향불을 피우고 있던 비구니 스님은 못내 아쉬운 기색을 비치고 있었다. "오늘은 비가 내리고 있는데요, 부처님을 만날 수 없을 것 같아요.

보화사, 사찰 뒷쪽의 산체 자체가 부처 형상이라고 한다.

  비구니 스님은 불교용품점에 비치하고 있던 서책을 구구히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골짜기 북쪽의 공포산(貢布山) 위에 있는 희귀한 정경은 1996년 6월 25일에 일어났다고 한다. 공포산 기슭의 보화사(普化寺) 주지가 맞은쪽의 영봉사에서 탑을 예배하다가 갑자기 산정의 앙천(仰天) 대불을 발견했다는 것.

  "대불 사진을 보세요, 자연 경물이라고는 너무나도 흡사하지 않아요?"

  보화사의 산정에는 양미간이 포만하고 코가 풍만했으며 두 팔을 가슴에 올려놓고 머리를 보화사에 업었으며 다리를 남산 허리에 내려놓고 있었다. 먼 곳의 산봉우리의 나뭇가지들이 마침 '일만(一萬) 보살이 청량(淸凉, 오대산)을 두르는' 경지를 나타내고 있었다.

  날마다 태양이 하늘에 홀연히 나타날 때 석가모니의 참모습이 비로소 세상에 드러내고 있었다.

  천년 세월 동안 영봉사에는 어찌하여 대불이 발견되지 않았을까. 해는 날마다 산에서 떠올랐지만 부처는 사람들의 눈에 나타나지 않았다. 오대산은 마치 그 어떤 기발한 시간과 인생을 따라 운영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세상의 오묘함은 너무 치밀하다고 하기에는 또 우연한 일치라고 하지 않은가.

  대회진 현성의 버스터미널에서 귀경 버스를 기다렸다. 오대산이라서 그런지 스님은 오가는 관객 못지않게 많았다. 스님의 도복도 저마다 다르고 독특한 듯 했다. 와중에 철릭의 승복 같은 장삼을 보다가 갑자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니, 담배를 피우다니요? 스님이 담배를 공양하세요?"

  정말 도(道)는 못 보이고 담배는 보이는 걸까. 누가 뭐라고 하든 스님이라면 담배를 피우지 않는 수행자가 아닐지 한다. 용왕의 바위는 진작 산에 찾아왔지만 전설의 황제는 아직 절에 출가하지 않고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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