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임모(22·여)씨는 지난 15일 저녁 서울 마포구 홍익대 주변 한 술집에서 종업원이 내민 지문인식기에 엄지손가락을 갖다 댔다. 지문인식기는 실제 지문을 스캔해 주민등록증에 등록된 지문과 대조하는 기기다. 인식기에 주민등록증을 넣으면 지문과 주민등록번호, 사진이 있는 신분증 앞뒷면이 스캔된다. 인식기는 이 정보를 바탕으로 신분증이 도용됐는지 여부를 판단한다. 수집된 개인정보는 일정 기간 인식기에 저장된다.
임씨는 술집 종업원이 “앳돼 보인다”며 지문검사를 해야겠다고 해 얼떨결에 손가락을 내밀었다. 주민등록증도 건넸다. 종업원은 인식기에 ‘일치한다’는 표시를 확인하고서야 “남의 주민등록증을 도용하는 경우가 잦아 지문검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씨는 “종업원이 내 신체와 개인정보를 수집할 자격이 있는지 궁금했다”며 “그래도 주변 친구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마지못해 지문검사에 응했다”고 했다.
일상에서 개인정보가 새고 있다. 지문 같은 신체정보부터 주민등록·휴대전화번호 등 신상정보가 빠져나간다. 온라인 개인정보 유출은 여러 대형사고 이후 시민들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규제도 강화되고 있지만, 이처럼 오프라인에서 벌어지는 정보 유출은 무방비로 당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온·오프라인 구분이 희미해지는 빅데이터 시대에는 온라인만 아니라 일상 속 개인정보 유출도 경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명함도 쉽게 노출되는 개인정보 가운데 하나다. 직장인 한모(28·여)씨는 지난해 명함을 만든 뒤부터 들르는 식당마다 경품 추첨함에 명함을 넣었다. 그 뒤로 도박과 대출을 권하는 전화와 문자들이 부쩍 많아졌다. 한씨는 더 이상 명함을 넣지 않는다. 그는 “평소에 혹시나 하며 명함을 넣곤 했는데 당첨은커녕 스팸 메시지만 늘었다”며 “뒤늦게 주변에서 ‘대형마트가 명함 응모함에 들어온 개인정보를 금융사에 팔아 처벌까지 됐다’는 말을 듣고는 명함 넣기를 관뒀다”고 말했다.
소비자단체협의회가 지난달 전국 남녀 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4%가 “개인정보가 유출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잘 모르겠다”는 비율은 23%였고 “유출된 적 없다”는 비율은 12%에 그쳤다. 마케팅 홍보 전화나 명의도용 피해 등 개인정보가 유출돼 불편함을 겪었다는 비율도 40%에 이르렀다.
일상에서 개인정보를 소홀히 하는 것은 온라인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될까 조심스러워하는 모습과 대비된다. 권헌영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온라인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되면 내 정보를 누가 어떻게 사용할지 모르고, 해킹 등 직접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긴다”며 “눈에 보이는 일상에서 개인정보를 내놓을 때보다 조심스러워 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온라인만큼 오프라인 개인정보 유출에도 각별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빅데이터 시대에는 명함 같은 오프라인 개인정보도 손쉽게 디지털화할 수 있다”며 “특히 지문 등 신체정보는 한번 유출되면 회복하기 어려운 만큼 더욱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우리나라는 경품 등 눈앞의 작은 이익에 이끌려 개인정보를 쉽게 내놓는 경향이 있다”며 “막연히 ‘내 개인정보는 안전하겠지’라고 믿다가 낭패를 당하지 말고 일상생활에서 개인정보를 보호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
글=오주환 이형민 기자 johnny@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출처: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