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 '밥벌이 안되는 예술’을 개인이 일생동안 끌고 가는 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사회가정책적으로 정리를 해야 그게수용이 될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다 대중의 안목이 높아지고 관심이 많아져야 한다. 아무리 에술을 해도 사람들이 관심 없으면 의미가 없다.
12일, 퇴직 후에도 창작을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리부일(75살) 화백, 그의 틈새 시간을 비집고 가진 인터뷰 내내 칠순을 훌쩍 넘긴 그는 여전히 꿈을 이야기 했고 성장과 발전 그리고 ‘우리 것’을 그린다고 했다.
“숨을 쉬고 있는 한 그림은 내게 희망이다.”
일찍 성미술계로부터 ‘유화의 고향’이라고 일컬어지는 우리 지역, 리 화백은 그 시대의 대표적인 화가로 많은 예술작품을 창작했지만 미술시장이나 언론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은 대중과 친숙한 편이 아니다. 우리 미술의 력사를 오롯이 살아낸 산 증인인 그는 여전히 건재함을 간직한 붓끝으로 세상사 찌든 풍경조차도 특별함으로 바꿔놓는다. 그는 일상적인 소재를 순수하고 소박하게 그려냈다. 가족과 나무, 아이, 새 등 평범한 이미지들이 화면 속에 소박하고 정감 있게 표현된 그림은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따뜻해진다.
룡정이 고향인 리 화백은 어려서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여 온 장래가 촉망되는 미술학도였다. 지금도 그림이 마냥 좋아서 시작했던 마음은 같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연변예술학원을 미술학부를 지원을 했는데 실력을 인정받으며 합격했고 또 학교의 추천으로 중앙민족학원 미술학부에 입학하게 된다. 그렇게 꾸준히 그림그리기를 쉬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칠순을 훌쩍 넘겼는데 또 돌아보니 아직 갈 길이 멀단 생각이 든다고 리부일 화백은 털어놓는다.
다 같이 어려웠고 평화롭지 못했던 그 시절, 같이 꿈을 꾸던 동료들이 ‘밥벌이’를 위해 하나 둘씩 떠날 때도 리부일 화백은 붓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나이 들면 기억력이 감퇴한다는 데 난 아직도 예전 일이 생생하다. 고단한 세월을 보내면서도 그림을 그릴 때 행복했다. 지금도 가장 행복한 순간은 캔버스 앞에 섰는 데 그림이 내 생각대로 풀릴 때다.”
고개를 떨구고 잠시 침묵하더니 지금은 서로 자주 만나지를 못하지만 그 어려운 시절을 함께 했던 동료들과 맥주 한잔을 마셨던 이야기도 들려주고 아무개는 세살 아래, 또 누구는 동갑이라며 “참 좋은 화가들”이라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예술이 돈과 명예를 얻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였던 시절을 공유한 동료들에 대한 그림움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연변대학 예술학원 미술학부에서 학부주임, 연구생 지도교수로 근무하다 퇴직한 그는 “직장을 다닐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그림은 나의 평생 친구이자 인식처 같은 역할을 해왔다”고 말한다.
“내 그림은 여전히 미완성이다”
60년을 넘게 한길을 우직하게 걸어온 리 화백은 그만의 화법으로 우리 미술의 경지를 한 단계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내 그림은 여전히 미완성이다.”라고 말하는 리 화백은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혼자고민하고 있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란다.
“작가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 순간 그 직업을 잃게 된다. 죽을 때까지 창작하지 않으면 작가가 아닌거다. 화가는 참 힘든 직업이다. 기술자는 전기밥솥 같은거 하나 개발해도 평생 먹고 사는 데 작가는 평생 창작해도 잘 못살아. 그러다 좋은 작품을 남기면 그때야 추앙받는 거고.”
리 화백의 말대로 그림은 항상 새로운 것을 얘기하고 창작해야 하니 언제나 미완성인 것들이 있다. 그에게 지금껏 그린 것 중에 어느 그림이 제일 좋으냐고 묻는 데 한참을 고민하던 그가 솔직히 대답을 못하겠다고 털어놓는다.
“아직도 가는 중이고 계속 그냥 그림을 그리는거죠”라고 말할 뿐이다.
“지속적으로 힘을 실어줘야 예술이 발전한다”
자신의 일생을 건 작업인 만큼 할말도 많다.
리 화백은 “좀 더 우리의 문화를 육성하고 대접해주는 환경이 주어졌으면 좋겠다. 오랜 시간을 들여 예술가가 최대한 자신의 공을 들일 수 있도록 지원해줄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밥벌이 안되는 예술’을 개인이 일생동안 끌고 가는 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사회가 정책적으로 정리를 해야 그게 수용이 될수 있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힘을 실어줘야 예술이 발전한다. 그리고 거기에다 대중의 안목이 높아지고 관심이 많아져야 한다. 아무리 에술을 해도 사람들이 관심 없으면 의미가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어쩌면 지금부터 새로운 시작이라고 자신의 그림 인생을 표현한 리 화백은 “일생을 걸고 하는 작업에 나이는 중요치 않다.
“나의 시간, 나만의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아끼고 간직하려 노력했다. 내 그림작업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리부일 화백이 내미는 자신의 략력에 이렇게 적었듯이 그의 일생을 관통한 화두는 오직 그림이다.
헤여지기 전 악수를 청하니 손힘이 어찌나 센지 뼈를 으스러 뜨릴 기세다. 그 좋아하는 그림을 놓고 싶지 않아 누구보다 자기 관리에 했을 면모가 엿보였다. 요즘도 날마다 자신의 작업실에서 붓을 잡는 화가, 그 존재가 빛나는 것은 인기와 작품값이 아니라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과의 싸움을 꿋꿋하게 치러낸 결과이다.
/연변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