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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이상일 감독의 '분노'를 읽는 두 가지 시선

[조글로미디어] | 발행시간: 2017.04.09일 08:52
재일 교포 이상일 감독이 4년 만에 내놓은 신작 ‘분노’(원제 怒り, 3월 30일 개봉). 일본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요시다 슈이치 지음, 은행나무)이 원작으로, 분노·신뢰·용서·사랑 등 인간의 다층적 감정을 두루 탐구하는 영화다. 탄탄한 주제의식, 일본을 대표하는 유명 배우들의 열연, 강렬하고 섬세한 연출력 등을 인정받아 제40회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 등 13개 부문을 휩쓸었다. 이 영화를 본 두 기자가 각기 다른 관점에서 ‘분노’를 살펴봤다.


무기력의 끝에도 희망은 있는가

‘분노’를 관통하는 감각은 심리를 압도하는 몰입감이다. 일본의 각기 다른 지역에 나타난 세 명의 떠돌이. 이들 중 누가 부부 살인 사건의 범인일까. ‘분노’는 관객에게 조금도 답을 알려 주지 않고, 이 의문을 제시하며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관객은 혼란에 빠진 극 중 인물의 입장에서 한 명씩 용의자를 의심하며 이야기를 따라간다. ‘분노’는 이렇듯 불신과 혼란이 가득 찬 세계로 관객을 성큼 끌고 들어간다. 세 에피소드가 탄탄하게 맞물린 편집과 강렬한 영상 연출은 관객의 몰입감을 한층 끌어올린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세계에 의심 없이 빨려 들어가게 되는 중요한 설정이 있다. 그것은 극 중 모든 등장인물이 삶에 어떤 변화도 일으킬 의지가 없는 무기력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게이인 유마(츠마부키 사토시)는 “이해할 마음이 없는 사람에겐 아무리 설명해도 전달되지 않는다”며 커밍아웃을 꺼리고, 남자에게 약한 엄마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이즈미(히로세 스즈)는 “(내가) 말한다고 (엄마가) 바뀌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한다.

영화 '분노' 스틸

무력함의 끝은 타츠야(사쿠모토 타카라)와 이즈미 에피소드에서 드러난다. 이즈미는 타츠야와 함께 오키나와 시내에 놀러 갔다가, 미군으로 보이는 두 남성에게 성폭행당한다. 타츠야는 그 모습을 보고도 숨죽이고 두려움에 떠느라 이즈미를 도와주지 못한다. ‘분노’에서 가장 불편하고, 아리송하며, 허탈함마저 선사하는 장면이라 할 만하다. 왜냐하면 “폴리스, 폴리스…”라는 불명확한 목소리에 성폭행범들이 도망가 버렸기 때문이다. 아주 단순한 저항조차 못하는 타츠야, “항의한다고 바뀔 건 없다”며 아무에게도 그 사건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이즈미. 이처럼 ‘분노’는 나약하고 어두운 감정을 지닌 인물을 이야기의 곳곳에 배치한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살인범이라 의심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저항감 없이 받아들여진다. 이것이 지금 일본 사회의 변화를 포착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분명한 것은 전작 ‘악인’(2010)보다 더 견고하게 ‘닫힌 세계’를 담아냈다는 점이다.


이즈미 사건 이후, 인물들은 본격적으로 더 맹렬하게 분노와 의심의 늪에 빠진다. 유마는 자신의 연인 나오토(아야노 고)가 시내에서 젊은 여자와 만나는 모습을 목격하고, 아이코(미야자키 아오이)의 아버지 요헤이(와타나베 켄)는 딸의 연인 타시로(마츠야마 켄이치)의 신원 확인에 나서기 시작한다. 그러나 세 떠돌이 중 타나카(모리야마 미라이)만은 의심받지 않는다. 그건 타나카가 타츠야에게 “언제든 너의 편이 되어 줄게”라는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넸기 때문이다. 어떤 것도 분명하지 않은 ‘분노’의 세계에서 믿고 의지하고 싶게 하는 따뜻한 메시지. 그렇기 때문에 그가 진범으로 드러났을 때의 참담함과 배신감은 더욱 크다. 말하자면 ‘분노’의 서사는 의도적으로 관객을 혼란에 빠뜨려 감흥을 증폭시킨 것이다. 여기에 더해, 영화는 엔딩에서 아이코에게 돌아온 타시로의 모습으로 사랑이 남긴 작은 희망을 담는다. 두 시간 넘는 상영 시간 내내 폭력적인 외부 상황과 그에 대항할 수 없는 약한 인물을 목격한 후 다가오는 감동.


하지만 ‘분노’는 곱씹을수록 석연치 않다. 왜 이 영화에는 자신의 불신을 의심하는 인물은 없는 것일까. 그래서 오히려 이렇게 반문하게 된다. 인간은 그토록 나약한 존재인가. 연인을 그렇게 쉽게 의심해 버리는 유마와 아이코처럼, 사랑은 이토록 연약한 것인가. 어쩌면 ‘분노’는 불신과 현혹이라는 매력적인 주제를 다루기 위해, 인간의 강인하고 긍정적인 면모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건 아닐까. 그렇게 만든 ‘분노’는 거센 정서적 파고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긴 시간 선사했던 참담함을 이겨 낼 희망의 출구는 너무나 작았다.


김나현기자 respiro@joongang.co.kr


벼랑 끝까지 내몰다, 끝내 연민으로 끌어안는

스릴러영화로서 ‘분노’의 구조는 꽤 영리하다. 중산층 부부를 끔찍하게 살해한 ‘하치오지 살인 사건’의 범인. 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분노’는 어쩌면 살인 사건 진범일지도 모르는 세 명의 남성 용의자를 객관화시킨 채, 주인공들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범인은 세 사람 중 한 명일 수도 있고, 그 누구도 아닐 수 있다. 이들 가운데 누구를 믿고 누구를 범인으로 지목할지는 온전히 관객의 몫이다.


이상일 감독의 촬영 현장은 그의 영화 속 세계처럼 몹시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악인’(2010)에 이어 ‘분노’에서도 이 감독과 함께 작업한 배우 츠마부키 사토시가 “이 감독의 영화에 한 번 출연하고 나면, 향후 5년 정도는 함께 작업하고 싶지 않다”고 농담처럼 말할 정도다. 지난해 제2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방한한 히로세 스즈 역시 “지금까지의 출연작 중에서 ‘죽을 만큼 힘들었던’ 영화”로 ‘분노’를 기억했다.

영화 '분노' 스틸


그러나 이 작품 속에서, 이 감독은 ‘분노’와 ‘믿음’이란 인간의 감정을 묘사하는 데 충분히 집요했을까. 솔직히 말해 ‘분노’의 결말은 ‘조금 더 처절했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상대방을 신뢰하거나 불신했던, 주인공들 각자의 선택이 그에 상응하는 완벽한 파국으로 이어지는 게 훨씬 효과적으로 주제를 전달했을 테니까. 하지만 영화 속 이즈미의 강간 장면을 처절하게 묘사한 것과 달리, 이 감독이 설계한 엔딩은 너무도 쉽게 인물들을 구제하고 용서한다. 영화 내내 격렬히 꿈틀댔던 감정들이 무색하게.


물론, 세 가지 상황에 놓인 주인공들은 저마다 세 명의 용의자에게 품었던 의심과 신뢰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 탄식과 분노가 엇갈리는 ‘분노’의 클라이맥스는, 마치 살과 뼈로 이루어진 벽이 사방에서 죄어드는 듯한 연출로 관객을 압박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마지막은 다르다. 주인공들을 천천히 벼랑 끝으로 내몰던 이 감독은, 영화의 끝에 이르러 비극적 상황에 탈진한 캐릭터들을 극적으로 끌어안는다. 요헤이와 아이코 부녀는 결국 타시로와 재회하고, 유마는 나오토의 죽음을 통해 그의 진심을 깨닫는다. 이즈미 역시 엔딩에서 억압된 감정을 바다를 향해 절절히 게워 낸다. 자신이 가혹한 상황으로 내몬 캐릭터에 대한 인간적 연민. 원작자 요시다 슈이치와 마찬가지로, 이 감독은 이를 저버리지 못한다. ‘화룡점정’을 찍지 못한 건 아쉽지만, 연민은 이 감독의 영화 세계를 규정하는 주요 성분이다.


이 감독의 전작 ‘악인’ 그리고 신작 ‘분노’는 모두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가혹한 사건들. 그리고 그 거대한 파장에 맥없이 휩쓸리는 인물들. 그들에 대한 깊은 연민을, 두 작품은 절절하게 드러낸다. ‘분노’를 보면서 ‘악인’의 클라이맥스가 떠올랐다. 딸을 잃은 아버지 요시오(에모토 아키라)가 죽은 딸을 모욕하는 대학생 마스오(오카다 마사키)에게 분노와 슬픔을 토로하는 장면이다. “요즘 세상엔 소중한 존재가 없는 인간이 너무 많아. 자신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며 스스로를 강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그렇다고 해서 무언가를 잃고 아파하는 이들을 업신여겨서는 안 돼. 인간은 그러면 못 써.” 어쩌면 이 감독은, 이 대사를 곱씹으며 원작 소설을 스크린에 담지 않았을까.

영화 '분노' 스틸

‘고백’(2010)과 ‘갈증’(2014)에서 인간의 실패와 몰락을 탐미적이고 냉소적으로 담아 온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과 달리, 이 감독은 ‘분노’에서 주인공들이 마주한 참혹한 결과를 인간적인 시선으로 위로한다. 혹독한 세계에서 고난을 겪는 캐릭터를 창조했으나, 차마 인간에 대한 일말의 희망과 믿음을 거둘 수 없었던 조물주로서 말이다. 결말에 대한 그의 선택은 비록 영화적으로는 결함처럼 느껴지지만, ‘분노’는 바로 그것으로 완성된다.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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