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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밑바닥 조선족? 옛날 얘기!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8.07.31일 09:50
  산업 부동산 투자로 중산층 진입

  소들세 8천만 내고 마세라티 모는 사업가

  강남에서 자식 혼사 치른 50대 조선족

  (흑룡강신문=하얼빈)7월 첫째 주 토요일, 서울 강남 한 웨딩홀에서 조선족 K씨의 아들이 결혼식을 했다. 순백색의 생화로 장식된 홀, 테이블마다 잘 세팅된 식기들, 정갈하고 다양한 뷔페식 요리 등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을 많이 쓴 듯한 고급스러운 예식장이었다. 여느 결혼식과 다른 점이라면 하객들의 말투가 유일했다. K씨 측 하객은 중국 길림성이 고향인 조선족이 절반 이상이었다. 대부분 10-20년 전 한국에 들어와 자리 잡은 50,60대의 1세대 조선족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결혼식을 위해 K씨는 아낌없이 돈을 풀었다. 결혼식 당일에 쓴 돈만 한화 2000만 원(이하 모두 한화)에 이르렀다. 아들의 유럽행 신혼여행 경비와 웨딩촬영 비용까지 합하면 3000만 원은 족히 들었다.

  올해 57세인 K씨는 중국 길림성 출신이다. 2000년대 초 마흔 살이던 K씨는 10대 아들을 부모에게 맡긴 채 아내와 한국행을 택했다. 이들 부부가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공사장 인부, 가사 도우미, 음식점 보조 등이 전부였지만 악착같이 일해 차곡차곡 모은 돈을 중국으로 보냈다.

  그렇게 17년을 일한 끝에 K씨는 한국 중산층에 편입했다. 10년 전 길림성에 사뒀던 집값이 2배로 올랐고. 5년 전 서울 구로구에 사둔 아파트도 가격이 억 단위로 뛰었다. 대입을 앞둔 아들을 한국대학에 입학시킨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아들은 대학졸업 후 바로 사업을 시작해 30대 초반인 지금은 직원 대여섯 명을 거느린 사업체를 운영 중이다. 중국어와 한국어를 모두 할 수 있어 중한 양국 유학생을 돕는 일로 시작한 유학원 사업이 이제는 꽤 자리잡았다. 사업이 잘돼 신혼집도 아들이 성동구에 스스로 마련했다.

  그사이 K씨 가족은 한국 국적도 취득했다. 중국에 남아 있던 어머니를 모셔다 한국 국적을 회복하도록 했고. K씨와 아내도 한국 국적을 취득해 아들을 호적에 올렸다. 그는 "자식뿐 아니라 조카들 교육비까지 댔으니 힘들긴 했다. 그래도 떳떳하게 살아왔고 이제는 걱정거리 하나 없다. 노후 준비도 나름대로 해놨다. 앞으로는 소일거리를 하면서 건강 잘 챙기고. 아내와 여행도 하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소득세 8000만 원 내는 사업가

  '조선족' 하면 으레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일찌감치 한국에서 일하며 자리잡고, 한국 국적을 취득한 조선족은 14만 명에 이른다. 한국 법무부가 2018년 6뭘 말 기준으로 작성, 발표한 출입국통계월보에 따르면 한국내 거주 외국국적 동포는 85만 9609명이며, 이 가운데 중국동포(조선족)는 83.3%인 71만 5953명으로 2위 미국동포(4만5069명)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여기에 한국 국적을 취득한 조선족 14만 명을 합산하면 약 85만 명이 넘는다.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내 거주 중국동포는 불법체류 신분이 많았지만 2007년 방문취업제도가 시행되면서 합법적으로 일하는 이들의 수가 급속도로 증가했다. 방문취업제도는 중국 및 옛 소련 지역에 거주하는 만 25세 이상 외국국적 동포들이 고국을 쉽게 방문하고 취업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방문취업(H-2)사증으로 입국한 자는 최장 3년간 체류 가능하고, 출국 후 다시 입국하는 식으로 연장해 일할 수 있다. 6월 말 한국법무부 출입국통계월보에 따르면 현재 중국동포 가운데 방문취업비자(H-2) 21 만5891 명, 재외동포비자(F-4) 32만3853명, 영주권(F-5) 8만9241 명 등 총 62만 8985명이 합법적인 신분으로 일하고 있다.

  1 세대 조선족은 방문취업제 도입 이후 안정적으로 일하기 시작해 11 년이 지난 지금 한국 중산층으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개중에는 꾸준히 모은 돈으로 부동산 투자, 사업 등을 시작해 부유층으로 올라선 이도 적잖다. 특히 30~40대인 2세대 조선족은 부모 세대의 어려움을 답습하지 않고 다른 선택을 해 성공한 경우가 많았다.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서 식자재 도매 사업체 '한중식품'을 운영하는 김봉규(40) 사장도 그런 사례다. 그는 한국에 들어온 지 18년 만에 종합소득세 8000만 원을 납부하는 갑부가 됐다. 전국적으로 500여 개 음식점을 대상으로 양고기, 돼지고기, 쇠고기 등 식자재를 납품하는 회사를 운영하는데, 매달 평균 수억 원대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 김 사장은 "한국에 먼저 와 자리잡은 부모님이 와서 일주일만 살아보라고 한 게 벌써 18년이 됐다. 그때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중국에 있었다면 더욱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중국 심양 출신인 김 사장은 중학교 졸업 후 고교 진학 대신 군에 입대해 4년간 복역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2000년 해방군 출신 중국인은 중국 공산당 소속의 공무원이 될 수 있었다. 김 사장도 이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할아버지 고향이 전남 진도이고, 부모도 한국에 있던 터라 한국행을 택했다.

  한국에서 시작한 일은 돼지갈비식당의 설거지 담당, 냉면집 요리부의 반죽 당당 등이었다. 그렇게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일하던 김 사장도 2005년 재외동포법 개정으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됐다. 그때 자기 사업을 해볼 요량으로 퀵서비스를 시작했고, 밤에는 대리운전까지 했다. 하루에 잠자는 시간이 서너 시간에 불과했지만 한 달 수입은 400만 원이 넘었다. 피곤한 삶을 살고 있을 때 자주 가던 중국식품 가게 주인이 그에게 운전기사를 알선해달라고 했다. 한 달에 150만 원가량 버는 일이었지만 일하는 시간을 반으로 줄일 수 있었다. 김 사장은 선뜻 나섰고 그렇게 몇 달 일하자 주인이 그에게 가게 인수를 제안했다. 권리금 5000만 원이 없어 망설였지만 주인이 "일부만 내고 나머지는 벌면서 갚으라'고 선의를 베풀어 결국 가게를 인수했다.

  그때부터 일이 풀렸다. 김 사장은 화교들이 주방장으로 있는 음식점을 찾아가 업무시간 이후 술을 사며 도와달라고 사정했다. 싹싹한 김 사장을 마음에 들어 한 주방장들은 거래처를 수십 곳씩 소개해줬고 가게 인수 1 년 만에 한중식품 매출은 2배로 늘었다. 김 사장은 "인수 당시에는 월매출이 1000만 원 단위였는데, 2-3년 뒤 월매출 1억 원을 넘겼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4-5배로뛰었다"며 미소지었다.

  김 사장은 그렇게 번 돈으로 부모에게 구로동에 아파트를 사드리고, 2년 전에는 노후 자금 명목으로 원룸 12개짜리 다세대 건물까지 부모 명의로 매입했다. 자신 역시 구로동에 아파트를 마련해 아내,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구로2동 사회복지관에 정기적으로 기부하는 등 지역사회 봉사도 하고있다.

  그는 "3년 전 엔터사업, 통신사업 2개가 망하는 바람에 5억 원을 날리긴 했어도 지금도 먹고 살 만하다. 한국이 나에게 일할 수 았는 기회를 줬으니 나도 한국에 보은하며 살려고 한다"고 말했다.

  부부 박사,중한무역협회장 연구원으로

  성공한 조선족은 공통점이 있었다. 조선족 밀집지역인 서울 구로동과 대림동 등에서 조선족을 상대로 음식점, 여행사,식품점 등을 운영해 부를 축적했다는 것이다. 냄새 나지 않는 깔끔한 양꼬치로 인기를 얻어 전국에 60여 개 체인점을 연 요식업 사업가, 여행사와 휴대전화 할인매장 같은 사업체를 너덧 개 운영하며 2억 원짜리 마세라티 스포츠카를 모는 사업가 등 저마다 근성을 갖고 성공한 조선족을 취재 과정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사업가 이외에 한국에서 학위를 취득해 자리 잡은 조선족도 있었다. 김용선(41) 중한무역협회 회장과 아내 이선란(42) 국립기상과학원 연구원은 돈을 벌기보다 학업에 열중하는 쪽을 선택했다. 김 회장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태어나 연변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한 뒤 2004년 한국서강대로 유학을 왔다. 당초 박사학위를 받고 연변대학에서 교수를 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데 서울대 지구환경과학과 박사과정에 있던 연변 출신 아내를 만나 2006년 결혼한 뒤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아이가 생겨 중국에 있는 처갓집으로 들어간 것이다. 아이를 낳자 둘 중 하나는 학업을 미룰 수밖에 없었고, 김 회장이 잠시 육아를 맡았다. 그사이 아내는 박사학위를 취득해 서울대 해양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게 됐다.

  그즈음 김 회장도 아이를 데리고 한국으로 들어갔다. 재외동포(F-4) 비자를 받아 그때부터 공부 대신 조선족을 위한 사업을 시작했다. '중국법률신문'을 창간해 중국동포의 법률 의식 개선에 기여하고, '중국동포타운신문' 편집국장으로 일하며 동포들의 소식을 전했다. 2013년에는 중국과 한국에서 사업하는 중국동포들을 잇는 법인을 만들어 동업자 4명과 대중국 물류 배송, 국제전화 무료 애플리케이션(앱) 개발, 케이뷰티(K-beauty) 기술전수 등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중한무역협회를 만들었고, 중국시장에 진출하려는 한국인들을 위해 무역아카데미도 열었다.

  그가 다방면으로 일하는 사이 아내 이선란 박사는 한국 국립기상과학원 기후연구과에 채용돼 연구용 기상항공기를 이용한 온실가스 관측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김 회장은 "공부를 포기하고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돈에 큰 관심이 없어 결국 부자가 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중국동포들을 위해 헌신하고, 대중국 무역을 하는 한국인의 외화벌이에 일조했다는 데 자부심을 가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내에 대해서도 "아무나 일할 수 없는 국립기상과학원에 조선족 출신으로 들어갔으니 나보다 더 성공한 셈'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한국 사회에 보답하려는 조선족

  한국 사회에서 성공한 조선족은 대체로 한국 정부의 정책에 감사를 표했다. 2005년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재외동포법) 개정, 2007년 방문취업제도 시행 등으로 당시 불법체류 신분이던 중국동포들의 지위를 합법적으로 보장해줘 안심하고 일할 수 있게 됐다는 것. 또한 2010년 동포기술교육제도를 시행해 자격증 취득 뒤 취업할 수 있도록 동포교육지원단을 만들어준 것 역시 도움이 됐다고 한다.

  영등포구 대림동에서 여행사와 서류대행 사업을 하는 천춘옥 명촌여행사 대표는 "8년 전 한국에 들어와 사업을 시작하고 부모님과 자식까지 뒷바라지할 수 있게 된 것은 한국 정부의 좋은 정책들 덕분이다. 중국동포들이 이렇게 정책적인 부분에서 배려받지 못했다면 지금까지도 한국 사회에 정착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조선족에 대한 한국인의 부정적 시각을 개선하고, 배려받은 만큼 지역사회에 보답하는 것을 숙제로 생각했다. 허을진 GK희망공동체 이사장 역시 그런 생각에서 비영리단체를 만든 경우다. 그는 2007년 방문취업제를 통해 한국에 들어와 자동차 회사에서 번 돈으로 중국동포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온라인매체를 만들었고, 4년 전에는 중국동포와 한국 사회를 잇는 GK희망공동체를 설립했다.

  허 이사장은 중국 연변의 불우학생들에게 성금을 보내고, 매년 중국과 한국의 청소년들이 어우러질 수 있는 문화행사를 개최하며, 한국에서 지역 봉사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공로로 2015년 10월에는 서울명예시민으로 선정됐다. 그는 "지역사회 단체에 후원하려는 중국동포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물품후원이 많다보니 재단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중국동포들과 함께 할수 있는 한 꾸준히 봉사하면서 한국 생활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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