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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 ‘홍범도 장군 공적’ 봉오동 전장서 확인하다

[온바오] | 발행시간: 2018.01.05일 16:46

중국 목단강지역 독립운동유지 보존회 | 노경래 회장

1991년 2차 중국기행길, 우리 일행은 중-러의 변경인 방천의 전망대 위에서 중국 국경이 끝나는 지점인 토계비와 하산의 러시아 해관과 두만강 하구를 바라보았다. 하산역은 북한의 청진·나진에서 시베리아의 부동항인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롭스크를 거쳐 모스크바를 잇는 시베리아 철도의 출발지점이다. 곧 근래 남쪽에서 부설한 동해철도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러시아 해관 건물 건너편에 두만강 철교(지금은 조러우의교)가 가로놓여 있었다. 두만강 철교 바깥에 아스라이 단애와 동해가 보였는데 바로 그곳에 녹둔도(鹿屯島)가 있다.

녹둔도는 삼각주로 이루어진 섬으로, 옛 기록에는 섬 둘레 2리, 수면에서 10자쯤 되는 섬이라 했는데 여의도의 두배쯤 된다는 기록도 보인다. 세종 시기 6진을 개척한 뒤 녹둔도라 부르면서 군사를 주둔시켜 전진기지로 삼았다. 처음에는 군사를 주둔시켜 여진의 침입을 막으면서 주민은 낮에 농사를 짓고 밤에 돌아오게 했는데 차츰 주민을 이주시켜 19세기에 들어서는 민가 110여호에 인구 822여명이 살았다. 이곳 주민들은 농사와 어업과 소금 제조로 생계를 이었다. 1587년에는 여진족이 침입한 녹둔도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고 이순신도 한때 이곳에서 만호로 봉직했다. 그 아래 서수라와 조산과 연계하는 최전방 방어의 요충지였던 곳이다. 18세기부터 상류의 토사가 쌓여 하구 안의 대안과 연결되었다.

참고사항 한 가지를 말하면 <대동여지도>에는 녹둔도를 하구와 떨어진 바깥 바다 쪽에 그려 놓았는데 이는 김정호가 실측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1860년 청은 베이징조약을 맺으면서 녹둔도마저 러시아에 넘겨주었다. 국제법상 주민 비율로 따지면 녹둔도는 당연히 조선에 귀속되어야 했다. 조선 정부에서는 뒤늦게 알고 이를 항의해 경계조사와 반환을 요구했으나 별 소득이 없었다. 1990년에는 북한과 러시아가 새 국경조약을 맺었다 한다. 하지만 우리의 진로는 여기에서 가로막혔고 녹둔도를 먼발치에서조차 바라볼 수 없었다. 녹둔도를 결코 잊지 않을 것임을 다짐하며 발길을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봉오동전투 현장, 하지만 전투가 벌어졌던 골짜기는 당시 저수지로 바뀌어 ‘봉오동 반일유적지’라는 팻말만 서 있었다.

20년대 초 홍범도 부대는 국경지대에서 무장활동으로 일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고, 이에 남양 주둔 일본군 국경수비대가 추격에 나섰다. 그해 6월6일, 독립군 연합부대로 편성해 700여명 규모를 갖추었던 홍범도 부대는 일본군을 골짜기로 유인해 사면 총공격으로 전사 150명, 총상 200여명에, 소총 160정, 기관총 3정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독립군의 피해는 거의 없었다. 항일독립전쟁 과정에서 최초로 가장 큰 전과를 올렸던 것이다.

홍범도 사령관은 곧바로 부대를 화룡현 어랑촌으로 옮겼고, 김좌진 부대는 화룡현 청산리로 이동해 두 부대가 연합전선을 형성했다. 우리는 홍범도 부대의 이동경로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어랑촌에는 대종교 지도자로 순국한 나철의 묘소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가 청산리전투라고 부르는 독립전쟁은 백운평과 청산리와 어랑촌 일대에서 벌어졌으나 정작 중심 전투는 어랑촌 뒤편이었다. 어랑촌-청산리전투는 20년 10월 중순에 벌어졌다. 김좌진 부대 600여명과 홍범도의 독립군 1400여명은 총 5000명을 동원해 이른바 토벌작전에 나선 일본군에 대항했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300여명의 전사자를 냈고 독립군은 20여명만 희생됐다. 이 전투는 봉오동전투보다 빛나는 성과를 올렸으나 그 타격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 만주의 군벌인 장쭤린(장작림)이 일제와 야합해 압제를 가한 탓으로 독립군은 국경 넘어 러시아 연해주 일대로 쫓겨가야 했던 것이다. 또 일본군은 그 보복으로 이른바 경신대참변을 일으켜 우리 동포를 살해하거나 마을을 불태웠으며, 간도영사관의 지하실로 끌고가 피부를 벗기는 따위 엄청난 고문을 했다. 습격·약탈·강간·살육을 저질러댔지만 철저하게 통제해 처음에는 외부에 알려지지조차 않았던 이 학살로 2년 동안 인명 피해만 3700여명을 헤아렸다.

봉오동전투를 두고 연변의 독립운동 연구가들은 정작 홍범도 부대가 전투의 중심부에 있었고 김좌진 부대는 2선에서 도왔다고들 했다. 그때까지 남쪽의 교과서 등에서 청산리전투만 부각시킨 것과는 전혀 다른 얘기였다. 이 전투의 중간지휘관이었던 철기 이범석(훗날 국무총리)이 김좌진과 자신이 모든 걸 지휘했다고 주장하며 홍범도를 완전히 삭제했기 때문이었다. 엉터리 역사 기록을 현장 답사를 통해 정확하게 확인한 나름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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