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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화장실엔 남녀 표시 없다

[기타] | 발행시간: 2017.07.21일 07:02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은 여름이 아름다운 도시다. 멜라렌 호수 위 14개의 섬으로 이뤄진 스톡홀름은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에는 찬란하게 빛난다. 발걸음을 조금만 움직이면 파란 하늘과 맞닿아 새파랗게 물든 호수가 중세의 건물들과 조화를 이룬다. 섬들을 잇는 다리를 건널 때마다 발트해로 향하는 호수의 물결은 사람들을 들뜨게 해 유럽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도시가 된다.

그런데 스톡홀름에 익숙하지 않은 여행자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게 있다. 화장실이다. 커피숍이나 호텔 공중화장실 앞에서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모르고 주춤거리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한국이나 중국 등 아시아권 여행자들은 대부분이 그렇다. 어렵게 화장실을 찾았지만 도대체 어디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인가.

스웨덴의 거의 모든 화장실에는 남녀 표시가 모호하다. 남녀 표시가 아예 없거나 같이 돼 있다. 심지어는 남녀는 물론 장애인 표시도 함께 돼 있고, 흔치 않지만 아기 표시까지 된 경우도 있다. 즉, 스톡홀름을 비롯해 스웨덴에는 화장실의 남녀 표시가 없는 것이다.

“남녀 같이 쓰는 게 왜 이상한가”

이런 화장실을 ‘성 중립 화장실(Gender neutral restroom)’이라고 한다. 남자와 여자로 구분된 전통적인 성별 구분에서 벗어난 사람들, 흔히 성 소수자라고 부르는 ‘중립 정체성 성 소유자’들에 대한 배려인 것이다. 배려라는 것도 어폐가 있다. 그들을 배려해 그들을 위한 화장실 공간을 따로 만드는 게 아니다. 그냥 모든 사람들이 함께 화장실을 사용하다 보면 중립 성 소유자나 장애인, 그 누구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구분되지 않는다는 개념이다.

생물학적으로 남성의 성을 지니고 태어났지만 실제 성 정체성은 여성인 사람이 남성의 화장실에 들어가는 것은, 말 그대로 여성이 남성의 화장실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고충이다. 성적 모욕감이 생길 수 있는 문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위한 별도의 화장실을 만든다는 것은, 그들을 다른 성 정체성의 사람들과 구분을 지어놓는 게 된다. 배려라고 하지만 ‘구분’이다. 그런 ‘구분’에 대한 불쾌감은 장애인들도 많이 겪는 문제다. 그래서 아예 화장실에 성 구분은 물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도 두지 않는 것이다.

성 중립 화장실에 대한 논의는 미국에서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시카고는 이미 일부 대학 내 화장실이나 몇몇 카페에 성 중립 화장실을 설치했다. 영국도 성 중립 화장실이 늘어가는 추세다. 보수 기독교계의 반대가 심하고, 성 범죄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인권단체의 주도하에 설치가 늘어가고 있다. 프랑스나 네덜란드는 영국보다 활발하다. 프랑스 파리의 경우 얼마 전 르몽드가 비공식 자료라고 전제했지만 전체 화장실의 30% 이상이 성 중립 화장실이라고 보도했다.

그런데 스웨덴은 전체 화장실의 70% 이상이 성 중립 화장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성 중립 화장실에 대한 논의가 가장 먼저 이뤄졌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스웨덴이 아주 일찍부터 성 정체성에 대해 특별히 진보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게이나 트랜스젠더에 대해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이 높았다. 당연히 그들의 인권에 대해서도 큰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스웨덴에 성 중립 화장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2004년 전후로 추측된다.

성 중립 화장실에 대해 스웨덴 시민은 특별한 반응이 없다. 그냥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톡홀름 시내 중심가 NK 백화점 건너편 스타벅스 화장실 줄에서 만난 스톡홀름 왕립공과대학(KTH) 재학생 스테판 보른은 ‘남녀가 같은 화장실을 사용하면 이상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질문 자체가 이상하다”고 말했다. 그는 “모르는 남녀가 함께 들어가는 건 이상할지 몰라도 화장실 안에는 나 혼자 있는데 그게 왜 이상하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스톡홀름 중심가인 한 고급 호텔 화장실에서 만난 20대 여성인 알레한드라 야콥손은 ‘방금 남성이 사용했던 변기를 사용하는 게 불쾌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어렸을 때 집에서도 늘 아빠나 오빠, 남동생이 사용한 변기를 사용했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다”며 “화장실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하지 화장실을 남녀가 같이 쓰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역시 한국인들의 대답은 달랐다. 스웨덴에 워킹 홀리데이로 온 지 7개월째인 여성 강아무개씨는 “아직도 남성이 사용하고 나온 화장실에 들어가는 게 찜찜하다”고 말했다. 스톡홀름대학에 교환학생으로 온 한 남학생은 “여성이 나오면서 나를 쳐다보는 눈길에 마치 몰래 훔쳐보기라도 하다 걸린 듯 죄지은 느낌이 든다”고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반면 아기를 자주 돌보는 주재원 ‘라테 파파(한 손에 카페라테를 들고 다른 손으로 유모차를 끄는 아빠,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아빠를 뜻하는 신조어)’ 김영환씨는 “한국 같으면 기저귀를 갈기 위해 아기 테이블이 있는 여자 화장실 앞에서 안절부절못해야 하는데, 여기서는 그러지 않아도 돼서 좋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커밍아웃을 하고 스웨덴으로 유학을 온 전아무개씨는 “그동안 한국에서 불가피했지만 얼마나 엄청난 성적 학대를 당했는지 실감하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性 중립 인칭대명사 ‘Hen’ 사전 등재

스웨덴은 2015년 3월 ‘스웨덴어 공식 사전(SAOL)’에 성 중립 인칭대명사인 ‘Hen’을 정식으로 추가했다. 우리로 따지면 국립국어원 성격의 스웨덴 학술원은 남성 3인칭 대명사인 ‘Han’과 여성 3인칭 대명사인 ‘Hon’과는 별도로 중립 성 3인칭 대명사인 ‘Hen’을 사전에 넣은 것이다. 당시 학술원은 “‘Hen’은 성별을 밝히지 않는 사람, 성별이 확인되지 않는 사람, 성 전환 수술을 한 사람들에 대한 인칭대명사로 사용할 수 있다”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최근 한국에서도 청담동과 신사동을 중심으로 성 중립 화장실의 발걸음이 시작됐다. 하지만 아직 화장실 자체를 함께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세면대를 사용하는 수준이다. 지난해 ‘강남역 공중화장실 묻지마 살인 사건’ 이후 남녀 공동 화장실은 오히려 여성 인권의 침해로 여겨지기도 하니 스웨덴의 경우와 비교하면 거꾸로 가는 셈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저술가 시몬 드 보봐르가 1949년 《제2의 성》을 발표한 지 50여 년 만에 ‘제3의 성’을 보편화하고 있는 스웨덴의 ‘성 중립 화장실’은 시사하는 바가 충분하다. 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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