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자 앱 | | 모바일버전
뉴스 > 문화/생활 > 문화생활일반
  • 작게
  • 원본
  • 크게

나는 선인장을 죽였다

[인터넷료녕신문] | 발행시간: 2019.06.03일 09:29
꼭 8년 전, 입사를 축하한다면서 친구가 ‘난데없이’ 팔레놉시스(蝴蝶兰)를 선물했다.

팔레놉시스, 충분히 물과 비료를 줘야 하고 게다가 실내공기가 너무 건조하면 개각충이나 응애가 발생하기까지 하는 이 예민하고 손이 많이 가서

키우기 어렵다는 식물, 그때는 나 자신을 점점 잃어가는 길고 길었던 시험공부 나날을 버티고 어렵게 입사시험에 합격하면서 많이 지쳤던 시기였다.

그런 나를 위해 살아있는 생명을 곁에 꼭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랬다. 나는 ‘흔쾌히’ 팔레놉시스를 받아 해볕이 잘 드는 창문가에 모셔뒀다. 무려 ‘거금’을 들여 너무 화려해서 언뜻

촌스러워보이기까지 한 화분통을 구매하기까지 했다.



나 자신을 돌보듯 섬세하게 다뤄야겠다고 다짐했다. 팔레놉시스가 곱게 꽃을 피우면 나 역시 그렇게 꽃길을 걷게 되겠지, 하지만 사람들은 오며

가며 팔레놉시스를 걱정해줬다.

“키우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네가 키울 수 있겠니?”

당연히 꽃은 피지도 못했고 팔레놉시스는 죽었다. 한달을 버티지 못했다.

밑둥에 곰팡이가 생겼고 물컹하니 썩어버렸다. 기분이 묘했다. 이 사무실 안에서 나도 팔레놉시스와 운명을 같이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잎이

누렇게 뜨면서 소멸해가고 있는 건 아닌지.

푸훗, 청승맞은 감정이다.

버려진 팔레놉시스를 사람들은 걱정했고 정작 그들은 난 걱정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몇년 뒤, 나는 이제 관리하기 어려운 식물 대신 작은 선인장을 사 책상 우에 올려뒀다. 한달에 한번만 물을 주고 해빛에 잘 로출되지

않아도 알아서 잘 산다는 그 선인장 말이다.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하면, 그런 선인장까지 죽여버린 사람이다. 그런데 내 사이코 성향이 발현돼서일가? 선인장까지 죽자 팔레놉시스가

죽었을 때와는 다르게 묘한 성취감이 생겼다.

선인장은 죽기도 어렵다는 데, 남들은 그러기도 힘들다는데 그 어려운 걸 내가 해냈으니 말이다.

나는 선인장을 죽였다.

그러자 주변에서 다들 그런다.

“네가 살이 세긴 센가 봐.”

내가 종교는 없지만 렴치는 있다. 기도라도 해야 할 판에 면식도 없는 신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하기는 미안하더라. 그래서 사주를 보러 갔다.

올해부터는 운이 철썩 붙을 거라고 했다. 위안 아닌 위안이다.

문득, 지금까지 여럿 식물을 죽인 거 빼고 내가 알차게 나를 위해서 해놓은 건 뭐가 있는지 고민스럽다.

녀자에게는 ‘마의 고비’라는 서른을 넘겼다. 지금보다 많이 어렸을 때에는 압박이 크지 않았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시기이고 앞으로가

기대되니 지금 당장은 많은 걸 못 가져도 괜찮다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나면 세상의 눈은 매정하게 바뀐다.

‘그 나이 먹도록 뭐했니?’라는 식이다.

그러게 나는 과연 뭘 했을가?

애초에 세웠던 계획을 하나도 완성 못했으니 나는 나이값을 못하는 게 분명했다. 이젠 후배들마저 알차게 경력을 쌓아가며 직함 등급을

올려간다. 정작 라태한 나는 괜찮은데 사람들이 나를 불쌍하게, 한심하게 보니 나도 좀 비참해지려고 한다. 아니 확실히 비참하다. 원래는 비참하지

않았는데 남들이 그렇다니 좀 그렇다. 이건 내 삶인데, 내 기분인데 왜 타인의 평가에 따라 괜찮았다가 불행했다가 하는 걸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이 나이에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내 나이에 걸맞은 것들을 소유하지 못한 게 아니라 나만의 가치나 방향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연변일보 신연희

뉴스조회 이용자 (연령)비율 표시 값 회원 정보를 정확하게 입력해 주시면 통계에 도움이 됩니다.

남성 50%
10대 0%
20대 0%
30대 5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여성 50%
10대 0%
20대 0%
30대 0%
40대 50%
50대 0%
60대 0%
70대 0%

네티즌 의견

첫 의견을 남겨주세요. 0 / 300 자

- 관련 태그 기사

관심 많은 뉴스

관심 필요 뉴스

- 길림일보사와 한국강원일보사, 전략적 협력 협정 체결 5월17일, 길림일보사와 한국 강원일보사는 한국 강원도에서 친선관계 체결 3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을 체결, 쌍방 협력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올해는 길림성과 한국 강원도가 우호적인 성도(省道)관계를 수
1/3
모이자114

추천 많은 뉴스

댓글 많은 뉴스

1/3
"문 닫을까 싶어" 피식대학, 상처받은 '영양군'에 결국 장문의 사과

"문 닫을까 싶어" 피식대학, 상처받은 '영양군'에 결국 장문의 사과

300만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측이 최근 경상북도 '영양' 지역에 방문해 촬영한 영상에서 지역 비하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이들이 방문해서 혹평을 했던 백반집 사장 A씨가 심경을 고백했다. 피식대학 측은 논란 이후 약 일주일이 지나서야 영

"기업리뷰 1.7점" 강형욱 회사평점 논란에 네티즌 갑론을박 무슨 일?

"기업리뷰 1.7점" 강형욱 회사평점 논란에 네티즌 갑론을박 무슨 일?

지난해에 비해 영업이익이 3배 늘었다고 알려져 있는 개통령 '강형욱'의 회사 '보듬컴퍼니'의 잡플래닛 기업리뷰가 누리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들을 통해 보듬컴퍼니의 전 직원들이 남긴 회사 리뷰가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긴급체포 해달라" 김호중, 계속된 거짓말 정황에 분노한 시민 '직접 신고'

"긴급체포 해달라" 김호중, 계속된 거짓말 정황에 분노한 시민 '직접 신고'

사진=나남뉴스 뺑소니 및 음주운전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거짓말 의혹을 받고 있는 가수 김호중을 긴급체포해달라는 시민의 신고가 접수됐다. 이날 18일 한 누리꾼은 경남 창원시에 콘서트를 진행 중인 김호중을 긴급체포 해달라고 신고한 사실을 밝혔다. 글쓴이는 "

모이자 소개|모이자 모바일|운영원칙|개인정보 보호정책|모이자 연혁|광고안내|제휴안내|제휴사 소개
기사송고: news@moyiza.kr
Copyright © Moyiza.kr 2000~2024 All Rights Reserved.
모이자 모바일
광고 차단 기능 끄기
광고 차단 기능을 사용하면 모이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모이자를 정상적으로 이용하려면 광고 차단 기능을 꺼 두세요.
광고 차단 해지방법을 참조하시거나 서비스 센터에 글을 남겨주세요.