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죄법 시행에 반발하는 시민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EPA
[한꺼풀 벗긴 글로벌 이슈-43] 지난 11일부터 일본에서 '테러 등 준비죄'를 신설한 개정 조직범죄처벌법이 전격 시행됐다. '공모죄법'으로 불리는 이 법은 범죄를 실행하지 않고 사전 모의만 해도 처벌하도록 돼 있어 일본이 들끓고 있다. 일반적으로 정치에 관심이 적은 것으로 알려진 일본 국민도 거리로 나와 정부를 향해 적극적으로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자신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당하는 것에 대한 불만과 더불어 정부의 법안 통과 강행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일본의 형법 체계를 크게 바꿔놓은 이 법을 정부는 왜 강행했으며 국민 사이에서 반발이 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공모죄가 어떤 죄인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개정 조직범죄처벌법에서는 공모죄를 "테러 조직이나 폭력단 등 '조직적 범죄집단'이 납치, 약물 밀수 등 중대한 범죄를 계획해 조직의 일원이 자금 또는 물품을 소에 넣으려 했거나 범행 장소를 방문하는 등 범죄를 준비하는 행위가 발각될 경우 계획에 가담한 전원을 처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조직적범죄집단'에는 범죄를 일으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테러조직, 폭력단, 약물밀매조직, 입금사기집단 등이 포함돼 국가적 위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실 이 법을 추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3년 국제조직범죄방지조약이 일본 국회에서 여야가 승인하면서 조약이 요구하는 국내법 개정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국제적조직범죄방지조약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중대 범죄를 일으키는 것에 합의한 경우에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정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즉각 공모죄를 포함한 법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심의는 진행되지 않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을에는 중의원이 해산하면서 결국 법안은 폐기됐다.
정부는 이듬해 다시 국회에 이 법안을 제출해 2005년 처음으로 국회 심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당시 총리였던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우정 민영화를 밀어붙여 또다시 중의원이 해산되면서 심의도 자연스레 중단됐다.
이후 2005년 특별국회가 열리면서 본격적으로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당시 법안에서 처벌 대상을 단순히 '단체'로 명기해 범죄 실행을 위한 합의가 있을 경우 처벌하도록 했다. 이때 '공모'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대상 범죄는 4년 이상의 징역·금고형으로 무려 600개에 달했다. 논의 당시 여야 모두 "시민단체, 노동조합도 대상이 된다" "술집에서 맘에 안 드는 상사를 때리는 걸 합의해도 처벌당한다" 등의 반대 이유를 제기하면서 결국 처벌 대상을 '조직적범죄집단'에 한정하기로 했다. 이후 논의가 구체화되면서 수정안까지 마련됐지만 결국 결렬됐고 2008년 중의원이 해산하면서 폐기됐다.
우여곡절을 거듭하다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은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가 확정되면서부터다. 일본 정부는 지난 3월 '공모죄' 명칭이 부정적인 인상을 준다는 이유로 '테러 등 준비법'으로 이름을 바꾸고 일부 구성 요건을 수정해 국회에 제출했다. 현행법으로는 국제조직범죄방지조약의 체결 요건을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자민당과 연립여당을 구성하는 공명당이 우려를 표명하면서 대상 범죄를 277개로 줄였다.
얼핏 보기에는 장기적인 논의를 거치면서 문제 요소를 줄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처벌 대상인 '조직적범죄집단'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집단도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로 바뀔 경우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당초 우려됐던 시민단체 등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이에 야당은 "단체가 변모하는지 판단하기 위해 일반인도 수사 대상에 포함시킬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사생활 침해를 우려한 이의 제기였다. 제1야당인 민진당은 '테러 등 준비법'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심신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며 현행법을 기초로 하더라도 충분히 국제조직범죄방지조약을 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제시대 치안유지법으로 체포됐던 시인 윤동주 /사진=연합뉴스
테러대책법안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 '치안유지법'과 비슷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도 처벌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지극히 유사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 법안을 통과시켜 제국주의 시대로 회귀하려 한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당시 치안유지법은 일제가 시인 윤동주를 체포할 때 적용한 것으로 우리에게도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박대의 국제부 기자]
출처: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