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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억 44]연변의 첫 녀자 뜨락또르 운전사로 되여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7.10.09일 13:36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44)

◇김정희 구술 / 김삼철 대필


김정희할머니

1959년 봄, 나는 21세 나이로 연변의 첫 녀자 뜨락또르 운전사로 되였습니다. 그 시절 뜨락또르를 몰고 연변대지를 누비며 흙파도 일으키던 정경을 떠올리면 지금도 내 가슴이 뿌듯해납니다.

지금 내 나이 80고개에 올라서서 허리 휘여진 꼬부랑 로친이 되였어도 처음 ‘동방홍’표 뜨락또르를 몰고 농촌에 내려가 많은 농민들의 환호성 속에서 밭을 갈던 그 나날들은 내 평생에 잊을 수 없습니다.

마을마다에서 꽃다발을 안겨주며 기뻐하던 농민들의 그 모습, 뜨락또르에 달린 다섯개 보습으로 밭을 갈아엎는 것을 보고는 “철소가 맥이 좋군!” 하며 뜨락또르를 어루만지며 좋아하던 감농군들의 모습들은 지금도 내 눈앞에 영화의 화면처럼 생생합니다.

태동마을의 70이 다된 늙은이가 백발수염을 휘날리며 지팽이에 몸을 의지하여 논머리에 나와서는 내 손을 붙잡고 “새기동무 수고하오. 내 죽기 전에 이런 좋은 세상 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소. 내 지금 당장 죽는다 해도 한이 없소. 공산당과 모주석이 령도를 잘한 덕이지.” 하며 반가워하시던 그 가슴 뜨겁던 정경은 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

나는 1958년 연길현(지금 룡정시) 태양구 회령촌(지금 연길시 조양천진 유신촌)에서 추천받아 연길에 갓 설립된 연변합작간부학교 녀자 뜨락또르 운전사 양성 강습반에 참가하였습니다. 학원은 연변 각지에서 온 18명 녀자들이였는데 마지막까지 학습을 견지하고 운전사로 되여 뜨락또르를 운전한 사람은 나 하나 뿐이였습니다.

대부분 녀자들은 체질에 잘 맞지 않거나 결혼 등 원인으로 중퇴하여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일부 녀자들은 키가 작고 다리가 짧아 클러치(离合器) 조작이 제대로 되지 않아 그만둔 분들도 있었습니다.

나는 165센치메터의 키에 146근의 체중을 가지고 있어 웬간한 남성 청년들도 나를 꺼려하였습니다. 나는 반년 학습을 마치고 면허증을 발급받았습니다. 초중도 졸업하지 못한 나의 문화정도로 뜨락또르 운전기술을 배우기란 여간 힘들지 않았지만 나는 이를 사려물고 밤늦도록까지 학습하면서 배운 기술을 제때에 소화하였습니다.

연변 첫 녀자 뜨락또르 운전기사 양성 강습반에서의 김정희(앞줄 왼쪽 두번째)

1959년 봄 나는 처음으로 ‘동방홍’표 철소를 몰고 농촌에 나가 논과 밭을 닥치는 대로 갈아엎었습니다. 당시 나는 연길현(룡정시) 조양천 뜨락또르 임경소에 배치받아 태동, 교동, 합성, 근로, 룡성, 룡포 등지의 수한전 밭갈이를 책임졌습니다.

쌍태머리 치렁치렁한 처녀가 뜨락또르를 모니깐 구경군들이 더욱 많은 것 같았습니다. 총각들은 뜨락또르가 밭갈이하는 구경보다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더 뜨거웠습니다. 뭐 “몸집이 대단히 좋구만”, “웬간한 남자는 안되겠는데…” 하면서 롱담 절반 진담 절반으로 나를 놀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난 그런 비꼬는 롱담도 그리 싫지는 않았습니다. 같은 청년들이 서로 놀림을 주고받는 것도 응당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입니다.

처음 뜨락또르를 운전하니깐 농민들은 나를 처녀운전수라고 매우 아끼고 사랑하였습니다. 날씨가 추울 때는 보온병에 뜨거운 물도 가져다주었으며 점심보자기도 가끔씩 가져다주며 쉬염쉬염 일하라고 행복한 충고도 주었습니다. 그러나 뜨락또르일은 항상 딸리는 일인지라 뜨락또르 휴식 외에는 계속 일해야 하기 때문에 밤을 새우며 일하는 것이 보편적이였습니다. 어떤 날에는 하루 열두시간 넘게 일하다 나니 세수조차 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뜨락또르 운전은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였습니다.

교동에서 봄갈이할 때였습니다. 정상적으로 돌아가던 ‘동방홍’ 뜨락또르가 그만 꿰도가 벗겨져 멈춰섰습니다. 보아하니 꿰도를 이어주는 철심이 빠졌던 것입니다. 나는 차에서 내려 뜨락또르 밑에 들어가 빠진 철심을 찾아서 꿰도를 잇느라고 망치질하였는데 그만 망치가 빗겨맞는 통에 철심 대가리 철이 부스러떨어져 내 눈에 와 맞았습니다. 그 찰나 눈에서 불이 번쩍 하더니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병원에 가보였더니 예리한 철부스러기가 눈동자 망막을 다친 것이였습니다. 결국은 한쪽 눈 시력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나는 눈 수술 후 계속 뜨락또르를 운전하였습니다.

‘뤄퉈’표 고무바퀴 뜨락또르를 운전하던 때의 김정희(왼쪽)

그 후 나는 또 쏘련제 ‘뤄퉈’표 28마력짜리 고무바퀴 뜨락또르 운전을 배워 몰았습니다. 하루는 밭머리에서 뜨락또르를 돌려세울 때 그만 부주의로 고압전선대 벌림줄에 배기관이 걸려서 떨어졌습니다. 배기구멍에서 뿜겨져나오는 새까만 디젤유 연기는 삽시에 나의 몸을 덮쳤습니다. 이 의외의 봉변에 나는 놀라서 울음보를 터쳤습니다.

나는 큰 손실을 빚어냈다고 근심하면서 숨이 한줌이 되여서 뜨락또르 대가리만 몰고 부랴부랴 조양천 뜨락또르 임경소로 왔습니다. 기술원들은 사연을 듣더니 모두들 배를 끌어안고 웃어대였습니다. “그런 일에 울기는, 다시 용접하여 붙여놓으면 아무 일 없다.” 기술원들은 나를 위안해주며 떨어진 배기관을 원 상태로 복구하여 인차 일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이러한 사고들은 많고 많았습니다.

내가 연변의 첫 녀자 뜨락또르 운전수로 되여 8년간 뜨락또르를 몰고 연변땅을 갈아엎던 그 시절에 나는 각지 농민들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 속에서 많이 성장했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으며 행복의 진가를 알게 되였습니다. 임신 6개월까지 뜨락또르를 몰면서 연변 각지의 농민들과 떨어질 수 없는 인연을 맺었습니다. 이 기회에 늦게나마 고마운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유선방송소리 우렁차게 울려퍼지는 전야에서 많은 농민들의 환대를 받으며 연변의 첫 녀자 뜨락또르 운전사의 영예를 빛내이며 흙물결 일궈가던 그 시절은 내 인생의 가장 화려했던 시기이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이였습니다.

내 지금 퇴직하여 연길시 북산가의 화려한 아빠트에서 령감과 같이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지만 항상 처녀시절 연변의 첫 녀자 뜨락또르 운전기사로 되여 농촌에 가서 밭을 갈던 그 가슴 벅찼던 시절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이따금씩 60여년 전 내가 뜨락또르 운전사 시절 찍은 사진들을 꺼내보며 아름다운 추억 속에 취해있군 합니다 .

그 시절이 더없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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