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춘시 경제기술개발구 조선족로인협회 윤수범회원은 인생의 장정길에서 가치있고 다채롭게 가꾸고있는바 우리들의 거울이며 본보기이다.
2011년 길림시화피창렬사릉원을 찾은 윤수범선생과 그의 부인
윤수범선생은 하루하루 목표를 세우고 끊임없이 배우고 실행하며 미소한 일이라도 지나치지 않고 더 다져보며 살아온 인생이다.
퇴직한 후에 컴퓨터를 배우고 외래어를 익숙하게 장악하고 70대에 들어서서 자동차운전까지 배운 그다. 피아노를 다룰줄 알고 작사, 작곡까지 하는 다재다능의 인재라 할수 있다.
40만자에 달하는 자서전 “법률과 나의 인생”을 조문과 한문 출판에 이어 지금 35만자에 이르는 문집출판을 준비하고있다. 80세에 가까운 윤수범선생은 지금 위챗으로 세상만사를 다 읽기도 한다.
길림성인민대표대회 내무사법위원회 부주임위원 등 직에 있다가 퇴직한 윤수범선생은 퇴직후에도 변호사, 법률고문 신분으로 선후 돈화림업국 림모 계약분규사건, 장춘공항 벌금사건, 길림시화피창렬사릉원 건설 문제 등 문제 해결에 나서 사회에 많은 좋은 일을 해왔다.
요즘 장춘시 경제기술개발구 조선족로인협회 법률고문으로 있는 그는 회원들이 문의하는 계승권, 재혼로인들의 재산상속권 등 법률관련 문제를 상세하고도 알아듣게 잘 대답해 주어 원만한 해결을 보도록 했다.
윤수범선생은 또 늘그막에 글쓰기를 배우는 로인들의 애타는 마음을 헤아려 하나하나, 구절구절 까근하게 고쳐주기도 해 “로인세계”잡지에 발표되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그는 “무엇이든 이기고자 하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고 늘 말한다. 그런 성미여서 그는 중병도 이겨내고 경쾌한 모습으로 우리들의 앞에 나타났다.
그런 그이이기에 그를 우리들의 거울이자 본보기라 칭한다.
우리들의 신변에 윤수범선생과 같은 분이 있어 행복이고 행운이라 생각한다. / 장춘 남정자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