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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키스 추행범 혀 깨물어 절단…유죄? 무죄?

[기타] | 발행시간: 2012.11.10일 03:00
美·中보다 허용 범위 엄격한 한국 정당방위의 과거와 현재

1990년 개봉한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의 한 장면. 이 영화는 1980년대 후반 한 지방 도시에서 일어난 ‘성추행범 혀 절단 사건’을 재구성했다. 주인공 정희(원미경·왼쪽)와 그 남편(이영하)의 표정이 그들의 복잡한 심경을 말해준다. 동아일보DB

《“앞으로는 어떤 결과가 나오든 순순히 당하고 말겠습니다. 누군가가 사내에게 당할 처지이면 절대로 반항하지도 말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말 것이며, 특히 재판은 절대로 안 된다고 말하겠습니다.”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중 여주인공의 최후 진술) 30대 초반의 주부가 한밤 귀갓길에 두 청년(남자1, 남자2)에게 강제추행을 당한다.

반항하는 과정에서 남자1의 혀가 잘려나간다. 은밀한 곳을 더듬고 강제로 입맞춤을 하려는 그의 혀를 여자가 얼결에 물어버린 것이다. 여자는 상해 혐의로 고소당한다. 혀 절단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걸까. 부녀자를 추행한 남자1일까. 아니면 과도한 방어로 한 청년을 장애인으로 만든 여자에게도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는 것일까. 이 이야기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는 법정 이슈 ‘정당방위’에 대한 것이다.》

주나라 때는 복수 담당 관리도 있어

옛날에는 위와 같은 문제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근대 초기까지 정당방위는 인간의 본원적 권리로 여겨졌으며, 그 범위가 상당히 폭넓게 인정됐다. 위 사건이 고대에 일어났다면 남자1은 물론이고 단순 가담자인 남자2까지 죽음을 면치 못했을 수 있다. 고대 사회에서는 피해자 생명에 대한 침해와 관련이 없어도 현행범에 대한 살해가 인정됐다. 심지어 원시 씨족사회에서는 자칫하면 청년들의 씨족이 모두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

오늘날과 달리 꼭 범행 당시가 아닌, 사후에도 복수를 할 수 있었다. 중국 주(周)나라 때는 관아에 사적 형벌(私刑)을 담당하는 관리(朝士)가 있었다. 정당한 이유를 제시하고 관리에게 원수의 이름을 제출하면 그를 죽여도 죄가 되지 않았다.

국가권력이 강해지면서 사적인 복수가 제한되기 시작했다. 개인 차원의 복수가 국가의 법질서를 어지럽힐 소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강력범은 죽여도 된다는 생각은 세계 여러 곳에서 최소한 근대 말 또는 현대 초기까지 지배적이었다.

강력범에 대한 정당방위는 우리나라에서도 폭넓게 인정됐다. 조선시대에는 부모가 살해 또는 폭행을 당할 때 현장에서 가해자를 살해해도 무죄였다. 성폭행 가해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신분도 상관이 없었다. 세종 15년(1433)에는 공신 이숙번의 15세 계집종 소비(小非)가 자신을 겁탈하려는 주인의 이마를 칼날로 찔러 상하게 했으나 처벌을 받지 않았다. 조선시대라면 추행범의 혀를 물어뜯은 주부는 당연히 무죄였을 것이다. 한편 조선시대 법에는 근대법적인 요소도 있었으니, 사건 당일이 아닌 하루가 지나서 행해진 복수는 계획적인 살인이라 해서 유죄가 됐다. (‘조선 명탐정 정약용 1’, 이수광)

철학자들도 정당방위 적극 지지

서양에서도 근대 초기까지는 정당방위가 폭넓게 인정됐다. 정당방위와 관련한 학설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철학자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들은 ‘정당방위의 정당성’을 열렬히 지지했다. 영국 경험론 철학의 시조이자 정치사상가인 존 로크(1632∼1704)는 “모든 인간은 범죄를 저지하고 자신을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범죄자를 죽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마누엘 칸트(1724∼1804)는 “불법에 대한 강제, 즉 정당방위는 개인의 자연적 권리”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근대 후기가 되면서 정당방위의 한계가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1813년 발효된 독일 바이에른 왕국 형법전은 “필요 이상으로 과도한 방위 행위나 위험한 방위 수단을 취할 수 없다(128조)”와 “공격이 종료된 후 공격자를 상해 또는 살해한 행위는 다른 면책 사유가 없는 한 고의범으로 처벌한다(133조)”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1920년대 독일에서는 경미한 법익을 보호하기 위해 생명이나 신체를 침해하는 경우에는 정당방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학설이 등장했다.

독일 형법의 변화는 우리 입장에서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 형법 체계에 독일 형법과 그것을 참고한 일본 형법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혀 절단 사건, 20세기와 21세기

이제 무대는 현대의 한국이다. 여자와 남자1, 남자2의 이야기는 1980년대 후반 경북의 한 소도시에서 실제로 발생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1990년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감독 김유진)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실제 사건에선 여자의 정당방위가 인정받는 것이 쉽지 않았다. 1심에서 검찰은 그녀의 행위가 과잉방어라는 이유로 징역 1년을 구형했다. 1심 재판부는 여자에게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재판은 항소심으로 이어졌다. 고등법원은 청년들의 주장이 일관되지 않고 모순이 있으며, “피해자의 행위는 자신의 성적 순결 및 신체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것으로서 상당한 이유가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그녀의 정당방위를 인정했다.

원래 한국의 사법제도는 정당방위를 좁고 엄격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법이 가해자에게 지나치게 관용적이며 피해자의 인권이나 국민의 법감정과 거리가 먼 ‘기계적인’ 법 해석이 나온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경북 성추행 사건과 비슷하지만, 1965년에는 추행범의 혀를 1.5cm 정도 물어뜯은 여성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진 적이 있었다. 지금도 주먹으로 공격하는 사람에게 대항해 막대기로 방어하다 상해를 입히면 상해죄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한국과 달리 미국과 중국 등 다른 나라들은 정당방위에 대해 한층 탄력적인 기준을 적용한다. 미국에선 오히려 정당방위에 따른 살인이 너무 늘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올해 3월 기사에서 정당방위 살인이 2000년 176건에서 2010년 326건으로 85% 늘었다고 보도했다. 2005년 플로리다에서 처음 도입된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Stand Your Ground)법은 상대로부터 위협받았다고 느낄 때 충돌 회피 노력 없이도 총기 등 살상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재 미국 25개 주에 이와 비슷한 법이 있다.

중국에는 ‘무한방위권’이라는 것이 있다. 중국 형법 제20조 3항은 “현재 진행 중인 행흉(行凶·폭력으로 생명 또는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행위)이나 살인, 강도, 강간, 납치, 기타 인신의 안전을 중대하게 위태롭게 하는 폭력범죄에 대해 방위행위를 해 불법한 침해인의 상해 또는 사망을 초래한 경우는 과잉방위에 속하지 않고, 형사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또 한국과 달리 과잉방위에 대한 처벌은 정황에 따라서가 아니라, 당연히 감경이나 면제 처분을 받을 수 있다.

검사 출신인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질서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 허용할 수 없는 과도하거나 극단적인 방어행위는 규제받아 마땅하지만, 정당방위의 적용은 더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법은 불법에 양보할 필요가 없다’는 명제가 정당방위, 더 나아가 법의 기본 사상이라는 생각이 아직도 전 세계적으로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기도 하다.

다행히도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정당방위에 대한 ‘전향적인’ 확대 해석이 늘고 있다. 의정부지검은 강제로 키스하려는 남성의 혀를 깨물어 3분의 1가량을 자른 혐의로 입건된 20대 여성을 지난달 23일 불기소 처분했다. 남성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그를 강간미수, 여성을 중상해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시민 9명으로 구성된 검찰시민위원회는 “혀를 깨문 것이 피해자가 처한 위험(성폭행)에 비해 과도한 대항이었다고 보기 어렵고, 그런 상황에서 적극적인 자기방어를 허용하지 않을 경우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며 정당방위를 인정했다. 지난달 말 지나가던 여성의 머리채를 잡고 폭행한 60대 만취 남성을 주먹으로 제압한 그녀의 남자친구도 정당방위를 인정받아 입건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국민의 법 감정은 아직도 피해자의 권리에 대한 더욱 엄정한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올해 10월의 혀 절단 사건 처분을 다룬 언론 기사들에는 아직도 ‘이례적’이란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처벌받는 억울함을 언제쯤 다 없앨 수 있을까.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참고문헌=정당방위의 본질에 관한 고찰, 김태명 가톨릭대 교수, 2002/한국·중국 정당방위제도에 관한 비교 연구, 허리우·何瀏, 경상대 대학원 법학과 석사논문, 2011

▼정당방위에 대한 법률 규정: 형법 제21조▼

①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현재의 침해’는 사건 발생 당시에만, ‘상당한 이유’는 사회통념상 인정받을 수 있는 마땅한 사유가 있어야만 정당방위가 인정된다는 뜻이다.)

② 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때에는 정황에 의하여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 (‘정황에 의하여’란 단서 조항이 있다.)

③ 전항의 경우에 그 행위가 야간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하에서 공포, 경악, 흥분 또는 당황으로 인한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자료: 국가법령정보센터(www.law.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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