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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공동체의 형성과 변화: 역사적, 이론적 접근(3)/정호영

[중국조선족문화통신] | 발행시간: 2009.12.28일 10:00
정호영(한국 고려대학교)


Ⅴ. 결론: 글로벌리제이션과 민족 공동체의 변화

정체성은 일종의 자아지식으로서, 이것은 사전적으로 존재하는 자기 자신의 어떤 부분을 발견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학습을 통해 구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험과 학습의 환경 또는 맥락으로서 사회적 과정들과 제도들은 정체성 구성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따라서, 민족에 대한 자아지식으로서, 민족 정체성도 그 존재를 사회적 과정들과 제도들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민족 정체성의 형성, 공고화, 확산, 지속은 특정한 역사적인 사회적 제도들과 과정들 속에서만 가능했었고,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제도들과 과정들에 큰 변동이 발생하면, 민족 정체성의 유지와 지속 가능성에도 변동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사회적 구성물로서 정체성의 운명이다.

그런데 지금, 민족 정체성을 구성하고 유지시켜 온 정치적 프로젝트의 핵심 담당자였던 국가의 능력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사회적 변동들이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그 변동들을 통칭하여 이르는 말이 ‘글로벌리제이션’이다. 글로벌리제이션은 삶의 공간, 즉 사회적 공간의 기본 구도를 ‘국가-지방’으로부터 ‘세계-지역-국가-지방’으로 세분화해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인간 삶의 보편 공간으로서의 국가의 지위는 흔들리고 있다. 결과적으로, 국가의 프로젝트로서 구성되어 온 민족 정체성도 일반 정체성으로서의 지위를 위협받고 있다.

물론, 한 편에서는 글로벌리제이션이 민족 정체성을 강화시킨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민족 정체성과 단순한 ‘민족주의적 감정’ 간의 구분을 명확히 하지 않는 데서 나오는 것으로 판단된다. 민족주의적 감정은 민족 정체성 형성 과정의 핵심인 성찰성을 통과하지 않은, 위협으로 인식되는 외적 변동에 대한 인간의 즉자적 반응이다. 민족 정체성은 민족과 국가를 자아의 연장으로 여길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내면화된 성찰적 의미들의 집합이며, 그것은 국가가 성원들에게 적절함과 유익함을 제공하지 않고서는 기대될 수도, 구성될 수도 없는 것이다. 더구나, 민족 정체성은 민족주의만으로 구성되고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민족주의는 동일시의 한 가지 수단일 뿐이기 때문에, 민주주의라는 또 한 가지의 수단이 함께 제공되어야만 민족 정체성의 장기적 존속성은 보장될 수 있다. 따라서, 국가가 개인을 보호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강력한 민족주의적 감정은 발생할 수 있어도 민족 정체성이 장기적으로 유지되거나 강화될 수는 없다. 만약, 민주주의를 통하여 유익함을 제공할 수 없는 허약한 국가가 단기적 목적을 위하여 민족주의적 감정을 동원화할 경우, 그것은 자칫 국가를 통제불능의 상태로 몰고 감으로써 국가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게 되는 상황을 야기할 가능성도 크다.

지금, 글로벌리제이션이라는 전지구적인 사회적 변동은 한 국가가 성원들에게 적절함과 유익함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크게 약화시키고 있다. “민족국가가 존재치 않는 상황에서 영국인 또는 아일랜드인 또는 유대인, 또는 이 모든 것을 다 지닌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자기 정체성을 기술하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이 날이 벌써 가까웠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모할 것이다. 그렇지만, 필자는 이 날이 상상될 수는 있기를 바란다. 결국, 역사가들이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연구와 분석에서 어느 정도 발전을 이루어내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는 종종 그렇듯이 이 현상이 정점을 지났음을 암시한다. 헤겔이 말하듯, 지혜를 가져오는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해가 져야 날았다. 그것이 현재 민족과 민족주의 주위를 나는 것은 좋은 징후이다 ”(홉스봄, 1994: 242-243). 즉, 민족‘국가’ 없이는 민족 정체성은 지금까지와 같이 일반 정체성의 지위를 누리지 못하고 단지 개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정체성들 중 하나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영원할 것만 같았던 하나의 일반 정체성이 그 지위를 상실하고 사적 영역으로 후퇴하게 된 것을 보았다. 중세 시대부터 절대주의 시대 전반기까지 유럽을 하나의 공간으로 삼아 일반 정체성의 지위를 누려 왔던 기독교 정체성은 절대주의 하반기를 거치면서 약화되다가 민족국가 시대에 들어와서는 그저 여러 정체성들 중 하나로만 남게 된 사실을 본 것이다. 글로벌리제이션의 진행 속에서, 민족 정체성에도 그와 같은 일이 발생할 것을 생각해보는 것은 지나친 상상력인가?

그럴 지도 모른다. 민족 정체성의 일반 정체성으로서의 지위 상실이 아주 먼 장래에만 하나의 현실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닐 테지만, 그와 같은 일이 당장 벌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우선 벌어지게 될 일은 개인들과 민족국가가 글로벌리제이션을 민족 정체성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자신들의 존재론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그 정체성을 방어하고 강화하려고 시도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런 시도가 충분한 힘을 갖게 될 경우에는 글로벌리제이션이 상당히 험난한 여정을 갖게 될 것이고, 심지어 그것이 중단되거나 역전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상황을 본다면, 이런 가능성이 현실화될 것 같지는 않으며, 민족국가들은 결국 적응이라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적응을 선택하게 되면, 우선 점점 더 많은 개인들이 주 정체성으로서 민족 정체성을 버리거나 채택하지 않게 될 것인데, 이와 같은 현상은 현재 이미 상당한 정도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국가가 ‘민족국가’로서 자신의 존재 기반인 민족 정체성이라는 일반 정체성을 포기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고 있는데, 개인들에게 적절함과 유익함을 제공하지 못하는 한, 그래서 성원들의 존재론적 문제들을 해결해줄 수 없는 한, 또 그래서 개인들이 점점 더 민족 정체성을 주 정체성들 중 하나로 삼기를 외면하는 일이 지속되는 한, 국가가 민족 정체성을 언제까지나 자신의 정당성 근거로 보유할 수는 없게 될 것이다. 그러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형태인 민족국가와는 다른 새로운 어떤 형태를 갖는 국가의 출현은 불가피할 것이다. 그리고, 그 국가는, 어떤 형태의 것이 되든지, 성원들이 직면하게 되는 존재론적 문제들의 해결을 지금까지 존재했던 그 어떤 국가보다도 훨씬 더 많이 ‘세계’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정체성 문제는 그야말로 존재론적 문제이기 때문에, 인간이 살아 있는 한, 누구에 의해서든 해결되어야 할 문제인데, 현재 이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는 주요 원인이 글로벌리제이션이므로, 해결의 실마리도 결국에는 그 방향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존재론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개별 국가들과 세계가 더 많이 상호작용하게 된다면, 그 방향은 18세기 말부터 현재까지 개별 국가들이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를 통해 자신들의 성원들에게 제공해온 것과 같은 것들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쪽, 즉 세계적 차원에서 개인들에게 보다 많은 적절함과 유익함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쪽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단계에 이르게 될 때까지 개인들은 혼란, 불안, 걱정, 좌절, 분노, 분열 같은 문제들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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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출처 : 엠파스 블로그-대한민국에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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