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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 타이머’ 되돌린다고 불멸의 삶이 올까

[기타] | 발행시간: 2014.02.12일 10:55

자료: 스웨덴 노벨생리의학상 선정위원회(2009)

[한겨레] [사이언스 온] ‘노화의 비밀’ 텔로미어

얼마 전 시내 지하철역에서 눈에 띄는 광고를 보았다. ‘노벨의학상이 찾아낸 불로장생의 비밀’이라는 부제를 달고, 염색체(게놈)의 한 부분인 ‘텔로미어’를 다룬 대중서적의 광고였다. 실제로 텔로미어 연구자인 엘리자베스 블랙번, 캐럴 그라이더, 잭 쇼스택 교수는 2009년 노벨 생리의학상까지 받은 바 있다. 정말 이 연구자들이 진시황제의 못다 한 숙원인 ‘불로초’를 찾아냈다는 말인가?

그날 저녁에 불로초의 비밀을 놓칠 수 없다는 부푼 기대를 품고서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 책은 기대와 달리 다른 보통의 관련 서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텔로미어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규칙적인 운동과 올바른 식습관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노벨상의 권위를 빌려 자신들의 방법을 좀 더 과학적으로 보이게 하려는 데 있었다. 텔로미어가 대체 무엇이기에 현대의 불로초로 묘사되고 상품 광고에도 떠들썩하게 등장하는 걸까?

텔로미어는 ‘세포 타이머’

텔로미어는 아직 일반인한테 낯설기는 하지만 생명과학계에선 최근 10여년 동안 흥미로운 연구 주제로 떠오르면서 그 존재가 점차 자세히 드러나고 있다. 흔히 불로장생의 비밀을 담고 있다고 얘기되는 텔로미어는 사실 염색체 끝부분에 있는 독특한 구조로, 생체 기능을 하는 유전자가 담기지 않은 특정 염기서열의 단순반복으로 이뤄져 있다.

사람의 경우에는 여섯 개의 염기서열(‘TTAGGC’)이 1000번 이상 반복되는 구조다. 어찌 보면 무의미해 보이는 반복 서열이 모든 생물체의 염색체 끝부분에 붙어 있는 이유는 뭘까? 그건 디엔에이(DNA) 복제가 지닌 결함 때문으로 설명된다. 세포분열 때에 디엔에이는 복제되는데, 복제를 거듭할수록 염색체 끝은 조금씩 닳아 없어진다. 당연히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중요한 유전정보가 손실될 수 있다. 다행히 염색체 끝에 있는 텔로미어가 유전정보를 대신해 자신이 줄어들면서 일종의 방어막 구실을 한다.

이런 기능 때문에 텔로미어는 종종 ‘신발끈 끝에 붙은 플라스틱 마개’로 비유되곤 한다. 하지만 신발끈 끝에 달린 플라스틱 조각도 시간이 흐를수록 닳듯이 텔로미어도 세포분열이 진행될 때마다 조금씩 짧아지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결국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유전정보의 손실이 생기는 건 아닐까? 텔로미어가 더 는 방어막 구실을 못해 손상된 유전자가 복제되면 생물체에 큰 혼란이 생기진 않을까?

이런 문제에 대비해 세포는 텔로미어에 중요한 임무를 하나 더 부여했다. 그것은 텔로미어가 일정 길이보다 짧아질 때에는 세포분열을 멈추게 하는 임무다. 즉, 텔로미어는 마치 남은 세포분열 횟수를 기록하다가 0에 가까워지면 알람을 울려 세포분열을 멈추게 하는 ‘타이머’처럼 작동한다는 것이다.

세포의 타이머를 초기화하면 어떻게 될까? 세포가 무한 분열을 할까? 1998년 미국 텍사스대 사우스웨스턴 메디컬센터의 우드링 라이트 교수 연구팀은 체외에서 배양한 피부세포의 타이머를 초기화하면 무한 분열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논문 저자 중 한 명인 제리 샤이 교수는 “(당시에) 사람들은 우리가 노화를 치료해줄 것으로 생각했지”라고 회상한 바 있다.

염색체 끝부분 단순반복 염기서열

세포분열 때 유전정보 보호 구실

노화·수명과의 연관성 밝혀 노벨상

‘불로장생 비밀 지녔다’ 관심 쏠려

상업적 과장…개체 수준 암 유발도

장수 비결은 한 가지로 환원 안돼

염색체의 끝부분에 있는 단순반복의 염기서열 부위를 일컫는 텔로미어는 그동안 노화, 수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규명돼 왔다. 하지만 개체 수준에선 여전히 수수께끼가 더 많다. 사진은 텔로미어 부분만 형광을 내도록 처리한 뒤 염색체를 관찰한 현미경 영상.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개체의 타이머라 부를 수 있을까?

얼핏 관련이 없어 보이는 무한 분열과 불멸이 단세포 생물에서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세포의 노화 과정은 기계의 마모 과정과 비슷하다. 기계가 작동 과정에서 생기는 마찰과 이물질로 인해 점점 낡을 수밖에 없듯이, 세포에서도 효소 반응이 지닌 한계와 오류로 인해 갖가지 찌꺼기들이 생겨 세포 기능을 저해하고 늙게 한다.

똑같은 유전정보를 다음 세대에 그대로 물려줘 무한한 ‘나’를 만들어내는 단세포 생물은 ‘영원히 산다’고도 얘기된다. 이들은 세포 분열을 통해 세포 내 찌꺼기를 희석하거나 한쪽 세포에 몰아주는 식으로 세포 하나의 건강을 영원히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한히 분열하는 단세포 생물은 텔로미어 타이머를 지속적으로 초기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단세포 생물과 달리, 다세포 생물은 여러 기능으로 분화한 다종다양한 세포들이 하나의 개체를 이룬다. 이 세포들 간에는 중요한 분업 계약이 존재한다. 그것은 ‘유전정보를 다음 세대로 잘 전달하기’라는 공동의 목표를 두고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생식세포에 일임하는 것과 같다. 이런 분업 덕분에 생식세포는 단세포처럼 지속적으로 분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많은 자원을 들여 보호된다.

반면, 체세포는 단세포 시절에 지녔던 자유로운 분열 능력이 통제되고 생식세포의 안녕을 위해 일한다. 그 결과 체세포는 분열을 통해 찌꺼기를 희석하는 전략을 쓸 수 없게 되었고, 나이가 들수록 점점 낡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만일 체세포에게 자유로운 분열 능력을 되돌려준다면 우리는 불멸을 누릴 수 있을까? ‘텔로미어 타이머를 초기화할 수 있는 능력은 생식세포만 가진다’는 분업 계약이 체세포의 자유를 속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면 불멸의 삶이 펼쳐질까?

스페인 국립암연구소의 블라스코 교수 연구팀은 그런 쥐를 실제로 만들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이 쥐는 온몸이 암세포로 뒤덮인 상태가 됐다. 암세포 각자는 무한 분열하며 불멸을 누릴 수야 있겠지만, 이 세포로 이뤄진 유기체는 치명적 위험에 처하는 것이다.

이렇듯 다세포 생물에서 텔로미어 타이머는 분업이 지켜지도록 통제하는 경찰과 같다. 텔로미어는 자유롭게 분열하려는 세포의 욕망을 억제해 유기체의 질서를 유지한다. 모든 세포가 자유롭게 분열하는 세상은 죽음이 사라진 유토피아가 아니라 통제되지 않은 세포들의 욕망이 충돌하는 혼돈일 수 있다.

불로의 약 드시겠습니까?

“400유로의 검진이 당신이 얼마나 오래 살지 알려준다.” 이 문구는 공상과학소설에 나오는 게 아니라 2011년 영국 일간신문 <인디펜던트>에 실린 기사의 제목이다. 이 기사는 텔로미어를 측정해 건강검진 보고서를 제공하는 어느 생명공학 기업을 소개하는 보도였다.

다세포 생물에서 텔로미어는 무한한 생을 약속할 수 없다. 그러나 만약 암 발생 없이 텔로미어를 조절할 수만 있다면 현저하게 수명이 증가한다. 실제로 암에 강한 저항성을 지닌 쥐의 텔로미어 타이머를 초기화하면 수명이 40%가량 증가하고, 일시적으로 텔로미어 타이머를 끈 경우에도 수명 증가 효과가 나타났다고 한다.

이런 연구를 바탕으로 많은 기업이 텔로미어를 닳지 않게 유지하는 약이나 건강보조식품을 개발했다고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제품들이 수명을 늘리는지, 늘린다면 세포 내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과학적으로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가진 텔로미어 타이머의 남은 숫자가 점점 작아진다고 주장하는 논문에서도 다수 사람이 그런 경향성에서 예외로 벗어나 있음을 볼 수 있다. 오래 사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긴 텔로미어를 지니는 것도 아니다.

노화 연구 결과가 쌓일수록 점점 분명해지는 것은 노화의 원인을 한 가지 요소로 환원할 수 없다는 점이다. 활성산소, 적게 먹기 등등이 노화에 중요한 영향을 주지만 하나의 요소만을 조절하는 것으로 노화를 멈출 수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텔로미어가 수명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수 있겠지만, 텔로미어 하나로 불로장생의 비밀을 풀었다고 홍보하는 것은 과학을 오용하는 것이다. 과학은 상품에 권위를 부여하는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과학은 잘못 부여된 권위를 깨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김천아 서울대 생명과학부 박사과정

※사이언스온 연재 ‘엘레강스 펜클럽’에 실린 글을 필자가 줄이고 다듬어 다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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