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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연산유고∙ 리태백이 놀던 달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2.07.10일 10:12
고 류연산선생의 유고 련재를 시작하며

  본지는 이번기부터 흑룡강신문사 론설위원이였으며 연변대학 교수이고 작가인 고 류연산선생의 유고중 일부를 선정하여 련재한다.

  본지가 단독입수한 고 류연산선생의 유고는 5만여자에 달하며 칼럼형식으로 되여 있다.

  류연산선생이 생전에 써놓고 발표하지 못한 작품들은 그의 눈부신 지혜와 필력이 돋보인다. 발표되는 유고들이 독자들에게 귀감이 되기를 바라며 애독을 기대한다. -편집자

  달아달아 밝은 달아

  리태백이 놀던 달아

  요즘처럼 노래방이 없었던 시절 웬간히들 흥이 오르면 혹자는 손으로 상 모서리를 두드리고 혹자는 저가락으로 접시와 사발을 번갈아 두드리고 혹자는 손벽을 치면서 술군들이 흥에 겨워 부르는 노래중에 이 노래가 첫손가락이 꼽힌다. 곡이 감상적이고 가사가 쉽게 입에 올라서라기보다 한번에 300잔을 마셨다는 리백의 주풍(酒风)이 술기분을 돋구어주기때문이리라.

  항간에서는 주량이 큰 사람이나 심지어 알코올중독자도 리태백이라고 따로 부른다. 술집이름을 '태백주점', '태백가라오케이' 등등 아예 태백이 간판에 올라 술의 대명사로 탈바꿈한 경우도 심심찮게 볼수 있다. 계림 양삭에 탁필봉(卓笔峰)이라고 있다. 일찍 하계했던 리태백이 '태백유풍(太白游风)'이라는 간판을 붙인 술집에 들어가서 술을 마시다가 시흥이 떠올라 벽에 시를 쓰다 말고 주인하고 태백이라고 한 까닭을 물었고 술 파는 사람이 술 잘 먹었다는 성인의 이름을 빌었을뿐이라는 대답에 뿌려던진 붓이 거꾸로 박혀 봉우리가 되였다는 이야기이다. 전설에서 리태백은 "가석하도다. 이내 일생에 후세에 시명(诗名)을 남기려 했던것인데 오히려 주명(酒名)밖에 안남았단 말인가?"라고 개탄했다고 썼다.

  리백의 생애에 대해 세세한 문헌기록도 없고 구구한 전설도 없다. 그나마 변변치 않은 기록이나 전설 또한 술내가 짙어서 리백의 진실을 만나기란 쉽지가 않다.

  '술 없는 빈잔 쥐고 저 달 보지 말아라.'(리백의 시 '将进酒'에서) 라고 했듯이 달과 음주와 작시(作诗)는 리백의 삶에서 불가결의 3요소로 일컫어진다. 그는 꽃이 만발한 숲에 친구조차 없이 외홀로 잔을 들어 밝은 달을 청하여 그림자와 더불어 셋이서 술을 마셨다. 그가 취하여 노래하면 달님은 서성이고 그가 춤을 추면 그림자도 너펄거렸다.(리백의 시 '月下独酌'에서) 어떤 날 고요한 밤 달 비낀 호수물에 몸 그림자를 잠그고 술잔을 기울이며 '푸른 하늘 저 달님은 언제부터 있었느뇨?---흰 토끼 일년사철 약 찧어 바치는데/ 항아는 외로운 잠 뉘하고 함께 할고?'(리백의 시 '把酒问月'에서)라고 묻는다. 당대의 최고의 문인으로서 무정한 달과 그림자와 교우가 되여 만고의 시름을 덜게 한 까닭은 무엇일가?

  리백은 당시의 시인 대부분이 그러했듯이 정치가를 지망했다.그는 '재주를 떨쳐 임금을 보좌(奋其智能,愿为辅弼)'하고 나라를 안정시키려는 포부를 지녔다. '오직 시대를 구할 마음이 없다면 제 한몸 건사한들 무슨 소용 있으랴?(苛无济代心,独善亦何益?)'라고 호언장담을 하면서 26세에 방랑의 길에 올랐고 42세에 당현종의 조서를 받고 '앙천대소하면서 문을 차고 나가노라, 이 장부가 아무렴 촌에 묻혀 살소냐!'라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련거에서 내려 시인을 정중히 맞이한 당현종은 그를 태평영월이나 읊조리는 궁정시인으로 만들려는것이였다.

  일찍 리백이 자기가 잘못 사귀였던 술친구와 같은 인간으로 거듭 날것을 강요하는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동정호의 물은 말라도 술이 마를줄 모르도록 부호였던 리백은 강호를 떠다니면서 많은 술친구들을 사귀였다. 대개 술을 먹기 위해 찾아와서 그의 비위를 맞추는 자들이였다. 어느날 한 가난한 선비는 리백이 맹자를 싫어한다는 소문을 듣고 맹자를 비난하는 시를 즉흥으로 읊었다. 리백은 지기를 만났다고 그하고 대작하여 취토록 마셨다. 훗날 리백이 빈털터리가 되자 그 친구는 아예 발길을 끊었다. 그러다 리백이 출세하여 돈이 생겼다는 소문을 듣고 맹자를 비난하는 시를 지어 갖고 갔다. 그 속심을 알아차린 리백은 '자네가 오지 않는동안 곰곰이 생각해보니 맹자도 참 훌륭한 성인이더구만'하고 시를 보지도 않고 돌려주었다는 일화이다.

  대체로 바라는것이 있으면 바르게 행하지 못하는 법, 그는 임금의 불알을 간질이고 간신적자들의 비위를 맞추면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싶지 않았다. 참소와 비방에 벼슬이 오래 가지 못할것을 직감한 후부터 리백은 일부러 억병으로 취하여 재상 리림보(李林甫)와 환관 고력사(高力士)를 모욕하고는 표표히 장안을 떠났다.

  그는 '푸른 하늘에 올라 밝은 달'(리백의 시 '선주사조루에서 교서랑 리운숙부를 전별하면서'에서)을 따려고 했지만 임금은 오로지 술잔에 비치는 달빛에 만족한 삶을 살라고 강요했다. 그제야 비로소 벼슬과 명예와 부귀영화를 하찮게 보고 산천경개에 뜻을 기탁한 맹호연(孟浩然)의 고결한 품성을 우러러 '달에 취해 빈번히 술을 마셨고/ 꽃에 홀려 임금을 아니 섬겼더라. 높은 산을 어이타 우러를수 있을는가?/ 청아한 그 향기에 두손 모아 읍하노라.'(리백의 시 '赠孟浩然'에서)라고 노래했다. 그는 3년으로 한림학사 벼슬을 그쳤고 죽을 때까지 재능을 펼칠 기회를 만나지 못함을 '나도 목청껏 시를 읊을수 있지만/ 그 사람 지금은 들을수 없을걸세.'(리백의 시 '夜洦牛渚怀古'에서)라고 한탄했다.

  한국의 다움 '백과사전'에서는 정계에서 밀려난것은 '시인 리백에게 더욱 많은 시간과 의욕을 주었으며 무엇보다도 다양한 경험과 다원적인 시각을 제공했다. 만약 그가 장안에서 궁정시인으로서 성공하고 관리로서 출세했다면, 많은 궁중시와 응소시(应诏诗)의 명작을 낳기는 했겠지만, 자유롭고 변화가 심한 리백의 시세계는 출현하지 못했을것이다. 그가 결국 재야의 시인으로서 생활할수밖에 없었던것이 중국문학사 측면으로서는 행운이였다고 하지 않을수 없다'라고 적었다.

  리백의 33년간의 긴긴 방랑의 길을 시종 변함이 없이 동무한것은 하늘의 달과 그의 그림자뿐이였다. 그러나 그 달은 례사의 달이 아니였다. 리백이 놀던 달은 '달아달아, 밝은 달'이였다. '지금 사람 옛달을 보지도 못했지만/ 저 달님은 옛사람을 비쳐보았으리라./ 옛 사람 오늘 사람 죄다 류수이지만/ 누구 보나 달님은 모두 같아라.'(리백의 시 '把酒问月'에서)라고 했듯이 달은 인간이 지니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벗어난 거울이였다. 그 거울에는 당대의 가지가지 암흑한 현실이 비쳐있었다.

  시인의 달과 같이 리백의 그림자 또한 례사의 그림자가 아니였다. 한시도 그의 곁을 떠날세라 군소리 한마디 없이, 가식 한번 부리지 않고 그를 따라 물에 잠기기도 하고 춤도 추기도 했다. 그림자는 달을 따려고 했던 웅심으로 마냥 가슴이 부풀었던 일대의 영웅의 초야에 묻혀 살아가는 다른 한 모습이였다.

  리백은 미지의 세계인 밝은 달빛을 빌어 심적세계를 무한히 넓혀가면서 빛이 없으면 사라지는 그림자와 같은 인간 삶의 순간을 영원화하였다. 바로 시공감각의 확대에 대한 지향과 미확정인것에 대한 지향이 공존하는 리백 시의 특징은 이루지 못한 정치적 욕망의 좌절에서 기인한것이다. 그러한 결실(缺失)이 없었다면 그의 시는 다른 양상이였을것이다. 그의 개인적인 결실(缺失)에서 얻어진것은 사회의 보편적인 결실이였고 그의 개인적인 결실체험속에 시대적인 내용이 깃들게 되였다. 일평생을 분투했어도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결실체험은 그의 불멸의 시혼을 낳았다.

  그가 남겨놓은 시는 1049수, 그중에서도 달을 읊은 시가 300여수나 되여서 명월시인이라 가히 불릴만 하다. 시의 소재가 되였던 달은 고관대작들의 호화방탕한 생활, 로고대중들의 비참한 모습, 산수풍경, 인정세태, 사랑의 아픔, 리별의 그리움, 인생의 좌절 등등 당대 사회의 구석구석을 낱낱이 비쳐보이고있다.

  가을밤 평강물에 잠겨 흐르는 아미산의 반달은 그리운 친구를 보지 못하고 떠나가는 그의 동강난 마음이였다면(리백의 시 '아미산 달노래'에서) '왕창령(王昌龄)이 룡표(龙标)로 좌천된 소식을 듣고 이 시를 멀리 띄워보냄'의 한 구절 '我寄愁心与明月,随君直到夜郎西.' (둥근달에 실려서 친구를 따라 야랑(夜郎) 서쪽까지 가리라)은 친구에 대한 절절하고 진지한 정을 나타내고 출전한 남편을 그리며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아낙한테 수심 겨워 잠 못이루게 하는것은 교교한 달빛이고 이십대 중반에 고향을 떠나 여생을 타향에서 살다가 간 리백을 고개 숙여 고향을 그리게 하는 명월은 고향을 떠난 모든 이의 수심이였다.

  리백의 술잔에 비낀 달은 만고의 량심이고 리백이 즐기던 술은 모든 시름을 덜게 하는 조조의 묘약이 아닌 그 시대 량심의 메아리였다.

  2009년 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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