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TSB가 밝힌 이정민 기장 진술
"자동추력조절장치 작동 안 해"
기계결함인지 실수인지는 불확실
이강국 "섬광에 잠깐 눈 안 보여"
미국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의 아시아나 항공기 충돌 사고를 조사하고 있는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가 교관 신분으로 부기장석에 있었던 이정민 기장과의 면담 내용을 공개했다.
데버러 허스먼 NTSB 위원장은 9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하고 “이 기장이 당시 500피트(충돌 34초 전)에서 속도가 낮다는 걸 깨달아 이강국 부기장에게 '물러나라(pull back)'고 지시한 뒤 직접 자동추력조절장치(auto-throttle) 속도를 137로 설정했다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 기장은 이 장치가 속도를 유지할 거라 믿었는데(assume) 200피트 상공에서 속도가 유지되지 못한 걸 알아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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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먼 위원장이 밝힌 이정민 기장의 당시 상황 진술은 이렇다.
'활주로 5마일(2만6400피트) 전까지 속도를 180노트로 유지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4000피트에서 속도는 160노트, 수직속도 지시계가 1500fpm(1분당 이동 피트)을 가리켰다. 그리고 500피트 즈음 속도가 낮다는 걸 깨달았고, 착륙유도등(papi)이 3R1W(빨간 불이 세 개 들어와 착륙 각도가 좁다는 뜻)인 것도 보였다. 그때 이강국 기장에게 “물러나라”고 말하며, 137노트로 자동추력조절장치를 설정했다. 이 장치가 속도를 유지할 거라 믿었는데, 200피트가 됨과 동시에 착륙유도등이 4R(모두 빨간 불)이 됐음을 확인했다. 그런데 곧이어 자동추력조절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에 속도를 다시 유지하기 위해 재이륙(go-around)을 결정하고, 자동추력조절장치가 아닌 다른 가속 장치(throttle lever)를 밀려고 손을 뻗었다. 그러나 이미 이강국 훈련기장이 그 가속 장치를 밀고 있었다'.
이처럼 이정민 기장이 자동추력조절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진술함에 따라 NTSB는 이 기장의 진술 일치 여부를 확인할 방침이다. 이 자동추력조절장치는 B777 기종의 경우 좌측 기장석 상단에 두 개의 작은 레버형 스위치 형태로 달려 있다.
허스먼 위원장은 “기체 구조팀이 조종석에 들어가 확인한 결과, 조절장치 스위치가 활성화돼 있었던 것(auto throttles were armed)은 맞다”며 “이는 작동할 준비가 돼 있다는 의미이지 실제 작동 여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동추력조절장치가 문제라면 그것이 기계적 결함인지, 조종사들이 작동 방법을 오해했는지는 불명확하다”며 “정확한 결과는 비행데이터기록장치를 고도별로 확인하면서 당시 조절장치가 어떤 모드였는지, 조종사들이 비행 중 조절장치 모드를 어떻게 설정했는지 확인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NTSB에서는 발표하지 않았지만 이강국 훈련기장은 이날 면담에서 “500피트에서 착륙유도등을 보고 난 뒤 어디선가 섬광이 일어 잠깐 앞이 안 보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피해 상황에 대한 추가 보고도 이어졌다. NTSB는 “방파제에 충돌 당시 비행기의 꼬리 부분보다 랜딩기어가 먼저 충돌했으며 꼬리 부분이 충돌하면서 승무원 두 명이 튕겨 나갔다(ejected)”고 밝혔다. 한동만 샌프란시스코 총영사는 “현재 샌프란시스코 현지에 입원 중인 승무원은 네 명”이라며 “이 중 두 명이 중상이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전했다.
국토교통부 집계로는 사고기 탑승객 중 샌프란시스코 현지에서 입원 중인 부상자는 25명이다.
샌프란시스코=이지상 기자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