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근평 총서기는, 일심협력으로 아름다운 생활을 창조할것을 내몽골 여러 민족 간부 군중들에게 희망했다. 습근평 총서기는, 평등단결, 호혜조화의 사상을 확고히 수립하고 여러 민족 인민들이 한 마음으로 조국의 변강을 공동 수호하고 아름다운 생활을 공동 창조하길 바랐다.
대초원에는 “강남의 고아가 초원에 진입”한 데로부터 “가장 훌륭한 목장을 우주비행을 위해 선뜻 양보”하기까지 하나 또 하나의 심금을 울리는 민족단결의 미담이 널리 전해지고 있다.
내몽골 실린골맹 쏘니트 좌기에서 살고 있는 퉁가라가는 류창한 몽골어를 구사하고 있는 한족 사람이다. 기자앞에서 그가 가장 많이 언급한것은 보답이였다.
퉁가라가가 언급한 보답의 사연은 50여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56년에서 1961년 사이 상해, 강소, 안휘 등지가 기근에 시달릴 때 고아원의 식량과 분유 등은 매우 결핍했다. 이때 중앙은 내몽골 자치구를 떠올렸다. 1960년, 3000여명의 고아들이 내몽골에 보내졌다. 현지 목축민들은, 이들을 조국의 아이라고 칭하면서 살뜰히 보살폈다. 그해 에든소룬 부부는 2살 남짓한 안휘적 녀자애를 입양하고 그에게 퉁가라가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목축민의 가정형편은 부유하지 못했다. 그러나 양부모는 퉁라가가 행복하게 성장할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어른이 된후 퉁라가는 몽골족 남성과 혼인하여 양부모를 공동 부양하고 있다.
오늘날 초원의 어머니가 키워낸 조국의 아이들은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피와 땀으로 초원과 인민의 은덕에 보답하고 있다. 퉁가라가와 남편은 몽골족 아이 한명을 입양했다. 퉁가라가는 평소 부모님들로부터 물려받은 민족복장 봉제 수공기술을 무료로 목축민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최근 몇년래 퉁가라가는 몇몇 내지 고아들과 함께 국가의 아이 애심협회를 성립했다. 지금까지 협회는 이미 10여명의 소수민족 빈곤 대학생들을 도와 학업을 완성했다.
습근평 총서기는, 여러 민족 간부 군중들은 민족단결이 없다면 어느 민족도 좋은 생활을 해나갈수 없다는 도리를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내몽골에서 여러 민족 군중들은 아름다운 생활과 국가발전을 위하여 한마음 한뜻으로 노력하고 있다.
알샤맹 어진기 보르울라는 저명한 동풍 우주비행센터가 위치한 곳이다. 1958년, 우주비행 건설을 지원하기 위해 나렌거르러 일가를 망라한 1300여명의 몽골족 투르베트인들은 선조들이 수백년간 살아온 비옥한 초원을 떠났다.
조국 국방과 우주비행사업을 위해 거대한 희생을 한 몽골족 목축민들은 각급정부, 사회각계, 각 민족의 도움의 손길을 받아 왔다. 특히 18차 당대회이래 날로 많은 민생공사가 가동함에 따라 목축민들은 의료, 교육으로부터 주택에 이르기까지 모두 매우 큰 개선을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