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보스턴대 연구팀 성공… 잘못된 행동 인지 때 나오는 뇌파 100분의 1초 만에 읽어 행동 수정
한 참가자가 두 팔이 달린 로봇 ‘박스터’(Baxter)와 마주 앉았다. 둘 사이에는 ‘페인트’와 ‘선’이라는 이름이 붙은 플라스틱 통이 놓여 있고 참가자의 머리에는 뇌파를 감지하는 기능이 있는 전선 달린 모자(EEG)가 씌어졌다. 실험이 시작되자 박스터는 페인트 용기를 어느 플라스틱 통에 담을지 고심하다 ‘선’을 선택해 팔을 뻗었다. 순간 참가자는 머릿속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했고, 박스터는 불과 100분의 1초 만에 이를 읽어 용기를 ‘페인트’ 통에 넣었다. ‘정답’과 ‘잘못’ 사이의 이원적 선택에 불과했지만 로봇이 인간의 마음을 읽은 순간이었다.
6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이 보스턴대 신경과학자들과 함께 인간의 생각을 읽는 로봇 박스터를 개발했고, 연구 결과를 5월 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FT는 “인간이 텔레파시로 로봇을 조종하는 시대로 가는 데 있어 중요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이번에 개발된 박스터는 인간이 잘못된 행동을 인지했을 때 생성하는 뇌파 신호(ErrPs)를 감지하도록 설계됐다. 박스터는 이 신호를 100분의 1초 만에 읽어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알고리즘에 넣고, 즉각 자신의 행동을 수정한다. 박스터 개발을 주도한 다니엘라 루스 MIT 컴퓨터과학및인공지능연구소 소장은 “인간은 마음으로 (로봇의 행동에) 동의할지 아닐지 판단만 하면 된다”며 “인간이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으며 기계가 인간에 맞추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실제 연구진은 12명이 참가한 실험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고, 인간이 보낸 첫 신호가 약한 경우에도 박스터가 2차 신호를 재차 감지해 정확히 행동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향후 인간의 복잡한 명령을 수행하는 로봇이 개발될 경우 자율주행차량, 생산시설 감독 등 각종 분야에 이 기술이 사용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대 볼프람 부르가르트 교수는 “인간의 언어를 로봇에 전달하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이번 개발 소식은 미래의 ‘인간·로봇’ 관계에 중대한 진전”이라고 말했다.
FT는 이 기술의 진보를 위해선 뇌파장치를 심거나 뇌파 감지 모자를 사용해야 하는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간의 뇌파를 로봇이 읽는 기술은 현재 전신마비 장애인이 로봇을 조종하는 기술 개발 등에 활용되고 있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