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사람으로 연변에 살면서 나는 참 력동적인 시대에 사는구나 하는 생각을 가질 때가 가끔 있다. 인구의 대량이동현상만 보더라도 그렇다. 관내나 외국에 진출한 사람들이 많고 출국로무자가 많고 려권소지자가 많고 외국류학과 섭외결혼이 많기로 연변만한 곳도 아마 드물것이다.
허지만 돌고도는것이 세상일이다. 규모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금에 와서 그 력동성을 말할 때 귀국, 귀향창업자들의 사례도 빠뜨려서는 안될것이다. 나가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감동적인 사연이 허다하지만 귀국, 귀향창업자들의 이야기도 귀맛좋게 들린다.
심심찮게 신문지면을 차지하는 요즘의 농촌기사만 요약해 보더라도 화룡시 투도진 룡평툰 리홍화녀성이 해외에 로무자자로 나갔다가 귀향 7년만에 년간 생산규모가 1800마리에 달하는 양돈장을 일떠세웠다. 해마다 로무송출인원이 400명이상이고 로무경제 년간수입이 300만원인 연길시 소영진 하룡촌에는 몇년간 민족특색이 있는 음식점이 35개 생겨났는데 전부 귀향로무자들이 투자하고 경영한다. 이 촌의 농민 인당 수입의 65%가 관광산업에서 온다. 안도현 송강진 동산촌의 오해룡, 고인자부부는 한국에 로무자로 나갔다가 고향에 돌아와 12만원을 투자해 1800여헥타르 되는 림지와 골짜기를 도급맡아 개발하며 치부하고있다.
이뿐이 아니다. 알려진바와 같이 근래에는 연변의 여러 도시, 여러 업종에서 창업의 땀방울을 흘리고있는 귀국인원들도 적지 않다. 다른 한편 연변진출기업이 적잖은 가운데 훈춘에 집을 사놓은 미국상공인도 있다고 하며 미국의 음식업체 허들하우스가 연길태화청사유한회사와 체인점계약을 맺고 중국 본점인 1호점을 연길에 앉힌다고 한다. 작년 여름에는 북경의 한 투자회사가 100억원을 투자하는 동북아변경무역센터가 훈춘변경경제합작구에서 정초의식을 가지여 화제였다. 본고장사람들만 돌아오는게 아니라 외지사람, 외국사람들도 들어오고있는것이다.
인구이동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을 감안할 때 이제까지 우리는 외지로 외국으로 밀려나가는 썰물에 익숙한 편이였다면 지금부터는 귀향을 하고 귀국을 해서 도시와 농촌에서 창업을 하는 밀물의 조짐(인구의 역이동의 조짐), 그리고 외지와 외국 상공인들의 연변진출의 움직임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것이다. 나가는 이동이 력동적인것이라면 들어오는 역이동 역시 력동적인것이다. 생각을 비약시켜보면 아직도 나가는 인구이동이 멎을리는 없겠지만 앞으로 언젠가부터는 들어오는 역이동이 주류로 될 날도 오지 않을가싶기도 하다.
이곳 두만강지역개발의 발전력사를 돌이켜보더라도 이런 추측은 허황한것이 아님을 짐작할수 있다. 1988년 6월 나는 금방 중쏘통상구로 명명된 훈춘의 장령자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장령자(지금의 훈춘통상구)는 변경선을 따라 얼마간 철조망이 있고 변방군망루가 서있는외에는 더러는 수림이고 더러는 초지인 한적한 구릉지대일뿐이였다.
그러던것이 1992년부터 두만강지역개발이 시작됨에 따라 훈춘이 개발지역으로 되였고 1999년부터는 개발지역이 연변전역으로 확대되였다. 지난해 8월 30일 국무원이 장길도를 개발개방선도구로 하는 두만강지역협력개발개방전망계획요강을 공식 비준함에 따라 연변은 급기야 명실상부한 기회의 땅, 신기한 지역으로 급부상하게 되였으며 장춘—길림—두만강지역개발은 국가전략으로 승격되여 나라의 연변(沿邊)개발개방의 요지, 동북아를 향한 중요한 개방문호, 동북아경제기술협력의 플랫폼, 동북지역의 중요한 장성점으로 자리매김이 되였다. 우리로 말하면 오랜 숙망이 현실로 다가온것이다.
나갈가? 들어올가?
이는 어디까지나 개개인의 자유이다. 대천세계 그 어디를 가든 누가 말릴 사람이 있으리오만 그러나 “잘 살피면 밭이 되고 잘못 살피면 산이 된다”는 외국속담도 있거니와 인제는 좀더 사려깊게 앞뒤를 잘 살펴가면서 거취를 택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가 한다. 아무튼 고대하던 두만강지역개발이 본격화되고 전도양양한 새로운 시작이 우리를 기다리고있는것만은 분명하다. 나의 감각과 느낌을 토이기시인 나짐 히크메트의 시(“진정한 려행의 시작은”)가 잘 대변해주고있는것 같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여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려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려행의 시작이다…
(문학평론가)
연변일보 20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