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자 앱 | | 모바일버전
뉴스 > 사회 > 사회일반
  • 작게
  • 원본
  • 크게

'난 팔이 언제 나와?' 묻던 아이, '팔꿈치 피아니스트' 되다

[조글로미디어] | 발행시간: 2015.02.10일 23:00
키 150㎝, 자그마한 소녀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 왼쪽으로 몸을 약간 틀어 앉은 소녀는 지그시 눈을 감더니 건반을 두드린다. 연주하던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가 절정으로 치닫는 순간, 소녀의오른 어깨가 크게 들썩인다. 건반을 수놓은 건 소녀의 왼손과, 오른 팔꿈치. 오른 손이 없는 소녀에게 오른 팔꿈치는 여섯번째 손가락이었다.

9일 오전 서울 삼성동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15층 갤럭시홀. 최혜연(19)양이 정은현(35) 선생님과 연습 중이었다. 올해 이 학교 특별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된 혜연양은 입학식에서 기념 연주회를 하기로 돼 있다.

경북 영덕이 고향인 그는 ‘팔꿈치 피아니스트’다. 세 살 때, 부모님이 하던 정육점에서 놀다 고기를 자르는 기계에 오른쪽 팔 아랫부분을 잃었다. 눈 깜짝할 새였다. “저는 잘 기억도 안 나는데, 엄마 말이 7살 때까지 ‘엄마, 나는 팔이 언제 나와?’라며 물었대요. 그때쯤 스스로 안 것 같아요. 제가 특별하다는 걸….”

그가 피아노와 가까워진 건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던 이모 덕분이었다. 한 살 터울인 언니가 피아노를 배우는 게 마냥 부러웠다. 하지만 꿈일 뿐이었다. 다섯 손가락만으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던 2011년, 그의 삶이 바뀌기 시작했다. 갓 예고에 진학한 언니의 피아노 레슨 선생님 정은현(35) 선생님을 만나면서부터다.

오른쪽 손이 없어 팔꿈치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최혜연양이 지난 9일 서울 삼성동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에서 정은현 선생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Amazing Grace'를 연주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시각과 청각을 잃은 헬렌 켈러를 미국 작가로 키워낸 설리번 선생님의 심정이었을까. 정 선생님은 혜연양을 처음 만난 2011년 1월 1일을 생생히 기억했다. “혜연이가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를 치는데, 마음이 울컥했어요. 잘 가르칠 자신이 없어 거절하려고 했는데 마음이 흔들렸지요. 혜연이에게 ‘꿈이 뭐니’라고 물었는데, 대답을 듣곤 ‘아, 이 아이는 내가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를 움직인 혜연이의 대답은 “희망을 주는 피아니스트”였다.

두 사람의 지옥훈련이 시작됐다. 혜연양은 매주 경북 영덕에서 대전까지 버스를 타고 4시간을 달려가 정 선생님을 만나 피아노를 배웠다. 정 선생님은 혜연양을 위한 왼손 연주곡을 찾고, 오른손 멜로디가 비교적 쉬운 곡을 맞춤용으로 편집했다.

정 선생님은 혜연양이 이해하기 쉽게 오른손은 주먹으로 피아노를 쳤다. 대전의 예고에 진학한 혜연양은 하루에 3~6시간씩 피아노를 연습했다. 허리가 틀어진 상태에서 연주하다보니 장시간 연습할 순 없었지만, 최선을 다했다. 정 선생님은 “많이 힘들었을 텐데, 혜연이는 포기하겠다고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팔꿈치 피아니스트' 최혜연양과 정은현 선생님. /오종찬 기자


혜연양은 딱 한번 눈물을 보였다. 고1 때 멀리 떨어진 부모님이 그립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지 않았을 때다. 다른 친구들이 화려한 곡을 치는 걸 볼 때마다 속이 상했다고 한다. 며칠 간 피아노를 보지도 않다가 자신이 가장 행복할 때가 피아노 앞이란 걸 깨달았다. “그땐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짜증이 났어요. ‘왜 자꾸 쳐다보지?’란 생각이 들고, 불쾌했어요. 근데 피아노 앞에 앉아 있으면 내가 특이한 게 아니라 특별해진다는 걸 알게 됐어요. 사람들이 ‘대단하다’, ‘감동받았다’고 말해주는 게 정말 행복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혜연양은 독주회를 2013년, 2014년 두 번 열었다. 그는 “지금은 다르다는 게 피아니스트로서 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나를 다르게 보는 것은 당연하다”며 “그래도 팔꿈치로 연주하면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정 선생님은 혜연양을 ‘타고난 무대체질’이라고 했다. 그는 “베테랑 피아니스트들도 떨리기 마련인데, 혜연이는 무대 위에 올라가면 더 잘 한다”고 했다. 혜연양은 공을 선생님에게 돌렸다. “하나부터 열까지 선생님이 공연을 다 준비하세요. 늘 감사한데, 쑥스러워서 그동안 제대로 표현을 못했어요.”

혜연양은 선생님이 외래교수로 있는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에 입학해 공부를 이어가기로 했다. 그의 꿈은 4년여가 지난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제 연주를 듣는 분들이 ‘할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좀더 공부해서 저만의 곡을 만들고 싶어요.” 정 선생님도 제자에 대한 기대가 크다. “혜연이의 연주는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혜연이가 음악으로 많은 사람들을 힐링해주는, 선물같은 존재가 되길 바랍니다.”


조선일보

뉴스조회 이용자 (연령)비율 표시 값 회원 정보를 정확하게 입력해 주시면 통계에 도움이 됩니다.

남성 50%
10대 50%
20대 0%
30대 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여성 50%
10대 0%
20대 0%
30대 5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네티즌 의견

첫 의견을 남겨주세요. 0 / 300 자

- 관련 태그 기사

관심 많은 뉴스

관심 필요 뉴스

- 길림일보사와 한국강원일보사, 전략적 협력 협정 체결 5월17일, 길림일보사와 한국 강원일보사는 한국 강원도에서 친선관계 체결 3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을 체결, 쌍방 협력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올해는 길림성과 한국 강원도가 우호적인 성도(省道)관계를 수
1/3
모이자114

추천 많은 뉴스

댓글 많은 뉴스

1/3
지력장애인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다

지력장애인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다

취미유희 운동회 한장면 5월19일 34번째 전국 장애자 돕기의 날(매년 5월의 세번째 일요일)을 맞이해 연변지력장애자협회에서는 15일부터 16일까지 연길 오렌지호텔에서 기념행사를 벌였다. 올해의 장애자 돕기 행사는 ‘과학기술로 행복을 함께 누리자’를 주제로, 15일

동북도서교역박람회 분전시장 | 연길신화서점에서 기다릴게요!

동북도서교역박람회 분전시장 | 연길신화서점에서 기다릴게요!

-독서가 우리를 더 나은 미래로 이끈다 5월 17일, 제1회 동북도서교역박람회가 장춘국제회의전시쎈터에서 정식으로 개막된 가운데 당일 9시부터 연길시신화서점에서도 계렬 행사가 펼쳐졌다. ‘길지에서 만나서 책 향기를 공유하자’(相约吉地 共沐书香)를 주제로 한 이번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서장자치구 공식 방문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서장자치구 공식 방문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은 17일 오후 중국 서장(西藏)자치구를 방문해 라싸(拉薩)시 임위(任維) 부구장 등 지방정부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한중 지방정부 교류 등에 대해 대담했다. 서장자치구 정부와 간담회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은 권기식 회장(왼쪽)과 임위

모이자 소개|모이자 모바일|운영원칙|개인정보 보호정책|모이자 연혁|광고안내|제휴안내|제휴사 소개
기사송고: news@moyiza.kr
Copyright © Moyiza.kr 2000~2024 All Rights Reserved.
모이자 모바일
광고 차단 기능 끄기
광고 차단 기능을 사용하면 모이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모이자를 정상적으로 이용하려면 광고 차단 기능을 꺼 두세요.
광고 차단 해지방법을 참조하시거나 서비스 센터에 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