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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이야기46] 돈은 벌기보다 쓰기를 잘하라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7.01.13일 09:55

허만석(우)회장 제10회 “만석문학상”시상식에서

—베품을 실천해가는 길림시문학사랑협회 허만석회장의 이야기

길림시문학사랑협회 허만석회장의 우리 민족 문학에 대한 꾸준한 사랑은 그가 “돈은 벌기보다 쓰기를 잘해야 하느니라”라고 말한 현명한 아버님의 유훈을 명심해 지켜가면서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문학소년 개체식당 꾸려 사장이 되다

교하 내자산진 구금촌의 한 유식한 농민의 아들로 태여난 허만석, 6남매중 둘째로 태여난 허만석은 철없던 소시적부터 문학이라는 “유령”에 혼신을 다 빼앗꼈다.

중학교 졸업후 진학의 길을 포기하고 광활한 “인간대학”을 갈망한것도 가정형편이 어려운것과 무관하지 않았지만 “생활체험”의 유혹때문이였다고 허만석회장은 회상했다.

“아버지가 병환에 계셨고 맏형이 당시에 할빈사범대학을 다니고있는 상황이여서 가정형편이 어려웠죠.선생님이 우리집까지 방문을 와서 저더러 고중에 진학하라고 권고했지만 제고집을 꺽진 못했죠.”

문학소년은 주먹밥 한덩어리에 만족하며 글감을 찾아나섰으나 현실은 판판 다른 세상이였다. 리상은 물거품으로 흘러갔으나 유독 책만이 문학소년과 쌍둥이가 되여 공장에서 농촌으로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중학교를 졸업한후 허만석은 교하세멘트공장의 로동자로 2년간 일했고 그후 고향땅에서 20여년간 농사를 지으면서 논물관리원,과수원 책임자,생산대 부기원,생산대 대장을 두루 맡아보았다.

80년대초 개혁개방의 훈풍이 불어오자 교하역광장의 한 모퉁이에 “천지불고기랭면집”이라는 간판이 나붙었는데 그 간판의 주인공이 바로 허만석이였다.

생각외로 식당경영이 잘되자 허만석은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 되였다. 거액을 손에 거머쥐게 된 허만석은 남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이 고래등같은 벽돌기와집까지 척 지어놓았다


“만석문학상”수상자들과 함께

《도라지》와 맺은 인연 “만석문학상”으로꽃피우다

5년간 돈벌이에 열중해 생활의 기반이 마련되자 허만석의 마음속에 잠재워두었던 문학이란 요정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식당을 동생들에게 맡기고 무작정 보따리를 싸들고 길림시로 올라온 허만석, 그는 길림시조선족의 문학지《도라지》잡지사를 찾았다.

《도라지》잡지사의 고 문창남,고신일선생과 친구가 된 허만석, 문학초보자였지만 《도라지》잡지사에 “호구”를 붙치고 업여편집으로 문학공부를 하게 되였다.

이를 계기로 허만석은《도라지》잡지사에서 조직한 크고작은 문학창작모임을 통해 조선족문단의 상황을 료해하게 되였고 작가들의 힘겨운 삶을 목격하게 되였다.

한편 허만석은 길림으로 올라온지 2년만에“아리랑식당”을 꾸렸다.식당개업 3년후인 1990년,허만석은 우리 문학사업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여야겠다는 큰 결심을 내리고 행동에 옮겼다.이렇게 되여《도라지》잡지에 “만석문학상”이 세워졌는데 그것도 한번에 그치는것이 아닌 장장 10년의 약속이였다.

1991년 제1기“만석문학상”시상식이 길림에서 성대히 열렸는데 이는《도라지》잡지사 력사상 최초의 정기 문학상인셈이였다. 금액은 만원으로 설정했다.

“만원이란 금액은 사실 제가 1년간 식당해서 번돈의 반타작에 해당되는 금액이였답니다.그래도 아까운줄 몰랐죠.” 라고 말하는 허만석은 이듬해에도 약속대로 시상식을 이어나갔다. 당시 만원호가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던 시기였다.


길림지구창작좌담회 기념사진

북경진출, 경영의 일대 위기속에 빠졌지만…

1993년에 더 큰 꿈을 안고 북경에 진출해 식당을 꾸리게 된 허만석은 뜻밖의 엄청난 경영위기에 빠져들고말았다.

북경 남삼환로에 있는 동철영로동자구락부 4층에 세운 업소가 공교롭게도 영업시작후 한달도 안되는 어느날 밤에 큰화재로 인해 재더미로 되고말았다.

제3기 문학상시상식을 이을수 없게 된것은 불보듯 뻔했다.

하지만 허만석은 재더미를 디디고 오또기마냥 다시 일어섰다. 불난 집에 재물이 인다더니 식당은 차츰 호황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허만석은 결코 “만석문학상”을 잊지 않았다. 2년후인 1994년에 밀렸던 제3기 시상식과 제4기 시상식을함께 올렸다.

그리고 2002년에 제10기 시상식을 올려 드디여 문학상 10년을 후원하려던 약속을 지켰다.


북경에서 문화인들과 함께

베품을 실천해가는 후덕한 경영인

“베품은 나의 인생신조의 하나입니다.”라고 말하는 허만석회장,북경진출초기 화재로 험난한 고비를 겪었지만 1994년 북경 북3환로 옆에 위치한“새아리랑”식당운영에 성공하면서 북경조선족들을 위해 기여해볼 마음을 다졌다.

1995년에는 조양공원 옆에 경영면적이 2천평방메터가 넘는“신궁야채관”을 개업했다.

이듬해 설,허만석은 고향에 설쇠러 갔다가 고향의 싸리나무로 만든 윷 세모를 갖고 북경으로 돌아왔다.

보름날, 북경조선족정월대보름윷놀이한마당이“신궁야채관”에서 성대히 펼쳐졌다.

드넓은 홀에 북경조선족 유지인사들과 군중들이 모여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혁명에 참가한후 처음으로 윷놀이를 해본다.”며 환한 웃음을 지으며 즐거워하시던 원 국가민족사무위원회 문정일주임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허만석은 말한다.

자신의 자그마한 마음과 노력이 수도 조선족들에게 이같이 큰 기쁨을 안겨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허만석이다.

“저는 돈이 흔한 부자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생활이 막막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일상생활에서 아낄줄 알지요. 아낀 돈을 내가 사랑하는 일, 값있고 뜻깊은 일에 쓸 때 제일 보람있지요.”허만석의 속심의 말이다.

길림에서 식당을 경영할 때 한번은 그가 장춘에 전분가루를 구하러 간적이 있었다.

그날 그는 기차역에서 농산품도매시장을 찾아가는 도중에 인력거를 탔다.이 광경이 우연히 원“장백산”잡지사의 리여천사장의 눈에 띄게 되였다.

제3기 “만석문학상” 수상작소감 발표시 리여천은“후원인이 갑부인줄 알았는데 쓰딸린대거리에서 실북처럼 나드는 택시를 외면하고 인력거에 앉아가던 이가 바로 허만석이였다.”며 감개무량해했다.


문학사랑협회 모임에서

문학은 영원한 ‘애인’, 만년의 사랑은 길림시문학사랑협회에

2010년 3월말, 길림시 강남릉원에 모셔놓은 부모님청명제사를 지내러 길림행을 하게 된 허만석, 친구의 소개로 길림시문학사랑협회를 알게 되고 협회에서 꾸리는 내부잡지 “문학사랑”도 접해본다. 보니“문학사랑”은 책가위도 흑백이고 너무 볼품이 없었다.

이에 가슴이 아팠던 허만석은 당시“문학사랑”을 책임진 고 도규섭회장에게 칼라로 책가위를 하여“문학사랑”에 옷을 입히도록 하자는 건의를 하며 후원금을 약속했다.

허만석은 북경에 돌아가자마자 문학사랑협회에 돈을 보냈다.

“비록 지금까지 문학방면에서 거둔 성과는 없지만 저는 문학에 빠져 많은 독서를 하면서 인생의 참뜻을 알게 되였고, 창작의 기쁨도 맛보았지요.”

“인생이 고달프고 힘들 때는 나를 고무격려하는 힘의 원천이 된 문학, 문학은 영원한 나의‘애인’입니다.”

“북경에 진출한 한 음식점의 보통보스(老板)로서 북경조선족들의 사랑을 받게 된것도 문학으로 호흡이 통했기때문이라고 봅니다.”

조선족문단의 저명한 시인 김철선생과는 길림에 있을 때 《도라지》잡지사에서 처음 만난후부터 사제지간의 정을 깊이 나누며 북경에서 누구보다 가깝게 지냈다.

문학은 나의 삶의 기쁨이요,삶의 동력이라고 말하는 허만석, 만년에는 문학사랑과 인연이 되여 지금은 나서 자란 고향 길림에 아예 귀향해 문학사랑협회의 회장직을 떠메였다.

“제 쓸것을 다 쓰고 남을 도울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대체 얼마나 될가? ”

허만석은 비록 가진건 별로 없지만 서로 마음을 나눌수 있었기에 우리 민족 문학에 대한 사랑을 실천해나갈수 있었다고 심성을 터놓으면서 호방하게 웃는다.

편집/기자: [ 차영국 ] 원고래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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