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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60인]《효도 존경 책임》을 실천하는 기업가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09.11.29일 15:51
[공화국창립60돐 기념 특별기획 60주년에 만나본 60인] - 기획보도(47)

광주모드모아그룹의 리성일회장을 만나본다
리성일 프로필:

1956년 길림성 왕청현 하마탕 출생

1972년 송원시 전고르로스 3중 졸업, 선풍촌에서 농사일, 유전일 등

1975년 영길현 이도소학교 교사

1977년 길림성교하탄광학교 (현재의 장춘석탄관리간부학원) 입학

1980년 졸업후 길림시조선족중학교 교사

1982년 선후로 길림시사법국 예심과, 장춘시공안국 경찰로 근무

1986년 중공 광동성위 3국 7처 4과 부과장

1989년 광주세계무역추진회 상무대표직에 근무

1992년 사직, 광주모드모아 침상용품회사 설립, 광주모드모아그룹 회장

전국정협 제10기 위원, 제11기 전문위원 중화민족단결진보협회 부회장

동북사범대학, 무한과학기술대학 객원교수

1999년, 2005년 2차 국무원 《전국민족단결모범상》 수상

1999년 공화국창건 50주년 수도기념행사 천안문관례대에 오름

통계에 의하면 중국에서 개혁개방후 10년이상을 버텨낸 민영기업은 30만분의 1이고 20년이상을 버텨낸 민영기업은 100만분의 1이라고 한다. 민영기업의 생존과 발전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수치라 하겠다.

이중에17년간의 민영기업의 진로를 승승장구로 달려와 현재는 2000여명의 종업원에 제품은 8가지 카펫, 매트 시리즈에 천여가지 디자인을 자랑하면서 세계 근 40개 나라와 지역에 수출하고 국내외에 1300여개 판매대리점을 가진 판매망을 형성, 자산총액과 년간생산액이 3억원 대관을 돌파한 한 민영기업이 있다. 이 기업이 바로 조선족기업가 리성일(53세)씨가 키를 잡고있는 광주모드모아그룹이라는 함대이다.

모드모아그룹의 성장륜곽을 살펴보면

1992년 광주모드모아침상용품유한회사 설립

1996년 모드모아장춘공업무역유한회사 설립

1998년 광주시번우신태양실업유한회사 설립

1999년 광주번우모드모아카펫유한회사 설립, 《납세대호》칭호와 《번우구경제발전선진기업》 영예칭호

2000년 광주번우모드모아기계제조유한회사 설립

2001년 ISO9001국제품질관리체계인증 취득

2002년 번우모드모아공업원 준공(11만평방메터)

2003년 경제발전특별기여상

2005년 광주100강민영기업칭호

2006년 광동성성실신용시범기업칭호

2007년 광서 오주 만수구에 4억여원 투자, 부지 18만평방메터 모드모아생산기지 건립

2008년 오주시모드모아생물과학기술(중미한합작)유한회사 설립(등록자금 1000만원)

2009년 오주향강모드모아생태원 투자건설

실패를 딛고 선 창업신화

왕청 하마탕에서 태여나 두살때 송원시 전고르로스현 선풍조선족촌으로 이사해 성장한 리성일씨는 연변의 아들이자 송눈벌 초원의 아들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의 몸에서는 효와 책임을 선행하는 질박한 기질과 함께 의리와 정을 중히 여기는 호방한 남아의 기질이 함께 체현되고있기도 하다.

가정에서 5남매중의 맏이로서 부모에 대한 효성, 동생들에 대한 사랑, 이미 외손녀를 본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위엄은 그의 사업에서도 남김없이 체현되고있다.

리성일씨는 고중을 마치고 농사일도 해보고 유전일도 해보고 농촌아이들의 선생님도 되여보면서 가는 곳마다에서 인기인물로 떠올랐지만 현실을 초월한 더 새로운것에 대한 추구를 막을수 없었다.

대학입시를 맞아 길림성교하석탄학교를 졸업후 10여년간에는 길림시조선족중학교에서의 교사, 길림시사법국 예심과와 장춘시공안국 7처에서의 경찰관, 중공광동성위 3국 7처 4과 부과장직 공무원, 광주세계무역추진회 상무대표 등으로 끊임없이 하나하나의 새 목표를 향해 도전하고 쟁취하고를 반복하면서 열심히 뛰여왔다.

끝내1992년 공직을 사직하는것으로 뒤길까지 끊고 자금 2만딸라를 밑천으로 광주모드모아침상용품회사를 설립하는것으로 백프로 창업에 투신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일찍 광주세계무역추진회 상무대표로 있을 때 몸으로 경제를 익히면서 창업을 시도해보았었다. 허나 다 실패였다. 부산주점의 실패, 자전거경음기생산 실패, 3만무땅 깨잎재배 실패. 3년간에 3차의 실패, 그것마저 하나하나 더 혹독한, 그를 죽음까지 생각케 한 실패였다. 그러나 실패는 또 동력이기도 했다.

리성일의 몸에서 《실패앞에서 포기하지 않는 정신, 실패원인을 자기에게서 찾는 책임감, 거짓없는 솔직함과 대단한 배짱》의 귀중함을 보아낸 한국 마론핸즈 모드모아(MODEMORE)의 회장 조웅기박사는 단 세번째의 만남에서 리성일로부터 뜬금없는 창업자금지원을 청구받고서 선뜻 2만딸라를 내놓을수 있었다.

그것도 《꼭 갚는다는 장담은 못하겠습니다》고 먼저 밝히는 사람한테.

리성일은 이 2만딸라로 광주시 교외에 광주모드모아침상용품공장을 앉히고 《핑크하트》표 침상용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의 알뜰한 공장경영으로 제품은 인차 전국방직제품박람회에서 1등의 계관을 따냈고 잇달아 전국침상용품시장에서도 한자리를 찾게 되였다. 창업에 성공한것이다.

모드모아는 이미 국내는 물론 국제방직업계에서 알아주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기업의 주요제품인 카펫은 국제시장에서 유명한 브랜드제품으로 되였고 모드모아는 명실상부한 중국의 카펫왕, 아세아의 카펫왕으로 되였다.

앞선 안광과 판단으로 기회를 포착하며

기업경영에서 리성일회장의 앞서가는 예리한 안광과 정확한 판단은 호황에서 불황을 내다보고 기회를 포착하고 대담하고 과단하게 새로운 선택을 하는것으로 나타난다.

침상용품시장이 포화상태에 접근했음을 보아내고 판매호황에서 스톱, 미끄럼방지매트와 카펫 생산으로 이전하고 국내시장목표에서 국제시장에로 목표를 바꾸었듯이 로동밀집형산업이 광동성에서 밀려나갈것임을 예리하게 판단하고 정부의 결정이 나오기 2년전에 벌서 광서 오주시에로 공장을 이전하기로 결정한것 등은 생동한 실례이다.

이외에도 발빠른 움직임으로 반년만 불어친 스쿠터(滑板)열 시장에서 유일하게 1400만원을 벌어 새 공장부지 자금을 마련했고 밑지는 장사로 새 기술 숙련공을 키웠다가 새 제품시장에서 또 한몫 톡톡히 챙기는 등등.

하기에 현재 모드모아는 카펫생산을 위주로 호텔, 리조트, 호텔식아빠트, 체육공원 등 다종기능을 가진 생태형 국제성관광체육리조트인 모드모아생태원, 모드모아생물과학기술유한회사의 설립 및 또 하나의 브랜드제품인 《치타》의 탄생 등등 새로운것으로 부단히 기업을 확대하고 발전 장대시키고있다.

리성일의 최종목표는 중국의 카펫왕, 아세아의 카펫왕에 만족않고 세계카펫업종의 일인자로 되는것이라고 말한다.

모드모아도 가족기업으로 시작된것이지만 리성일은 회사를 가족중심으로가 아니라 인재중심의 구도로 만들기 위한데 한시도 신경을 늦추지 않았다.

그는 가족이라 해도 회사에 필요한 인재가 아니면 철저히 견제했고 회사에 필요한 인재라면 시간과 대가를 가리지 않고 끈질기게 설득하고 감동시켜 유치해왔다. 모드모아는 지금 국내외에서 유치해온 유망한 인재들로 고급경영진을 뭇고 활보의 일로를 걷고있다.

재부를 기꺼이 사회에 환원해오며

지난 9월 25일, 리성일회장은 자기의 모교인 송원시 전고르로스현3중에 찾아가 800만원의 현금과 150대의 노트북컴퓨터를 기증했다. 이번까지 그는 학교에 합계 천만원을 기부하고있다.

모교에 대한 리성일씨의 후원은 일찍 10여년전에 시작되였다. 1998년 출장길에 모교에 들렸던 그는 교사의 초라한 모습에 가슴아픈 나머지 당장에서 10만원을 교장의 손에 쥐여주며 교원장려기금으로 써달라고 했다. 당시 기업은 갓 기틀이 잡히고 확대발전의 관건시기라 10만원은 적은 액수가 아니였다.

이듬해에는 교사절에 자기의 제품인 침상용품이며 카텐들을 싣고와 선생님들한테 선물로 나누어드리고 150여명의 재직교원들과 그제날 자신을 가르쳤던 퇴직교원들까지 모두 당지의 제일 호화로운 식당에 모셔 교사절경축연회를 베풀어드렸다.

처음으로 이처럼 성대한 교사절을 쇠며 그제날의 학생이 올리는 조선족큰절을 받으며 선생님들은 감동의 눈물을 머금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교수조건을 개선하라며 100만원, 교원장려기금으로 10만원을 더 내놓았다. 이듬해 리성일과 전고르로스현정부가 함께 투자하여 세운 5층짜리 다기능교수청사인―《성일교수청사》가 땅을 차고 일어섰고 리성일은 모교의 도약적인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였다.

모교에 보낸 천만원에 달하는 경제적인 후원, 이속에 내재한것은 바로 사랑이고 책임이고 보답이다. 학생이 모교에 대한 보답이고 은사에 대한 보답이며 사회에 대한 한 기업인의 책임이고 교육에 대한 지지와 사랑인것이다.

이날 기증식연설에서 리성일회장은 어린 후배학생들에게 《효도, 존경, 책임》이란 세 단어를 정중히 선물했다. 즉 《자기를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기를 가르쳐준 선생님을 존경하고 사회에 대한 자기의 책임감을 키워가자》이다. 그는 자신의 실제행동으로 가장 설복력있는 한차례 생동한 인성교육 과당을 수업한것이다.

리성일씨의 교육사랑은 모교에 대한 후원에만 그친것이 아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2002년 여름, 기업의 확장 이전을 목적으로 리성일씨는 당시 광주시 번우현 금산촌이라는 곳에서 150무의 땅을 사기로 계약을 맺고 계약금 150만원을 지불했었다. 그런데 후에 보니 농업토지여서 건물허가를 받을수 없었다. 금산촌에서는 미안해하며 계약금을 돌려주었다.

그러나 리성일회장은 그 돈을 받지 않고 촌의 낡은 교사를 다시 지으라며 되밀어주었다.

이외에도 회사 한 고급관리원의 고향학교에 40만원을 기부해 새 학교를 짓도록 한 일, 중국민족발전기금회에 800만원을 기부한 일, 지금까지 8년간 가정환경이 어려운 우수한 소수민족대학생을 대상으로 년간 200명, 인당 2000원씩 장학금을 지불해오고있는 일, 자기 모교인 장춘석탄관리간부학원의 특곤학생 2명을 후원해 대학공부를 마치게 하고 모드모아에 직장까지 배치해준 일, 모드모아는 또 무한방직대학, 장춘경공업대학의 실습기지로 제공되고있다.

교육사랑은 또 민족사랑, 문화사랑, 사회사랑과 책임으로 번져간다. 다년간 민족 문화, 교육, 출판 등 부문에 기부한 자금만도 천만원, 그중에는 장백산모드모아문학상도 포함된다.

조남기장군이 평가했듯이 《리성일은 신고스레 얻은 재부를 기꺼이 사회에 환원해오면서 그 과정을 즐겨왔다. 기업인으로서 사회적책임을 잊지 않는 리성일이 참으로 대견하다.》

리성일은 이렇게 말하고있다. 《저에게는 개혁개방으로 인해 얻을수 있었던것을 사회에 돌려줘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걸 위해서 기업은 더 많은 리윤을 창출해야 하며 저는 그 과정을 즐기고있습니다.》

전국정협위원의 책임을 다해가며

리성일은 경제분야에서 이룩한 성과가 인정을 받으면서 1998년 광동성정협 제8기 위원으로 되였다. 잇달아 2003년부터는 전국정협 제10기 위원으로, 2008년부터는 전국정협 제11기 전문위원으로 되였다.

기업경영으로 그렇게 드바쁜 와중에도 정협위원의 사명감을 안고 기층에 심입하여 경제분야에 존재하고있는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고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적극적으로 해결경로를 모색하였으며 광동성과 나라의 생산력발전에 유리한 의안들을 제출하여 해당 부문의 중시와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일찍 시장독점을 타파할데 관한 문제를 다룬 의안 《민영경제발전과 민간투자를 추진할데 대한 근본적인 방법에 대하여》를 제기하여 민영기업에 대한 사회적인 기시 등 일부 전형성을 띠는 문제를 천명했으며 우리 나라 교육체제개혁에 대해서도 일가견을 내놓았다. 특히 2006년 전국정협 제10기 제4차 회의에서 그가 제기한 중국의 도로표시판을 규범화할데 대한 의안은 극히 민생적인데서 국가교통부에서 접수, 현재 실행단계에 있다고 한다. 2009년 3월 《량회》기간에도 리성일씨는 법률에 관한 제안―소학교부터 형사법, 치안법을 비롯한 법률과목을 설치해 어릴 때부터 관련 법률지식을 장악할수 있도록 정부에 건의하기도 했다.

이런 그에게 정부와 사회는 충분한 긍정을 주고있다. 1999년과 2005년에는 창업성공과 민족단결사업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무원에서 선정한 전국민족단결진보모범의 영예를 지니고 인민대회당에서 중앙지도자들의 접견을 받았고 공화국창건 5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을 받고 천안문관례대에도 올랐다.

《저는 우리 나라 경제사회발전에서 다른 민족에게 뒤지지 않는 더 탁월한 기여를 하고저 합니다. 이는 저 개인의 영예보다는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모습, 훌륭한 정신을 다른 민족에게 널리 알리는것으로서 우리 민족이 더욱 존중받는데 매우 유조하기때문입니다.》 리성일씨는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실천하고있었다.

리성일과의 취재수첩을 닫으면서 기자가 느낀것은 그가 그의 좌우명처럼 나라와 민족 그리고 사회에 대한 《효도 존경 책임》을 열심히 실천해가는 기업가라는것이다.

편집/기자: [ 김정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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