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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아, 착한 어른이 되여 고맙다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7.07.26일 10:30

1987년 졸업을 앞두고 길림시 풍만수력발전소에서.

세상에 자기의 제자들을 사랑하지 않는 스승이 없고 또 자기의 스승을 존중하지 않는 제자도 없으리라.

교원생활 29년을 마치고 이미 10년전에 퇴직한 나에게 30년전의 제자 황해경이 전화를 걸어온 것은 3년전 가을의 어느날이였다. “선생님, 아무쪼록 로년에 신체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선생님을 꼭 모시고 한국에서 동창모임을 갖겠습니다…”

“너희들의 목소리만 들어도 감사하다.”며 전화를 놓고 ‘외국에서 동창모임을 조직하기가 쉽지 않겠는데…’ 하고 생각했는데 금년 4월 5일에 당년의 반장인 최철송한테서 5월 28일로 동창모임을 하기로 하였으니 출국수속을 하라는 소식이 왔다.

1984년 8월 나는 돈화시 관지조선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는데 학교지도부의 배치에 따라 초중1학년 담임을 맡게 되였다. 당시 나는 30대 중반이였는데 교육사업에는 풋내기나 다름없어 힘은 왕성하나 미숙한 점들이 많았다. 학생들을 흡인할 수 있는 덕목이 부족했고 학급을 훌륭히 이끌수 있는 리더의 역할에도 손색이 많았다. 다행이 규모가 작은 학교라 학생이 21명밖에 안되였고 농촌애들이라 순박한 성품에 셈이 빨리 든 애들이 다수였고 큰 말썽꾸러기들은 별로 없었다.

소학교시절부터 학습성적이 좋고 줄곧 반장을 해온 최철송과 부지런하고 활약적이며 리더십이 강한 황해경을 반장과 부반장으로 임명하고 학생들끼리 학급을 관리하는 모식으로 학급을 운영하였는데 다른 학년 애들보다 빨리 성숙하는 모습을 보여 기뻤다. 다른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쫓아 다니면서 교육하고 학부모를 찾아 불만을 호소하는 등 힘들게 담임사업을 하였지만 나는 어쩐지 너무나 쉽게 그들과 3년을 보낸 것 같다.

한번은 서영호, 김창일 등 몇몇 애들이 남몰래 담배를 피운다가 나한테 발견되여 된꾸중을 하였는데 그것이 아마 3년사이에 내가 학생들과 얼굴을 붉힌 유일한 일인 것 같다.

담임교원사업에서 사생간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농촌애들의 시야를 넓혀주고 마음속에 깊은 웅심을 심어주기 위하여 무언가 해야 했는데 당시에는 학교지도부와 학부모들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 그때 농촌학교들에서는 해마다 봄철 모내기방학과 가을철 추수방학을 일주일씩 하였는데 나는 이 절호의 기회를 틀어쥐고 초중1, 2학년 2년동안 학생들을 이끌고 모내기와 추수부업을 조직하였었다.

농촌에서 뼈를 굳히 애들이라 소학교 때부터 집에서 모심기와 벼가을을 한 경험이 있어 일솜씨가 날랬다. 거기에 사생간에 호흡을 맞추어서 일하니 손발이 척척 맞아 떨어졌고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언제나 흥성흥성한 분위기속에서 익살을 부리며 마무리하군 하였다.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2년동안 적지 않은 돈을 모았다.

그외에도 토요일이나 일요일을 리용하여 부근에서 일손을 요구하는데를 찾아 일하였다. 한번은 량식관리소에서 나무 한대를 심는데 10전이라고 해서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일해 100원이란 큰 돈을 번 적도 있었다.

고중시험을 치르고 성적을 기다리는 공백기는 수험생들이 가장 어려운 시기이고 학부모들에게도 시간이 빨리 흐르지 않는 시기일 것이다. 나는 이 시간을 리용하여 학생들을 데리고 길림시로 2박3일의 유람을 떠났다. 학부모와 학교에 손을 내밀지 않아도 되였다. 우리가 자체로 번 돈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차도 못 타본 농촌애들이 전부여서 돈화까지 뻐스를 타고 돈화에서 길림까지 기차를 탔는데 가는 동안 학생애들은 차밖의 풍경에 환호를 했고 나는 그들에게 가이드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때 기차표가 3원 80전이였는데 길림까지 가는데 세시간 반이나 걸렸다.

길림에 도착하여 흥성려관에 짐을 부리고 첫 날에는 풍만수력발전소, 오호도유람지를 유람하고 둘째날에는 북산공원, 강남공원, 룡담산공원, 육문중학교 등지를 유람하였다. 가는 곳마다 학생들은 농촌에서는 볼수 없었던 풍경에 환호를 했고 력사이야기에 빠져 필기하느라 기념사진을 남기느라 분주하였다. 그 시절 사진값도 만만치 않았는데 우리는 사진값도 모두 자신이 번 돈으로 해결하였다.

이렇게 갈라진 우리가 30년만에 재회한다니 마음은 저도 모르게 쿵쿵 세차게 뛴다. 어떻게 변했을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왔을가? 떠나기 전날 밤을 거의 뜬눈으로 새운 내가 인천공항에 도착한 것은 5월 25일 오후였다.

안양유원지에서 제자들과 함께.

입국수속을 하고 나오니 나의 앞으로 깔끔한 옷차림을 한 날씬한 몸매의 중년녀성이 달려온다. “선생님!”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누군가 마중 나온다고 했는데 앞에 서있는 녀성은 전혀 인상이 없다. ‘누굴가’ 궁금해 하는데 “저 조영금이예요, 오시느라 수고하셨어요.” ‘조영금? 반급에서 키가 제일 크고 활발하던?’ 나는 세월의 무상함을 페부로 느끼면서 그가 몰고 온 자가용에 앉았다.

영금이는 나를 데리고 보석상점에 들어간다. “애들이 이번 동창모임에서 선생님의 선물을 준비하였는데 금가락지로 결정했어요. 지금 금가락지 맞출려구요.” “너희들이 이러면 안돼, 모두 살기가 힘들텐데…” 내가 극구 사양했지만 영금이는 학생들의 성의를 무시하면 안된다고 기어이 내손을 끌어당겨 사이즈를 재이는 것이였다. 사이즈를 맞추어서 2일이 지나야 반지가 만들어진다고 했다. 나는 황해경이가 28일에 동창만회를 조직하지만 나더러 기어이 25일에 도착해야 한다고 부탁한 리유를 알만 하였다.

5월 28일 아침 6시, 5년동안 만나지 못한 동서의 집에서 아침밥을 먹는데 당년의 반장이였던 최철송이가 렌드카를 몰고 나를 모시러 왔다. 지하철을 타면 2천원(한화)이면 될 왕복거리를 10만원이나 소비하면서 온 것이다. 못난 스승을 정중히 모시려는 제자들의 소행에 너무나도 감사했다.

차가 도착한 곳은 영등포의 아하바호텔 파티룸이였다. 보고싶던 반가운 얼굴들이 하나 둘씩 나타났다. 조경란, 강순옥, 허해연, 서영모, 김창일, 리숙녀… 30년전 이성에 어섯눈을 뜨던 학생들이 산전수전 다 겪은 50대를 문턱에 둔 건장한 중년사나이, 중년녀성으로 탈바꿈하였다.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는 제자들도 대견하였지만 이번 모임을 위해 절강성 가흥, 청도, 금주, 사평, 연길에서 불원천리 달려온 제자들의 거동도 눈물겹게 고맙다.

아침 8시가 되자 전원이 도착했고 부반장 황해경이가 려행일정들을 소개하면서 각자 안전에 주의할 것을 당부하였다. 첫 코스로 남산타워, 다음 코스로 경복궁이였는데 우리는 가는 곳마다에서 기념사진을 남기면서 30년전 길림시를 유람하던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점심에는 일식점에서 팀장으로 일하는 김성금제자가 안배하였는데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들은 일본 음식이라기보다 고향맛이 더 났다.

오후에는 민속박물관을 관람하고 우리 일행의 주숙지인 아하바호텔 파티룸으로 돌아왔다. 이 파티룸은 13층 건물의 제일 웃층이였는데 주방, 침실, 샤워실, 랭장고, 식탁이 있을 뿐만 아니라 노래방기계, 삼겹살을 굽는 현대식 난로 등이 구전하게 갖추어져 집체행사를 하기엔 안성맞춤이였다. 경비를 절약할 수 있는 이런 장소를 마련한 제자들의 섬세함과 빈틈없는 생활상이 돋보여 칭찬하였더니 제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나한테서 배운 것이라고 말한다.

제주도에서 제자들과 함께.

제자들이 오가면서 지지고 볶고 굽고 난리법석이더니 금방 풍성한 식탁이 차려졌다. 철송이가 제자들을 대표하여 “초중 졸업 30주년 동창모임에 앞서 우선 초중 3년간 우리의 성장을 위해 로고를 아끼지 않은 담임선생님의 칠순생신을 열렬히 축하합니다.”라고 서두를 떼자 우뢰와 같은 박수가 진동했고 생일단설기에는 일곱개의 초불이 밝혀진다. 생일축하의 노래속에서 손미녀제자가 나의 왼손 무명지에 24K 금반지를 끼워준다. 처음으로 손가락에 끼워지는 반지이기도 하다. 코마루가 찡해났고 눈확이 달아 오른다.

“너희들의 기대치에 턱없이 부족했던 나를 담임이라고 잊지 않고 불러 준 것만 해도 영광스럽고 감사하고 자랑거리인데 이렇게 칠순잔치까지 차려주니 몸둘바를 모르겠다. 돌이켜 보면 내가 교원으로서의 자질을 한층 제고한 것도 너희들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오히려 내가 잘 따라주고 잘 커온 너희들에게 감사를 드려야 하는데…마음은 부자가 된 기분이다.” 나이 칠십에 학생들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발언하기는 처음일 것이다.

29일엔 안양유원지, 30일엔 2박3일 일정으로 제주도려행… 우리는 이렇게 또다시 30년전으로 돌아가 즐거운 유람을 즐기면서 당년의 유치함과 순박함과 인생에 대한 어섯눈을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였다.

제주도 차밭에서 녀학생들과 함께.

서울로 돌아와 일정이 많은 제자들과 아쉽고 기약없는 작별인사를 나누는데 학생때부터 말수 적고 책임감이 강한 강순옥제자가 나의 손에 50만원을 쥐여준다. “이번 제주도행 경비를 제가 관리하였는데 돈이 남았습니다. 선생님께서 보태라고 주신 30만원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을 대신하여 우리를 가르친 과임선생님들을 모시고 술 한잔이라도 대접하라는 뜻입니다..” 인정이 넘치고 면밀주도하고 도량이 넓은 제자들의 처사엔 더 할 말이 없었다.

해경이가 소개해서 안 일이지만 이번 동창모임을 위하여 제자들은 위챗을 통해 토론을 벌였다. 최종 ‘초중시절 3년간 아글타글 벌어서 길림유람을 떠났던 일이 우리들의 일생에 너무나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니 우리도 3년간 준비하여 멋들어진 동창모임을 준비하자’고 약속, 2015년부터 매달 5만원씩 적금하여 이번 모임의 경비를 마련하였다고 한다.

1987년에 관지조선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내가 교직생활 첫 담임을 맡았던 초중학생들이다. 아주 평범한 제자들이다. 그들속에는 명문대학 졸업생도, 신분 높은 고급간부도, 돈과 재산이 많은 재력가도 없다. 그들의 삶의 궤적 역시 너무나도 평범하다. 오직 성실과 착한 마음가짐으로 부지런히 두발로 뛰고 열심히 일하여 무에서 유를 창조하면서 서로 돕고 이끌어주는 생활이 그들의 삶의 전부다.

이번 모임을 통해 나는 그들의 몸에서 옳바른 성장과 인성은 성공보다 값지다는 철리를 가슴깊이 절감하였다. ‘룡’도 아니고 ‘봉’도 아닌 이런 평범한 제자들이 있음으로 하여 나는 더없는 영광을 느끼며 나의 노력이 그들의 성장에 자그마한 영향이라도 주었다는 생각에 늘 안도의 숨을 쉰다.

제자들아, 이제 다시 너희들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는 또 없겠지만 착한 어른이 되여 너무나 고맙다.

/연길시 조양천 김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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