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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옛날이여!" 사라져가는 영화관(극장)들

[중국조선족문화통신] | 발행시간: 2009.12.30일 09:20
—고품위 문화보다 유흥문화 강한 현실 개변되여야

지금처럼 영화가 “외면”당하기는 처음인것 같다. 아니, 실제로는 영화가 외면당하는것이 아니라 텔레비죤, VCD, DVD, 인터넷영상 등 전자, 네트워크 영상수단의 발달로 한때 흥성했던 영화관이 외면당하고있다고 봐야 할것이다. 영화관의 존재가 어떠하든 영화자체는 여전히 방대한 시장을 갖고있고 사람들의 문화생활에 가져다주는 취미는 거대하다.

이동영사대 오는 날은 온 마을의 경사

농촌에서 태여나고 자란 내가 영화라고 처음 접하기는 로천영화를 통해서였다. 현영화발행공사 이동상영대가 마을로 오게 되면 그때만한 행복감과 즐거움은 없었다. 잎담배건조마당이나 마을의 커다란 공지에 영사막을 쳐놓고 관중들은 각자 마련한 쪽걸상이나 혹은 마대따위(심지어 가족끼리 커다란 낡은 이불도 등장시키기도 했었다)를 펴놓고 이른바 일등석을 먼저 차지하느라 허둥대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심지어 어느 마을에서 영화를 돌린다고 하면 밤중에 도보로 영화구경도 가군 했었는데 그래서 본 영화가 당시 적지 않은 중국인을 울렸던 “꽃파는 처녀”나 “한 자위단원의 운명”, “금희와 은희의 운명” 등 이름난 조선영화들이였다. 그때 “지뢰전”, “갱도전”, “상감령”, “영웅의 아들딸” 등과 같은 전쟁소재의 영화(그때 전투편이라 불렀다)가 인기를 끌었는가 하면 “류삼저”, “아스마”, “량산백과 축영대” 등과 같은 가극영화나 희곡영화도 그렇게 재미있었다.

80년대 중반 고중에 입학하고 다시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영화관이나 극장에 가보면 관중수도 적지 않았다. 특히 “붉은 수수”나 “과부촌” 같은 제목 혹은 내용상 지금껏 보아온 영화보다 새롭고 신선한 영화가 상영될 때면 매표소 앞에서는 몰려든 관객들이 서로 밀고 밀리면서 번번이 아수라장 같은 치렬한 공방전을 벌렸었는데 돌이켜보면 참으로 지금에는 볼래야 볼수 없는 그 시대의 진풍경이기도 하였다.

하나 둘 사라져가는 영화관들

사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연길에는 영화관(영극원) 이 상당히 많았지만 오늘날 전문영화관을 비롯해 영화관역할을 하던 적지 않은 영극원들이 거개가 사라진 상황이고 연변예술극장과 로동자문화궁(인차 철거된다고 함)만이 억지로 자리버티기를 하고있다. 이 두 장소가 지금까지 생존할수 있는데는 두 장소가 전문적인 영화관이 아닌데다가 연변예술극장이 연변을 대표하는 기념비적인 문화건물이고 연변의 중요한 정치, 문화 행사의 개최지라는 점이 작용하고있고 로동자문화궁 역시 정협, 인대 회의가 열릴만큼 정치행사의 장소라는게 크게 작용하고있는것 같다.

그외 영화관들을 보면 연길시인민영화관자리는 민영기업에 매입돼 원 건물이 완전 철거된채 새로운 백화점으로 변모했고 문화극장은 원 건물은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있지만 영화관과는 완전 기능이 바뀐 사우나로 되였다. 로동자구락부자리 역시 원 자리가 철거되고 새로운 오락장소로 변했고 지하극장은 한때 사우나로 되였다가 지금은 그 자리에 새로운 건물이 일떠서고있다.

동방극장은 한때 디스코오락장소로 되였다가 지금은 스산한 모습을 보이고있다.

장지연 연변영화발행공사 리사장 겸 총경리는 목전 연변 각 현, 시에는 전문적인 영화관이 하나도 없으며 원래 있던 극장, 영화관 등 문화시설은 대부분 개조해 상업용으로 리용되고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문화생활 영화상영업 충격

영화관들이 하나, 둘 사라져가게 된데는 나름대로의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것은 물질문화생활의 풍요로움에 따른 다양한 문화생활의 흥기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수 있다.

계획경제시대 영화관은 시민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화생활장소였고 개혁개방후 비록 여러가지 문화생활장소, 이를테면 무도장과 같은 문화생활장소도 출현했지만 당시만 해도 영화관은 여전히 중요한 문화생활장소로 되여왔다. 하지만 텔레비죤, 록음기 등의 보급과 전자게임, 지금 노래방의 전신인 가라오케 등의 출현 특히 가정영화관으로 불리우는 대형스크린의 출현과 CD, DVD 등의 보급 그리고 갈수록 흥성하는 전자제품의 흥성, 인터넷의 흥기 등으로 영화관은 점차 사람들의 시야에서, 뇌리에서 사라지게 된것이다.

외국에서 개봉된지 얼마 안되는 영화나 국내에서 개봉된지 얼마 안되는 영화를 사람들은 해적판 DVD나 인터넷을 통해 인차 볼수 있다는게 지금의 현실이다. 그렇다고보니 돈을 내고 한산한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가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것이다.

영화관이 몰락되기전 그냥 간과할수 없는 하나의 과정이 있다. 바로 비디오록화방-이른바 록상청, 록화청으로 불리웠던 특설 “영화관”이라 할수 있다. 큰 영화관을 찾는 관중수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여러 영화관들에서는 다투어 작은 방들을 한두칸씩 내여 록화청을 꾸렸는데 영화관은 휑뎅그레하여도 록화청은 하냥 만원을 이루었고 영사막에서는 볼수 없는 미삭제의 해적판 향항영화나 서방영화들을 형광막으로 볼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관들의 그러한 장소도 오래 가지 못하고 결국 사회 록화청의 흥기, 기타 문화생활의 충격 등으로 자리를 내주고만다.

연변의 PC방실태를 취재한 한 외국기자는 연변에서 영화관이 쇠퇴한 리유에 대해 PC방의 성행과 무관치 않다고도 쓰기도 했다.

관람수입 직선 하락과 완전소실

80년대말 90년대초만 해도 연변지역 영화발행수입은 년평균 350만원, 매표수입은 800만원에 달했고 그후 90년대를 시작으로 매표수입은 하락의 길을 걷게 된다.

아래는 연길시 통계년감에 기록된 부분적 영화관 상영차수, 관중수, 매표수입 통계수치이다.

—1986년 총 1만 2140차 상영, 관중수 근 520만명, 매표수입 93만 3000여원. 그중 인민영화관의 상영차수 2192차, 총 매표수입 19만 2000여원.

—1996년 연길시 각 영화관 극장 2157차 상영, 관중수 18만 4000여명, 매표수입 19만 1000원

그중 예술극장 541차 영화 상영, 관중수 3만 8000명, 매표수입 19만 1000여원. 문화극장 6차 영화 상영, 기타 통계는 없음.

인민영화관 426차 영화 상영, 관중수 6만 1000여명, 매표수입 37만 6000원. 로동자문화궁 554차 영화 상영, 관중수 3만 9000여명, 매표수입 14만 4000여원.

연길시로동인민문화궁 607차 영화 상영, 관중수 4만 3000여명, 매표수입 19만 7000원.

—2003년 예술극장 148차 영화 상영, 관중수 9만 9200명, 매표수입 21만 7600원.

로동자문화궁 72차 영화 상영, 관중수 17만 6800여명, 매표수입 30만 8800원.

인민영화관, 연길시로동인민문화궁 기록 없음.

장지연총경리는 연변으로 말하면 70년대로부터 90년대초까지 전성기라고 할수 있다며 매표수입이 가장 많을 때에는 1000만원에 달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이는 근근히 력사의 한페지에 남을 수치에 불과할뿐이였다. 그에 따르면 연길시를 일례로 현재는 영화를 거의 돌리지 않는 상황이며 한때는 학생들을 조직해 영화관람도 조직했지만 지금은 그것마저 어려운 상황이란다.

고품위 문화생활의 하나인 영화의 매력은 여전

텔레비죤, 인터넷 등의 흥성에도 불구하고 여러 나라들에서 영화의 매력은 여전한것으로 알려지고있다. 중국의 적지 않은 지방에서도 영화는 여전히 그 매력과 흡인력을 갖고있다. 2008년 중국의 영화관람수입은 42억원을 초과했는데 올해는 55억원을 넘어설것으로 예상하고있다.

영화관 수도 증가추세다. 통계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우리 나라 영화관과 영사막 수는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 사이 새로 건설된 영화관이 근 400개에 달하는것으로 알려지고있다. 이와 더불어 관중수, 매표수입도 점차 증가되는 추세를 보이고있다.

지금에 와서 영화관은 단순한 감상만 주는 장소가 아니라 감상과 더불어 시각적, 청각적인 분위기 그리고 환경분위기 등을 향수할수 있는 비교적 품위가 높은 장소로 되고있다.

지금 대도시들에서 성행하고있는 영화관은 이전의 영화관과 개념에서나 환경적으로나 분위기적으로나 완전히 다른 영화관으로 변하고있다. 널직하지만 스산한 느낌을 안겨주고 조금 퀴퀴한 냄새도 나고 어딘가 한산한 그런 영화관이 아니라 작지만 보다 깔끔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고급문화장소로 변하고있는것이다. 게다가 추구하는것도 디지털영화, 완전한 립체음향효과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단순한 영화감상의 의미를 벗어나 문화적분위기를 향수하게 하는것이다.

비록 영화관들은 구식형태의 운영모식, 구식형태의 설비와 장식은 사라져가고있지만 영화관 자체는 사라지지 않고있다.

그래서 연변영화발행상영공사도 이같은 국내 대도시의 조류를 따라 새로운 풍격의 영화관을 건설하고있다. 현재 1000만원이 투입되여 건물청사, 장식 등이 전무 마무리된 은방영화성(银邦电影城), 건평이 4000평방메터인 영화성은 3개의 200석, 100여석 영화관과 7개의 특실(包房)을 갖고있는 종합영화관으로 건설되고있었다. 또 사우나도 별도로 마련되여있고 료식업체가 임대할수 있는 장소도 마련되여있었다.

장지연총경리는 이제 새해 봄에 의자, 상영시설 등 설비장치를 마치면 품위있게 건설된 이곳에서 아늑하고 품위있는 환경에서 영화를 볼수 있을것이라고 말했다.

“연길은 ‘소비만 있고 생산은 없는 도시’로 변해버린것이다. 더욱 씁쓸하게 만든건 인민영화관이 망가졌다고 한다. 영화 보는 사람이 없어서…문화도시로 거듭나야 할 연길의 문화가 고작 유흥문화라니…뭔가 바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길의 영화관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데 대해 한 네티즌이 인터넷에 올린 아픔의 글이다.

고품위 영화관, 고품위 가무극원, 고품위 미술관…연길도 이제는 고품위 문화도시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가싶다.

[연변일보 2009-12-29 장연하 전윤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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