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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명 무명렬사를 찾아나선 84세 조선족로전사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2.04.06일 08:43
ㅡ 최다 조선족혁명렬사 잠든 렬사릉원 무명렬사 발굴기

84세 리복룡로전사는 화피창렬사릉원과 관련된 자료를 보배처럼 소장하고있다.


긴긴 세월을 두고 이름 석자 제대로 남기지도 못하고 무명렬사로 돌아간 전우들을 너무나 가슴 아프게, 너무나 애석하게 생각한 80여세의 조선족로전사가 있다. 황혼도 저물어가는 로전사는 당년에 전우들과 함께 어깨 겯고 자욱한 포연속을 넘나들던 그 기개와 정신과 의지로 무명렬사로 돌아간 전우들의 이름 석자를 밝혀내기 위해 신들메를 조이고 나섰다.

길림시 창읍구 화피창진에 가면 바로 길옆에 화피창혁명렬사릉원이라고 있다. 보기에 다른 혁명렬사릉원들과 전혀 다를 바 없다. 국가급, 성급 혁명렬사릉원과 비기면 오히려 많이 간소한 편이다.

화피창혁명렬사릉원은 조선족과는 어떤 인연이 있는 곳일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곳은 중국인민해방전쟁에서 가장 많은 수의 조선족혁명렬사들이 묻혀있는 곳이다. 이곳에 안장된 렬사들의 수는 한족과 만족, 조선족을 합쳐 무려 654명에 달한다. 그들중 거의 대부분은 조선족자제병들이다.

1948년 2월 16일 밤중부터 1주야에 거쳐 길림시 화피창의 고점자와 전오가자라는 곳에서 동북인민해방군 독립6사(후에 통일번호에 따라 중국인민해방군 156사로 개칭)는 국민당군과 치렬한 조우전을 벌렸는데 불행하게도 이 전투에서 근 600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그중 대부분은 연변의 조선족장병들로서 이 전투는 중국인민해방전쟁에서 가장 많은 조선족희생자가 나온 한차례 전투로 된다.

전투가 끝나서 2달후인 1948년 4월 15일, 그동안 눈으로 덮어놓았던 렬사들과 주변 전투에서 희생된 전사들의 유체까지 옮겨와 도합 654명의 렬사들을 합장하고 비석을 세웠다. 하지만 당시 희생자가 너무나 많이 나오고 미처 명단을 확인한 길이 없는 원인으로 결국 비석에는 203명의 희생자이름밖에 밝히지 못하고 나머지 451명은 무명렬사로 처리되고 말았다.

이름 석자 못 남긴 렬사들이 너무나 안타까워


금년에 84세에 나는 연길시 리복룡로인은 1946년에 입대한 동북인민해방군 독립6사의 로전사다. 가렬처절한 전쟁년대에 그는 부대를 따라 장강을 건넜으며 중국인민해방군의 탄생지인 남창까지 진군해 그곳에서 새중국 탄생을 맞이했고 그후에는 또 항미원조에도 참가하면서 사선을 넘나들었다. 지방으로 돌아온후 선후로 연변일보사, 연변대중과학잡지사 등 부문에서 사업하다가 1988년에 리직해 현재 연길시에서 만년을 보내고있다.

1995년 청명, 리복룡로인을 포함한 18명의 로전사와 렬사유가족 10명은 47년만에 처음으로 화피창혁명렬사릉원을 찾았다. 비문에 새겨진 203명의 렬사명단에 아버지 권억룡(희생될 당시 련장)의 이름은 어디에 있을가 눈을 떼지 못하는 렬사의 아들 권재수, 91세에 나는 어머니 탁성녀(1998년에 세상을 떴음)의 신신부탁을 받고 얼굴 한번 본적도 없는 오빠 리백룡(희생될 당시 반장)의 이름을 찾아 헤매는 렬사의 녀동생 리옥금... 유가족들은 실오리만한 희망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렬사명단을 오르내리며 아무리 훑어보고 또 훑어봐도 친인의 이름 석자를 찾을길 없었다. 모처럼 찾아간 유가족들의 마음은 형언할 바 없이 비통하고 슬펐다. 《이름 석자라도 있었으면 붙잡고 마음껏 통곡해보기라도 하지 않겠는가! 그들의 가슴속에 멍든 상처를 무슨 명약인들 아물게 하겠는가! 나의 마음은 더없이 무거웠고 무엇엔가 찔리는듯한 강한 충격을 받았다.》 리복룡로인은 그 당시를 회상하며 《무명렬사란 전쟁이란 특수한 환경에서 생겨나는것이다. 그들이 이룬 업적이 결코 작아서가 아니다. 나는 살아있는 동안에 생존해있는 전우들고 함께 꼭 이들의 이름을 찾아 릉원에 새로운 비석을 세워 주리라 결심을 내렸다.》 라고 무명렬사들을 찾아 나서게 된 계기를 밝혔다.

국가민정국 성장에게 상서, 렬사릉원 수선 호소

화피창혁명렬사릉원은 후에 보수가 따라가지 못하고 관리가 소홀한 탓으로 차츰 《주인을 잃은 릉원》으로 변해버렸다. 여름이면 온갖 잡초가 키를 넘게 릉원을 뒤덮었고 겨울에는 쓰레기가 사처에 버려졌으며 도적들이 자물쇠를 부수고 철관으로 된 란간도 다 빼가 그야말로 살풍경을 이루었다.

리복룡로인은 신문을 통해 이 소식을 접하고 더없이 격분했다. 《렬사들의 뜨거운 피로 바꿔온 이 강산에서 이런 대접을 받다니 될 말인가?》 그는 다른 로전사들에게 이를 알리고 2007년 12월경에 직접 길림성 성장에게 《화피창혁명렬사릉원의 원래 모습을 되찾아 달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그는 또 길림성민족사무위원회에도 이 사실을 반영하였으며 80세의 고령에 다른 전우와 함께 연길에서 직접 길림성민정국까지 찾아갔다. 그후에도 리룡복로인은 화피창혁명렬사릉원 수선을 위해 선후로 국가민정부, 길림성군구, 길림성선전부, 성민정청, 길림시 등 유관 부문에 수차로 편지를 띄워 의견을 제출했다.

리복룡로인을 비롯한 로전사들의 피타는 노력으로 2008년 초, 장춘시와 길림시, 연변의 조선족차세대관심협회, 조선족로인협회, 조선족부녀협회 등 8개 조선족사회단체에서는 련합으로 화피창혁명렬사릉원 수선에 관한 의견을 조춘자 길림성인대대표에게 전달했다. 조춘자대표는 그해 1월에 열린 길림성 제11기인대 1차 회의 때 《화피창혁명렬사릉원을 수선하고 관리를 강화할데 대한 건의》를 제출했다. 그 뒤로 화피창혁명렬사릉원을 위한 건의안은 4년동안에 거쳐 무려 세번이나 성인대회의에 제기됐으며 두번이나 성인대상무위원회의 중점건의안으로, 마침내 2011년 8월에 다시 수건에 들어가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83세에 무명렬사를 찾아 연변 8개 현시를 누비다


《2011년 8월, 학수고대하던 화피창혁명렬사릉원이 드디여 수선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는 이것이야말로 더는 놓칠수 없는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무명렬사를 찾아내 이들의 이름을 그곳에 새겨넣으리라 결심했다.》 리복룡로전사는 83세의 고령을 마다하고 그야말로 창해일속에서 무명렬사를 찾는 길에 나섰다.

그는 연변혁명사에 연박한 지식을 갖고있는 원 연변박물관 리송덕연구원의 《회고록이나 구두를 통한 렬사확인은 법적의거로 될수 없으니 〈길림성혁명렬사영명록〉에서 우선 찾아보는것이 바람직하다.》 라는 조언을 듣고 연변혁명렬사릉원으로 달려갔다. 연변혁명렬사와 관련한 《영명록》은 무려 9권에 달했다. 80여세의 고령에 그 많은 자료가운데서 화피창혁명렬사와 유관된 자료를 하나하나 찾아 베낀다는것은 실로 아름찬 일이였다. 글씨가 작고 지면이 어두워 500도짜리 돋보기를 끼고 확대경까지 사용해야 간신히 읽어내려갈수 있었다. 꼬박 반나절씩이나 책상에 마주앉아 자료를 베끼다가 밖에 나가면 눈앞이 캄캄해나면서 어지럼증이 났다. 원 연변일보사 리직간부 한태악로인이 3일간 도와준것을 제외하고 리복룡로인은 꼬박 한달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혼자 연변혁명렬사릉원으로 다녔다. 점심시간도 집에 가면 시간을 지체한다고 부근에서 대충 끼니를 에때우고는 곧바로 또 일에 달라붙었다.

화피창혁명렬사릉원의 다른 한가지 특점은 《실종자》가 많이 나온것인데 어떤 부대는 련장, 지도원까지 모두 희생되여 희생자를 보고할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적잖은 렬사는 썩 후에 정부에서 유가족과의 담화를 통해서 련락이 끊긴 시간을 기준으로 기록을 남겼기에 희생날자를 그저 《1948년 이후》로, 희생지점도 지어는《동북해방전쟁》이라고 애매하게 적어 넣었다. 조금만 경솔했다가는 렬사와 유가족들에게 평생 유감을 남길수도 있었다.

리복룡로인과 김리덕, 리종호 등 세명의 로전사들은 렬사들의 명단에 하나의 오차라도 생길라 연변의 8개 현시 민정부문을 돌면서 하나하나씩 조사대조했다. 그중 훈춘시와 도문시, 안도현은 리복룡로인이 혼자서 찾아 떠났다.

성민정청 로전사들의 장거를 높이 평가

수차에 거치는 반복적인 조사를 거쳐 83세의 로전사는 마침내 267명의 무명렬사를 밝혀내는데 성공했다. 이러면 화피창혁명렬사릉원 비석에 오른 203명의 렬사와 함께 470명 렬사들이 밝혀진 셈이다. 희생될 당시 이 470명 전사들의 평균나이는 고작 23살밖에 안되는 열혈청춘이였다. 이번 무명렬사발굴을 통해 리복룡로인은 15살에 희생된 훈춘적의 무명렬사 강형식을 찾아냈는데 그는 지금까지 알려진 화피창혁명렬사들중에 가장 나어린 전사다. 15살이면 지금 중학교 2학년 학생정도밖에 안되는 나이니까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다. 리복룡로인은 렬사명단중에는 가장 가깝게 보내던 친구 김명락도 있다면서 당년에 부대가 이동할 때 혹시 만나기라도 하면 너무나 기뻐서 《야, 네가 살아있구나!》라면서 그렇게도 기뻐했었는데 결국에는 희생되고 말았다면서 전우한테서 배운 노래를 지금도 잊어버리지 않고 애잔한 심정으로 불렀다.

2011년말 길림성민정청에서는 화피창혁명렬사릉원 267명 무명렬사들의 명단을 접하고 리복룡로인한테로 직접 전화를 걸어와 로전사들이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다고 높이 평가했다.

84세의 로전사 리복룡은 267명의 전우들을 밝혀내기 위해 그동안 일체 비용을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털어냈다. 자료를 정리하면서 돌아간 전우들이 삼삼히 떠올라 밤잠도 못 이룰 정도로 수면제를 복용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 이르렀다. 이전에는 자전거도 씽씽 타고 다닐 수 있었지만 전우들의 명단을 밝혀내는데 모든 심혈을 기울이다보니 건강도 많이 못해진 상황, 그래서 지금은 자전거도 타지 못하고있다.

민족단결 조화사회 건설에도 리로워

포연이 자욱한 전쟁마당에 세워진 화피창혁명렬사릉원은 중국인민해방전쟁에서 조선족들이 형제민족과 어깨 겯고 피 흘리며 세운 천추에 길이 빛날 혁혁한 공훈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제일 유력한 증거로 될만한 력사적현장이다. 어느 전투에서도 단 한번의 싸움에 500여명의 조선족전사들이 희생된 사례는 없다. 그리고 한개 릉원에 그것도 당년 구렁창이였던 한 웅덩이에 654명 렬사들을 함께 매장한 사례는 중국에서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동안 시야비야 끌어오던 화피창혁명렬사릉원 수선사업이 지난해 8월에 시작되여 올해에도 계속된다고 한다.

《릉원의 보수와 제대로 된 관리는 새중국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친 소수민족 렬사들의 공헌을 충분히 긍정해주며 민족단결과 조화사회건설에도 리로운 하나의 좋은 처사로 된다고 본다.》리복룡로인은 이렇게 말하며 화피창혁명렬사릉원 보수사업이 하루 빨리 마무리되고 릉원내에 267명 렬사들의 이름 석자가 제대로 새겨져 64년이란 긴긴 세월을 정처없이 《류랑》하던 무명렬사들의 혼이 제집에 돌아와서 《환혼부체(还魂附体)》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지난해 200여만원을 들여 새로 수선한 화피창혁명렬사릉원, 수선사업은 올해도 계속된다.

편집/기자: [ 리철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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