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황다녠(뒷줄 오른쪽 첫번째)이 창춘지질학원을 졸업할 때의 단체사진이다.
1982년 1월 15일, 황다녠은 “중화의 진흥은 우리 세대의 책임이다”란 졸업 증언을 동창에게 남겨 주었다.
황다녠이 창춘지질학원 정문 앞에서 남긴 사진이다(사진 자료).
황다녠이 영국 유학기간에 찍은 사진이다(사진 자료).
황다녠(오른쪽 두번째)이 가족들과 영국에서 찍은 사진이다(사진 자료).
황다녠(왼쪽 두번째)이 연구팀을 거느리고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2010년 11월 22일 촬영).
황다녠이 지린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해 주고 있다(2011년 4월 10일 촬영).
황다녠이 미국 스텐퍼드대학에서 학술세미나에 참석했을 때의 사진이다(2011년 12월 5일 촬영).
황다녠이 2013년 중국 지구심부탐측 프로젝트 연차대회에서 찍은 사진이다. 옆에는 그와 연구팀이 개발한 ‘지각(地殼)1호’ 만미터 대륙 과학시추기의 전시 모형이다(2013년 4월 18일 촬영).
황다녠(왼쪽 두번째)과 그의 연구팀 맴버들이 극한 날씨에서 고정익 무인기 실험 비행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이다(2013년 1월 20일 촬영).
황다녠이 숭랴오(松遼)분지 대륙 과학시추 2호정 현장에 있는 모습이다(2014년 8월 8일 촬영).
2017년 1월 8일, 과학의 드넓은 우주에서 찬란한 별 하나가 조용히 사라졌다.
이 곳은 중국 창춘(長春)에 위치한 지린(吉林)대학의 지질관이다. 동료들은 더 이상 항상 촉박하게 오갔던 그의 익숙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학생들은 더 이상 가랑비마냥 부드러운 그의 가르침을 받을 수 없게 되었으며 숙직을 서는 아저씨는 더 이상 507호실 창 밖으로 흘러나오는 불빛을 볼 수 없게 되었다…
7년 전의 어느 겨울날, 그가 날리는 눈꽃을 무릎쓰고 영국에서 귀국하여 씩씩한 발걸음으로 이 곳에 왔을 때, 그의 행적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한 외신은 “그의 귀국은 당시 모 나라의 항공모함 훈련 편대를 뒤로 100해리 물러나게 했다”고 보도해다.
7년 전, 이 과학의 성전에서 그는 고속도로 운동하는 회전자처럼 과학기술로 나라를 떨쳐 일으킨다는 메인 축을 둘러싸고 하나 또 하나의 첨단 과학기술 프로젝트를 세계의 정상으로, 그의 생명이 58세에서 갑자기 뚝 멈춰질 때까지 밀고 나갔다.
그가 바로 국제에서도 유명한 전략과학가 황다녠(黃大年)이다.
원문 출처:신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