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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묵은 한풀이에 나훈아, 관객과 함께 울었다

[기타] | 발행시간: 2017.11.04일 08:06

11년 묵은 한(恨)풀이에 67세 가객(歌客)도 관객과 함께 울었다. 지난 3일 열린 나훈아의 복귀 공연은 참고 참아왔던 한을 풀어내는 과정이었다. "남 앞에서 우는 걸 정말 싫어한다"던 나훈아도 노래 도중 울컥한 듯 수시로 돌아섰고 "괜찮아"를 외치던 관객도 이내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나훈아를 수식하는 단어는 수없이 많다. 가왕(歌王)에서부터 가성(歌聖), 트로트의 황제, 불세출의 트로트 가수. 이날 나훈아는 힘 있는 가창력과 구수한 기교, 남성적인 무대 매너의 건재함을 과시하며 아직 이들 수식어가 유효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공연의 시작은 동요 '반달'이었다. 무대 중간 우뚝 솟은 기둥에 올라앉아 기타를 연주하며 나훈아가 등장하자, 3500여 객석 곳곳에서 "오빠" 소리와 함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관객 대부분이 50·60대였지만 함성만큼은 어느 아이돌 팬클럽 못지않았다. 하지만 이들의 기대와 달리 공연 시작 후 40분간 나훈아는 제대로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무대 정면에 대형 스크린과 양옆에 중형 스크린이 있었지만, 노래에 맞춰 준비된 영상만 뜰 뿐 좀처럼 나훈아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지 않았다. 나훈아 또한 어두운 조명에서 노래만 불렀을 뿐 시원스레 모습을 드러내지도, 말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곡과 곡 사이마다 객석 곳곳에서 "오빠 얼굴이 하나도 안 보여요"라는 외침이 터져 나온 이유였다.

'아무리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라지만, 지난 11년간의 공백이 너무도 컸던 것일까.' 적지 않은 이들이 이런 생각을 할 때쯤, 8번째 곡인 '영영'이 흘러나왔다. "잊으라 했는데 잊어 달라 했는데, 그런데도 아직 나는 너를 잊지 못하네"란 첫 소절을 구성지게 부르는 나훈아의 얼굴이 순간 무대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짧은 백발의 머리카락과 텁수룩한 흰색 수염이 땀에 흠뻑 젖은 모습이었다. 노래를 부를 때 앞니를 보이며 활짝 웃다 아랫입술을 깨무는 특유의 습관도 여전했고, 이 모습에 반가운 듯 관객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한풀이'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이어지는 노래 '예끼, 이 사람아'를 통해 그는 조금씩 마음속 얘기를 꺼내놨다. 자막을 통해 나훈아는 '무대를 준비하며 제일 걱정이 됐던 게 첫인사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였다. 입이 떨어지지 않아 노래로 만들었다'고 말한 뒤 이어 미발표곡 '예끼, 이 사람아'를 불렀다. '이 몹쓸 사람아 오랜만일세, 꿈 찾아간다더니 꿈은 찾았는가' 등 가사로 구성된 1절은 관객이 나훈아에게 해주는 이야기였고, '적지 않은 이 나이에 힘든 세월 겪으면서 혼자 울고 웃으며 인생을 또다시 배웠습니다'고 읊는 2절은 본인이 관객에게 하는 이야기였다. 노래가 끝나자 객석에선 "괜찮아"하는 외침이 한동안 이어졌다.

'예끼, 이 사람아' 가사

1절

어디 갔다 이제 왔니, 어디에서 무얼 했니,

뭣하느라 이제 왔어, 그렇게까지도 무심했니.

소식일랑 주지 않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코빼기도 볼 수 없고, 이 몹쓸 사람아, 오랜만일세.

꿈 찾아 간다더니, 그래 꿈은 찾았는가,

소문에는 아프다던데, 걱정했잖나 예끼 이 사람아.

2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아무 말도 못합니다. 입이 열 개라도 말 못해.

적지 않은 이 나이에, 힘든 세월 겪으면서,

혼자 울고 웃으면서, 인생을 또 다시 배웠습니다.

걱정끼쳐서 죄송합니다, 할 말은 많아도, 말 못합니다.

"얼굴 찡그리고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습니다. 확실히 제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죄송하기도 하고 말로 할 수 없습니다." 11년 만에 무대 위에서 나훈아가 처음 전한 말이었다. 이어 나훈아는 "나는 노래를 11년 굶었다. 오늘 여러분이 계속하자고 하면 밤새도록 할 자신도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나훈아는 "지난 11년간 보따리 하나 메고 지구를 5바퀴 돌았다. 한 번은 남미에 가려고 미국에 들렀는데, 우연히 한국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사나이 눈물'을 듣고 펑펑 울었던 적이 있다"며 '예끼, 이 사람아'에 이어 '사나이 눈물'을 불렀다. '사나이 눈물'을 부르던 나훈아는 지난 11년 세월이 생각난 듯 수시로 뒤돌아섰고, 그때마다 관객들은 나훈아를 대신해 노래를 불렀다. 가수는 한 명이었지만 노래는 3500여명이 불렀다. 후반부엔 관객들도 노래를 대신 부르지 못했다. 나훈아가 눈시울을 붉힐 때 상당수 관객도 울컥한 탓이다.

이때까지가 지난 상처를 드러내는 과정이었다면, 공연 후반부 때 부른 '공' 이후는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었다. 한 손에 부채를 들고 한복을 입고 나온 나훈아는 '살다 보면 알게 되지 일러주지 않아도, 너나 나나 모두 다 어리석다는 것을'로 시작하는 노래 '공'을 맛깔나게 불렀다. '띠리 띠리'라는 가사가 반복되는 후렴구 부분에선 노래를 끊고 "여러분 우짜든가 마음 독하게 먹고 행복해야 합니다. 백 년도 못 살면서 천 년을 살 것처럼 하는데, 죽는 사람들 하나같이 '내가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았나' 말합니다"라고 말했다. 나훈아가 어떤 생각을 해왔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공' 다음으로는 지나간 세월을 서글퍼하는 가사를 담은 노래 '모래시계', '청춘을 돌려다오', '고장 난 벽시계'가 이어졌다. 하지만 노래 말미에 무대 위를 힘껏 뛰는 나훈아에 맞춰 폭죽을 터뜨리는 퍼포먼스와 그가 입은 옷(찢어진 청바지와 흰 나시)이 가사와는 반대로 '67세의 나이에도 나는 끄떡없다'는 당당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날 나훈아는 지난 7월 발매한 신곡 7곡 중 6곡을 포함해 2시간 동안 총 25곡을 불렀다. 마지막 곡 '내 청춘'을 부른 뒤에는 1분간 무릎을 꿇고 객석을 바라보다 큰절을 올렸다. 관객들은 나훈아가 무대를 떠난 뒤에도 아쉬운 듯 한동안 자리를 지키기도 했다.

이번 공연은 나훈아가 2006년 12월 40주년 공연 이후 처음 가진 무대다. 지난 9월 서울 대구 부산 공연 티켓 3만1500장이 10분도 안 돼 전석 매진 됐을 만큼 관심이 높았다. 이날 공연에는 스태프 100여명, 무용단과 합창단 50여명이 투입됐으며, 연출·기획은 나훈아가 직접 맡았다. 레이저와 조명·영상·안개, 화염 장치와 폭죽, 각종 소품 등이 어우러진 무대는 나훈아가 공연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한눈에 보여줬다.

'신체 훼손설' 등 지독한 루머를 반박하려 2008년 1월 가진 기자회견 때 나훈아는 "가수는 꿈을 파는 사람이다. 꿈을 팔려면 꿈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꿈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그가 지난 7월 새로 발매한 앨범과 이번 공연의 이름이 'Dream Again'이다. 꿈을 잃었다고 공언한 지 9년, 한 시대를 풍미했던 트로트 황제 나훈아가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11년 묵은 한풀이에 나훈아, 관객과 함께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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