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연천군 대광리 찾아가보니
100년 이상 보존 유일한 묘소인데
군 “땅주인들이 이전 요구” 파헤쳐
“나라를 강탈당한 그 통한 씻어내고 국권을 되찾고자 밭 갈다 의병 됐네. 배달얼 의지하여 따로 난 다섯분이 강도국 일본놈들 싹쓸어 무찌르고 장렬히 목숨 바쳐 이곳에 잠드셨네….”
4일 찾은 경기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 ‘항일의병 5위 묘소’엔 문학박사 최강현씨가 지은 위령비와 연천군수 등이 내건 묘소 안내판만 덩그러니 서 있고 무덤들은 모두 파헤쳐져 있었다.
연천군이 지난해, 조성된 지 100년이 넘은 대광리역 인근 야산 165㎡ 규모의 묘소를 마을에 알리지도 않고 이장했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대광리 주민들과 연천문화원 회원들이 원상 복구를 촉구하며 반발하고 있다.
항일의병 5위 묘소는 1907년 연천 보개산 일대에서 벌어진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희생된 의병 5인의 주검을 대광리 주민들이 수습해 마을 뒤 야산에 묻고, 작고한 이응신·신기환씨를 비롯한 마을 노인들이 대를 이어 100년 넘게 정성껏 관리해왔다고 한다.
연천군수와 연천문화원장이 내건 묘소 안내문을 보면, “이곳은 1907년 9월27일 보개산을 중심으로 활약하던 의병진 250여명이 일본군 김화수비대 재경보병 50연대 1소대와 치열하게 항쟁하다가 순국한 무명의 항일의병 5위 묘소”라고 기록돼 있다. 실제로 보개산 일대는 조선 군대가 강제해산된 1907~8년 허위·연기우 등이 이끈 수백명의 의병부대가 일본군과 치열하게 전투를 치렀던 곳으로 유명하다.
연천문화원 향토사연구소는 1997년 마을에서 구전으로 전해져온 의병 묘 5기에 대한 검증에 나서 밤나무를 통째 깎아 만든 관과 유골을 확인한 뒤 위령비를 세우고 인근 도로변에 표지판을 설치했다. 이어 이곳을 ‘항일의병 사적지로 지정해달라’는 주민들의 서명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향토사연구소 상임연구위원으로 유골 발굴에 참여한 이병주(57)씨는 “항일의병 5위 묘소는 보개산 전투로 희생된 수많은 의병 가운데 현장에 100년 이상 보존된 유일한 묘소로서, 구술과 기록에 의해 충분히 검증돼 역사적 가치가 크다. 일본은 없는 역사도 만들어 왜곡하는 판인데, 우리는 있는 역사마저 지우려 한다”며 분개했다.
대광리 주민 이성호(56)씨는 “선친께서 명절 때면 벌초하고 참배하며 평생 돌보신 묘소다. 순국 선열들의 묘를 이렇게 함부로 대하면 후손들 누가 나라를 위해 몸 바쳐 싸우겠냐. 반드시 제자리로 원상복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천군은 지난해 9월 말 추경예산 1500만원을 들여 대광리에 있는 무연고 의병 묘 9기를 항일의병 투쟁의 본산인 심원사 부근으로 이장했다고 밝혔다. 윤미숙 연천군 학예사는 “땅주인들의 이전 요구가 잇따른데다 묘소 관리도 안 돼 이장했다. 이장하기 앞서 전문가들의 자문과 법적 절차를 거쳤다”고 말했다. 연천/글·사진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