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란시조선족중학교 라원옥교원의 사업담
전천후(全天候)교사로 되기까지
1989년,동북림업대학을 졸업하고 푸른 림해속에서 청춘의 푸른 꿈을 키워가려던 라원옥은 운명의 배치로 서란시조선족제1중학교에 분배되여 자신의 전업과는 전혀 다른 교사의 길을 걷게 된다.
한가지 일을 시작하면 곧 거기에 전념하는 당찬 성격을 가진 그녀는 스물두살 꽃나이에 고중 생물교원을 맡으면서부터 장장 23년동안이라는 세월을 학생들과 울고 웃으며 교육사업에 자신의 모든 정력을 불태워왔다.
갓 교단에 오른 햇내기 생물교원이였던 그녀는 로교원들의 수업을 한시간도 빠짐없이 들으면서 그들이 수십년간 쌓은 수업경험을 하나씩 전수받았고 또 교수자료가 상대적으로 풍부한 한족학교에서 각종 자료를 얻어다 탐독하면서 자신의 교수질을 차츰차츰 제고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교수풍격을 형성해나가기 시작했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고 고심참담한 노력끝에 라원옥교원은 십여년동안 줄곧 고중 3학년 리과반 담임을 맡아하면서 선후로 《길림시제1기 전천후(全天候)교사》, 《길림시조선족중소학교 우수담임》, 《길림시보통고중 교수질제고 선진개인》, 《교수질 제고 우수인재 양성 돌출공헌상》 등 20여차나 묵직한 영예증서를 받아안았다.
창신형의 우수교도주임
세차게 불어치는 한국붐에 조선족들이 한국으로, 연해도시로 대량 진출하면서 조선족학교의 학생원천도 해마다 푹푹 줄어들고있다. 갓 교도주임으로 임명받은 라원옥교원은 이런 준엄한 현실의 도전앞에서 학생원천을 보장하고 교수질을 제고하기 위해 일련의 교수개혁을 실시했다.
교수1선의 젊은 교원들을 한걸음 일찍 교수개혁을 실시한 형제학교인 장춘시조선족중학교로, 길림시조선족중학교로 여러차례 참관학습을 보냈으며 이 학습경험을 디딤돌로 교수질제고를 위한 회보과활동을 조직했다. 라원옥주임은 수년간 임무완성의 개념으로 자리잡았던 회보과활동의 리념을 깨고 청년교원들이 솔선적으로 회보과활동에 참가하게 했다.
《학생들의 학습적극성을 불러일으키고 활발한 수업분위기를 조성하자》는 새로운 리념하에 수업전 교연조활동을 조직해 해당 교원이 자신의 교수목표,교수흐름,교수방법 등에 대해 진술하고 한 교연조 교원들이 견해를 발표하게 하여 교수방법,교수내용을 한층 더 풍만하고 체계적이게 함으로써 최고의 교수효과를 거두게 했다.
수업이 끝난후에는 다시 한번 교연조활동을 통해 해당 교원은 수업가운데서의 잘된 점,부족한 점 등을 자아총화하게 하고 다른 교원들은 건의를 제출하게 함으로써 교수질을 진일보로 제고하게 했다.
라원옥주임의 노력은 헛되이 않았다. 서란시조선중학교의 사생들은 쌍풍수를 안아왔다. 2011년 대학입시에서 김명학생은 659점이라는 우수한 점수로 길림성 산재지구 조선족중학교 장원으로, 올해 대학입시에서 차명순학생은 625점이라는 우수한 점수로 서란시 문과장원을 따내게 되였다. 또 강추향,김춘화 등 교원은 서란시 교사도덕모범의 영예를 따냈다.
라원옥주임은 학생들의 특장훈련을 매우 중시하였는데 학생작문 10여편이 《길림신문》, 《중학생작문》 등 간행물에 발표되였으며 그중 고중 1학년 로아림학생의 작문은 길림신문사 《인천컵 인성교육상》 3등상을 따내기도 했다. 또 많은 학생들의 수편의 미술작품이 국가급 금상을 받게 되였다.
<<경쟁이 갈수록 치렬해지는 오늘날 학교의 생존여부는 교수질제고에 있다.>> 이는 라원옥주임이 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오늘도 그녀는 자신의 창신적인 사유로 맡은바 직책을 다하며 더욱 우수한 민족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노력을 경주하고있다.
/최혜숙
편집/기자: [ 차영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